[06/4월/알기쉬운 산안법2]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일터기사


잠자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깨워라!

유성규 / 노무법인 참터

1. 사례

경기도에 위치한 (주)○○산업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염료를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이다. 1,500명 직원 대부분이 조합원이고 전임간부도 5명이나 되지만, 조합원들은 물론 조합간부들에게 ‘노동안전보건’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을 위해서는 힘차게 투쟁했지만,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항상 부차적 문제로 여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조합에는 ‘산업안전부장’이라는 직함만이 존재할 뿐, 실제로 활동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는 없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호흡하는 염료의 성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2000년에 들어 조합원들 중 2명에게서 상세불명의 피부이상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술렁거렸지만, 노동조합은 당장 눈앞에 닥친 임단투와 투쟁계획에 집중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1999년에 회사가 실시한 작업환경측정의 결과를 요청하여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회사가 실시한 작업환경측정의 결과는 허용기준치를 넘지 않았다. 2002년에 들어서자, 조합원들 중 10명에게서 순차적으로 기관지 천식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에 이르러서야, 노동조합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을 대학병원에 진료 의뢰하여 천식증상을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합원들에게 나타난 천식을 유발한 원인은 염료의 주성분이었으며, 해당 조합원들은 이미 상당히 위험함 수준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조합원들에게 천식증상이 나타나기 직전에 회사가 실시한 작업환경측정결과도 이전과 다름없이 허용 기준치 이하였다는 점이었다. 노동자들에게서 직업병이 발생하고 있으나, 작업환경측정은 정상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니! 노동조합은 즉시 작업환경측정을 재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회사에서 선임한 보건관리자들에 대한 징계 및 재선임을 요구하였다. 또한 노동조합은 작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한편,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섭을 회사에 요구하였다. 회사는 교섭기간이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였으며 노사간 교착상황이 지속되었다.

상황이 장기화되어 갈 무렵에, 노동조합은 상급단체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로부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조합의 요구안은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되는 부분이며, 이를 현장에서 담보해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법적 고발 및 재해노동자들에 대한 요양신청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회사도 어쩔 수 없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에 합의하였으며,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섭이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조합과 회사는 뒤늦었지만 작업환경측정을 재실시하기로 합의하는 한편,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신설, 건강진단의 실질화 방안, 산재예방계획의 수립 등에 합의하였다.

위 사례는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안전보건은 관심 있는 특정 활동가가 전담해야 할 전문적인 활동분야이다.”, “노동안전보건보다는 당면 투쟁과제가 우선이므로, 노동안전보건은 부차적 문제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역량상의 문제로 인하여, 노동안전보건은 재해자가 발생할 경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작업장 내 안전보건에 대한 점검은 회사가 해야 할 몫이므로, 노동조합은 작업환경측정 결과만 꼼꼼히 분석해도 족하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은 대부분의 노동조합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고질적 관점이다.
결과적으로, 위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태도가 보다 적극적이기만 했어도, 12명의 조합원이 직업병으로부터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직업병을 유발시키는 직접적인 범죄자는 바로 ‘자본’이다. 그러나 이는 이윤창출을 최대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천박한 근성인 것을 어찌하랴. 자본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자본은 이윤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노동안전보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의 눈에 노동자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결국, 조합원들의 건강권을 보호해줄 유일한 장치는 노동조합뿐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조합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력한 무기로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위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이 글을 접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매우 생소하거나 불필요한 형식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엄연히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조합의 당연한 권리이자 무기이다. 부러진 나뭇가지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2. 산보위로 노동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선, 나뭇가지가 어떤 모양새인지 살펴봐야 하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제19조를 찾아보도록 하자. 비록 우리들은 괄시할 지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은 모든 노동법전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 법률이므로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1,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는 반드시 노사동수로 구성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해야만 한다. 1,000명 미만의 경우에는 노사협의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고 있으나, 노동조합이 투쟁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막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몇 가지 쓸 만한 권한들을 부여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할 수 있는 내용은 “산재예방계획수립에 관한 사항,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변경에 관한 사항, 안전보건교육에 관한 사항, 작업환경측정·점검 및 개선에 관한 사항, 건강진단, 건강관리 사항(채용시, 일반, 배치전, 특수, 수시, 임시검진 모두 해당), 중대재해의 원인조사 및 재발방지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 산재통계의 기록·유지에 관한 사항, 안전관리자 및 보건관리자의 수, 자격, 직무, 권한에 관한 사항,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 등으로 대부분의 노동안전보건의 현안들을 포괄하고 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하여 회사에 요구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제대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었다면, 작업환경측정이나 건강검진 등에 노동조합이 사전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굳이 노동조합이 당연한 권리를 위해 회사를 상대로 힘겹게 싸워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위원장은 호선으로 선출되는데, 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 회의는 2개월 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필요시 위원장이 임시회의를 소집할 수도 있다. 회의는 노동자위원 및 사용자 위원 각 과반수가 출석하여야 하며,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전술한 것과 같이, 사업주는 심의·의결된 사항을 성실히 준수하여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이를 알 수 있도록 공개하거나 교육하여야 한다.

3. 산보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다음으로, 막 생겨먹은 나뭇가지를 우리의 쓰임새대로 다듬어 보기로 하자. 버려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대로 젓가락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다듬는 도구는 바로 단체협약이다. 물론, 이 도구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보다 강력한 도구를 준비해 놓으면 더욱 좋다.

이 글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과연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심의·의결된 사항이 작업장 내 현실을 바꾸어 낼 수 있는 강제력이 있는가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미 설치하거나 심의·의결된 사항을 미 이행 하였을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 처벌 따위는 개의치 않는 범법자형 사업주의 경우에는 이 같은 과태료가 소용 없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조금 더 열심히 투쟁해야 하는데, 단체협약을 통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에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은 법상 단체협약과 동일한 형사상, 민사상 강제력을 갖출 수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위원들의 유급 활동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법에서 부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원들에게 소정의 유급활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작업이 다 끝나서 기계도 멈춰버린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단체협약을 통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위원들에게 근무시간 중 유급활동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원들에게 작업중지권, 현장조사권, 작업환경 측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 등을 보장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권장사항이다.

4. 바람직한 산보위 운영,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실효성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운영을 위한 몇 가지 실무적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TIP 1.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원활한 운영을 위한 ‘내부운영규정’을 만들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그 구성 및 회의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내부 운영을 위한 규정을 전무하다. 따라서 “논의 안건은 누가 어떠한 방법으로 제기하는가? 결정된 사항을 누가 어떻게 집행하는가? 임시회의가 소집되었을 경우에 노사 양당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내부운영규정을 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정작 필요한 논의는 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논쟁에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TIP2.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한 참여 주체는 ‘노동조합’이지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형식에 불과할 뿐이므로, 그 준비도 당연히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만의 몫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당연히 작어질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회의장에서 노동조합 내부의 의견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위원장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데, 조합간부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회사에게 수용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TIP 3.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일상적 노력을 하자.

대부분의 조합간부들은 자신이 현장 출신이므로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따라서 회의 개최 이전에 논의 안건들을 준비함에 있어,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방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장은 날마다 변화하고 그 변화의 폭도 매우 크다. 따라서 조합간부들이 일상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이 힘들다면, 회의 직전에라도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은 비단 의견의 취합을 넘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조합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주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TIP 4. 회의가 끝난 후에는 논의 과정 및 결과를 담은 회의록을 작성하여, 노사 위원 모두가 서명 날인하여 보관하도록 하자.

수차에 걸친 회의가 반복되는 경우, 사업주가 이미 결정된 사안을 번복하는 것은 항상 경험하는 일이다. 따라서 회의를 통하여 논의에 약간의 진척이라도 있었다면, 이를 기록화 하여 차기 회의에서 동일한 논쟁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차피 노동안전보건은 단시간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 하나의 성과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TIP 5. 회의 결과를 효과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한 통로들을 확보하자.

노사간의 회의는 주로 조합간부들과 회사측 실무진간에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회의 결과는 항상 조합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다만, 단순한 회의 결과 보고가 아닌 그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공개의 통로는 모든 조합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개체를 통하여, 공개의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만 한다.

건강한 작업장!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작은 성과들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하나씩 쌓아 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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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관한 산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개정안은 올해 10월부터는 100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해서도 산보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산보위 주요 개정내용을 알려드립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주요 개정내용

□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요
○ 근로자와 사업주가 함께 참여하여 사업장의 안전보건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는 등 노사협력적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축을 위하여 노사동수로 구성되며, 3개월마다 개최
○ 설치대상 사업장
-상시근로자 100인이상 사용하는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이 120억원(토목공사업은 150억원) 이상인 사업장]
– 토사석 광업, 화학제품제조업 등 유해·위험업종은 50인 이상
○ 심의·의결 사항
– 산업재해예방계획 수립, 근로자의 안전·보건 교육, 건강진단, 중대재해의 원인조사 및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

□ 주요 개정내용
○ 100인(유해·위험업종은 50인) 이상 1,0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노사협의회와 별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 현행은 1,000인 이상만 노사협의회와 별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고 있음
○ ‘09년까지의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
※ 시행 예정시기(법률개정안 부칙에서 대통령령으로 위임)
– 500인 이상(‘06.10.1) / 300인 이상(‘07.7.1) / 200인 이상(‘08.7.1) / 50인 이상(‘0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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