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월/칼럼] 저임금 근절과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최저임금투쟁

일터기사


저임금 근절과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최저임금투쟁

안 성 민 ileft@jinbo.net / 사회진보연대

1. 신자유주의 시대 ‘가난한 노동자’는 누구인가

– ‘가난한 노동자’의 일반화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진척된 노동유연화는 노동자 일반에게 항상적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인한 빈곤의 심화라는 파괴적 효과를 가져왔다. 노동유연화의 증대는 이른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한 상태에서 임금 억제, 노동강도의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기여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소득의 절대적 감소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자체만으로도 빈곤이 심화된다.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실질임금 하락이 발생했고, 지금까지도 실질임금 하락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매년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실질임금 인상률 비교지표인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에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전체 취업자 대비 임금노동자의 비중은 2000년 들어 63.1%에서 2004년 66.0%로 꾸준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소국민소득 대비 노동소득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4년 58.8%에 머물고 있다. 즉 노동자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생계비용은 꾸준히 증가했다. 사교육비의 증가와 의료비용의 개인 전가, 주택과 식용품 등 필수재에 들어가는 비용의 증대 등은 노동자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했고, 노동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소비지출을 극단적으로 억제하는 내핍생활에 들어가거나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의 사적이전을 통해 소득을 보충했다. 이 같은 생계유지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어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가계 빚을 지는 경우가 보편화되었다. 은행의 가계에 대한 일반대출,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 주택자금 대출을 의미하는 가계대출 규모는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GNP의 75%에 육박하고 가계당 3천만 원을 넘어서는 현재의 가계 빚 규모는 정부조차도 우려하고 있는 수준이다.

– 저임금이 구조화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저임금이 구조화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고용형태를 놓고 볼 때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는 파견·용역노동자로 불리우는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임금에 있어서도 고용형태의 불안정성과 착취의 중층화로 인해 가장 낮은 임금군을 점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5%가 간접고용 노동자를 선호하는 이유로 비용절감(인건비 포함)을 꼽았다. 즉 기업이 일정업무를 외주·용역화하는 경우 일단 임금 삭감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간접고용에 있어 임금 삭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데, 파견·용역업체를 거치는 과정에서 임금의 중간착취가 존재한다. 이들 파견·용역업체들의 임금에 대한 중간착취율은 적게는 20% 많게는 5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용업체가 최저가 낙찰방식으로 파견·용역업체를 선정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파견·용역업체들로 하여금 중간착취는 그대로 유지한 채 노동자들의 임금부분을 경쟁적으로 줄이도록 부추기고 있어, 사실상 법정 최저임금이 간접고용 노동자 임금의 상한선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다중착취가 고용관계 전반에 구조화되어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저임금의 굴레에서 탈출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간접고용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용역, 계약직, 임시직, 파트타이머, 프리랜서, 사내하청, 외주하청, 소사장제 등 거의 모든 비정규직 고용형태에서 저임금과 극심한 고용불안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들의 규모는 2006년 현재 840만명(전체 노동자의 56.1%)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아직까지도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9%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적용률이 30%-33%(정규직은 80-98%)밖에 안되는 현실은 감안하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체감하는 빈곤은 ‘생계 위협’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 저평가되는 여성노동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특히 여성에 대한 고용 촉진이 두드러지고 있고 일련의 여성관련 정책 개혁이나 각종 일자리 창출정책의 핵심에는 여성의 고용문제가 놓여있다. 이는 여성, 장애인, 고령자 등 전통적으로 노동권이 취약한 계층에 대한 고용 촉진을 통해 저임금·불안정노동자층을 손쉽게 양산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고용형태별 남녀 구성비를 분석해보면 여성의 비정규직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데, 임금노동자 중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58:42로 나타나고 있으나 정규직의 경우 71:29로 남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2005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모든 연령층과 전 산업에 걸쳐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기혼여성은 80%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나이에 따른 여성의 고용분포는 20대 초반과 40대 초반을 정점으로 M자형을 그리고 있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문제 등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었다가 재진입할 때 여성 대부분이 비정규직화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여성가구주 가구의 비율은 1980년 14.7%, 1990년 15.7%, 2000년 18.5%, 2003년 19.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의 임금 수준과 고용불안 정도는 이 같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여성의 빈곤화를 부추기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 법정 최저임금은 사실상 임금의 상한선이 되고 있으며, 특히 기혼 여성들은 법정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아무런 보호 없이 방치되고 있다. 2004년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125만명 중 기혼 여성은 65만명으로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성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성별로 구분되는 직종분리와 직무분리라고 볼 수 있다. 파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파견노동 허용업종(26개) 대부분이 전통적으로 여성 일자리로 분류되는 직종이라는 사실은 이 같은 성차별적 메커니즘을 반영하는 좋은 예이다. 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이 단순작업을 필요로 하는 직종, 판매직, 서비스직 등 성별로 구분되는 이른바 여성 직종에 종사하고 있고, 이 같은 여성 직종에서 관리자는 남성, 하위직급의 실무자는 대부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2. 한국 최저임금제도의 실태는 어떠한가

한국에서 최저임금제도는 1960년대 이후부터 국회에서 여러 차례 최저임금의 법제화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국제경쟁력의 약화와 고용증대에 대한 악영향을 이유로 미뤄지다가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어 1988년부터 시행되었다. 최저임금제도는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가가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임금의 최저선을 법·제도적 강제를 통해 확보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에 대해 고려할 때는 제도 자체의 존재 여부나 원칙적인 기능보다는 그 제도가 실제로 확보하는 수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즉 매년 결정되는 법정 최저임금의 수준이 노동자들의 생계를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인지, 법정 최저임금이 모든 저임금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적용대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 불공정한 최저임금 결정방식
현재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은 노·사가 참여하는 임금위원회 방식이고, 법정 최저임금의 수준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1년 단위로 산정하도록 최저임금법에 정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위원 각 9인,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 있어서는 노·사위원이 동수인 관계로 노동부가 추천하여 대통령이 위촉하는 공익위원이 실질적 결정권한을 행사한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지표는 최저임금법에 명시되어 있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및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최저임금법 4조 1항)이지만, 현실에서는 인상률에 대한 공익위원들의 ‘정치적 고려’가 실질적인 결정 기준으로 기능하고, 이 같은 준거지표들은 사장된다. 뿐만 아니라 공익위원들은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드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 비현실적인 최저임금 수준
이 같은 조건 속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법정 최저임금의 인상률이 결정되어 왔다. 최저임금 수준을 생계비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의 29세 이하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2006년 기준 최저임금은 단신 가구 생계비(1,176,695원) 대비 55.1%(700,600원)에 그치고 있다. 최저임금의 절대수준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매년 최저임금의 인상률이 명목임금 인상률에 못 미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최저임금이 소득분배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그 인상률이 명목임금 인상률을 계속 상회해야 하고, 실질임금 유지선(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을 고려한)을 확보해야 한다.

– 광범위한 최저임금 사각지대
또한 현재의 최저임금제도는 최저임금 적용에 있어서도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5년 8월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3,100원에 못 미치는 노동자가 전체의 11.6%인 173만 명으로 추산된 바 있다. 여기에는 최저임금 위반업체 노동자를 포함해 최저임금 적용제외 대상인 장애인, 감시·단속적 근로자, 수습 근로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상시 1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전 사업장에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최저임금법은 광범위한 적용제외 대상을 규정하고 있어, 다수의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밖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적용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데, 2005년 8월 기준 국내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의 규모는 약 59만 6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의 존재까지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법의 적용에 제외되고 있는 노동자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3.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과제

최근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고 노동자운동 내에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도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현실화 문제가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빈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반영하고, 이 같은 저임금과 빈곤이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기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현실화는 약간 정도의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이라는 문제로 치환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저임금의 문제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권리의 문제라면, 최저임금 현실화의 근본적 해결책은 저임금을 양산하는 구조적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인 노동유연화에 기인한다. 효율성, 경영혁신 등으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 시켰고 그들의 임금을 구조적으로 저임금화 시켰다. 그리고 이는 공공부문을 정점으로 일반 사기업, 대다수의 노동시장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선별되어 가장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군에 위치하게 되었다. 요컨대 최저임금의 현실화라는 당면 목표는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을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를 문제삼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목표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최저임금투쟁은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가. 최저임금투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속에서 갈수록 수탈당할 수밖에 없는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일차적으로 집약시켜 낼 수 있는 생존권 보장 투쟁이며, 이들 간의 연대의 고리를 더욱 확충시켜내고 이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무기로서 의의를 가진다. 이 같은 의의에 부합하기 위해서 최저임금투쟁이 구체적으로 목적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몇 가지 정리해보자. 첫째,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이 노동자 내부의 분절화와 ‘바닥을 향한 경쟁’을 극복하고, 최저임금을 매개로 연대를 활성화하여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 주요한 경로와 계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투쟁은 최저임금의 문제를 직접적인 적용 대상인 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의 문제임을 부각시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업장 내부로만 집중되었던 노동자운동의 역량을 의식적으로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투쟁은 투쟁의 요구를 임금인상폭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단과 민중생존권의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투쟁으로 전선을 끊임없이 확대해야 한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저임금을 확대재생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여성노동의 저평가·불안정화에 대해 적극 의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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