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월/칼럼] 노동자의 삶터를 지켜나가는 의료생협운동

일터기사

노동자의 삶터를 지켜나가는 의료생협운동

원주의료생협 기획실장 최 혁 진

의료생협은 땀흘려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보건의료와 건강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고, 그로써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삶터를 만들어내고자 자율적으로 조직한 보건의료협동조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보장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우리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택비와 교육비 그리고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평생 아픈 것도 참고 죽도록 일하다가 조금 살 만하면 큰 병에 걸려 그동안 벌어놓은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병원에 퍼주고 죽는 것이 오늘날 한국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삶의 양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오직 수익만을 목표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불안감마저도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고통스런 노동이 되물림될까 두려운 마음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이왕이면 보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고, 결국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뿐인가요. 미래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무기로 온갖 민간보험사들이 노동자,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습니다. 수년간 한국의 생명보험사들은 매년 수십조의 순이익을 창출하였습니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기생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오히려 고용은 줄여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는 상업자본들에게 새로운 자본 창출의 기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노인문제는 모든 노동자 가정에서 가장 힘겨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경제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가 모두 맞벌이에 나서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노동자들은 중풍이나 치매,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부모를 모실 겨를이 없습니다. 주변에 안심하고 모실 변변한 노인시설도 없거니와 그나마 몇 안되는 곳도 높은 비용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노인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임에도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어서 여차하면 불효자로 낙인찍히는 정신적 고통도 뒷따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터 모두를 이윤창출의 도구로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사회는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야할 의료의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한국의 의료기관들은 질병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과다한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버린 우리 노동자들은 이윤창출의 대상일 뿐입니다. 가벼운 질환에도 항생제를 마구 사용하여 한국은 항생체 처방율과 내성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습니다. 의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은 언제나 불필요한 진료와 각 종 검사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노동환경과 생활습관이 바뀌기 전에는 건강문제 해결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기존 의료기관은 약이나 몇 알 주면서 담배나 끊으라고 말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센터가 되어야 할 의료기관들이 또하나의 착취공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와중에 기업들은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겠다고 하고, 주식회사형 영리병원을 설립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노동강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질병발생율도 높고, 사망률도 높게 나타납니다. 그러다보니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료보험은 고소득, 고학력의 사람들에게 높은 보장성을 제공하면서 사업화하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소득에 학력수준이 낮고, 노동강도가 높은 사람들은 가입을 받아주지도 않을뿐더러 혹 가입이 되더라고 보장성이 낮은 상품에만 가입이 허용되는 것이 외국에서도 일반적입니다.

영리병원도 마찬가지 이유로 도입된 것입니다. 주식회사형 영리병원이라는 것은 철저히 수익을 목적으로 세워지는 의료기관입니다. 사실 한국의 모든 의료기관이 형식적으로는 비영리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영리기관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있기 때문에 일정정도 규제가 가능하였습니다. 영리병원에는 이러한 규제가 없습니다. 국내에 최초로 세워진다는 모 영리병원은 입원실이 600개인데 환자용 침대도 600개라고 합니다. 모두가 1인실이며 당연히 입원비는 아주 고가이겠지요. 몇푼 안되는 소시민 환자들을 수백명 돌보는 것보다 돈되는 사람들 소수에게 큰 돈받고 운영하는 것이 훨씬 득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의료생협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료생협은 이윤창출에 급급한 오늘날의 의료시스템을 반대합니다. 보건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 항생제의 남용을 막고 불필요한 진료를 거부하는 일, 거동이 불편하여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들을 찾아가서 돌보는 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생활환경과 사회적인 조건들을 변화시켜내는 일, 한사람 한사람의 지역주민들이 의료와 건강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일, 잘못된 의료정책을 시민들과 공유하여 변화시키는 일, 모든 이에게 차별 없는 의료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일 등이 바로 의료생협의 주요활동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원주의료생협은 현재 두 가지 기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의료의 사회적 소유를 실현하여 지역주민이 주인되는 올바른 의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의료는 인간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켜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써 본래 공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공(公共)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보편타당하게 차별없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의료의 90% 이상을 시장형 민간의료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서 시민들은 과연 의료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공의료라는 것은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시스템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공에는 사회적 소유의 방식이 있습니다. 의료생협은 국가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직접 소유하고 사회적으로 관리하며, 운영을 책임지는 사회적 소유 방식의 의료입니다. 의료생협은 시장형 의료기관이 우리를 이윤창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거부합니다. 또한 예산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국가보건의료의 관료주의적 태도와도 맞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 의료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의료전문가들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건강하게 변화시켜내는 일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가 의료장비가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곳입니다. 의료기관들은 저마다 첨단의 고가 의료장비를 구입하고 그것을 선전하고 홍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런 장비를 이용하면 건강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첨단 장비를 갖춘 의료기관들이 많은 마을보다, 마음을 나눌 친구와 이웃이 있고 숲과 공원이 있으며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추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의료기관들은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하느라 많은 돈을 투자하고 결국에는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진료를 하게 됩니다. 지역주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일에는 수익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주의료생협은 조합원들과 함께 혼자 사는 노인이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주민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의 빈곤 가정 아동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시설도 소박하게나마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는 일, 다양한 보건교육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일, 지역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일 등도 원주의료생협의 중요한 활동입니다. 아울러 모든 운영방식을 철저한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의 민주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건강문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며, 아울러 지역을 변화시켜낼 수 있는 시민적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료생협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한사람으로서 저는 많은 노동자들이 의료생협운동에 적극 참여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노동자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입니다. 돈이 없어도, 돌볼 사람이 없어도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본주의의 상품화로부터 우리의 삶터를 지켜내는 일이며, 결국 우리가 일터에서 자본 앞에 당당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해 가는 것입니다. 이웃을 발견하고, 이웃들과의 연대를 통해 모두가 건강한 지역을 만들어 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터를 진보시키는 운동이며, 강고한 사회적 연대의 길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의료생협은 우리 자신의 노동안전보건 투쟁의 든든한 근거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인되는 보건의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의료생협의 지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에 대항하여, 지역을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능동적이며 자심감있는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 나갑시다. 모든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과 노동자의 이웃들이 건강하고 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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