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월/현장의 목소리] 통일중공업 노동조합

일터기사

통일중공업 노동조합

아직도 싸움은 진행중…

취재/정리: 한노보연 부산연구소 이숙견

9월호 현장의 목소리는 경남지역으로 마창거제산추련에 부탁을 하여, 일터 취재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통일중공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부랴부랴 현장취재를 하게 되었다. 경남지역은 전국적으로 일상적인 노안활동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긴급하게 지역 산안담당자회의가 개최되어 현장점검과 이후 대응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던터라, 오늘도 산안회의가 긴급하게 잡혀서 통일중공업 노동조합으로 들어갔다.
긴급하게 잡혀진 산안회의라서 그런지, 10분정도 지나자 한분 두분씩 노동조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곧 산안회의가 진행되었다.

41세 노동자가 쓰러지다…
8월 19일 모처럼 특근을 하게 된 고 이동재 조합원은 오후 4시경 차량생산 1팀 케리아 조립파트에서 T-14 케리아 케이스가 맞지않아(외주에서 들어온 부품을 조립가공한 일을 함) 13.56kg의 해머로 분해작업을 하던 중 자리에서 쓰러져 옆 동료가 발견하여 응급실로 후송을 하였으나, 결국 의식불명인 상태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39세의 처와 두아들(13살, 7살)을 두었던 고 이동재 조합원은 부검결과 ‘확장성 심근증에 의한 심장 돌연사’로 판명이 났고 결국 가족들에게, 심지어 옆 동료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다.

예견된 사망사고였다…
금속연맹 문성현 전위원장이 처음 조합 활동을 시작했던 이 곳, 통일중공업은 합병된 이후 S&T 중공업(삼영과 통일의 앞글자를 땄다고 함)으로 바뀌면서 이름뿐만이 아니라 현장전체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잡아먹는 심각한 노동강도 강화..
소형파트의 경우 인수되기 전까지 13개 생산하던 것을 20개로 증대되었고, 고 이동재 조합원이 사망한 차량생산 1팀의 경우에도 5개작업을 하던 것을 7개로 생산량을 올렸고 심지어 하계휴가 이후에 작업자들에게 시간 당 1개를 더 올리라는 압박을 하였다고 한다. 어느 부서를 막론하고 생산량이 30%이상 증대되었다.
여기에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잔업 2시간을 해서 생산하던 물량을 지금은 시간당 생산량을 올려서 아예 잔업없이 8시간 근무만으로 작업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본급이 낮고 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우리나라 임금체계로 볼 때는 노동자의 생계문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하여 지역에서는 통일중공업 사택의 경우 신문대금이나 우유대금을 받으러 주말에 갈 경우 대부분 아저씨들이 돈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생계의 문제로 맞벌이가 많을뿐더러, 대부분의 일이 비정규직 노동이므로 주말에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일을 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1000명이 넘던 노동자의 수도 현재는 860명 정도로 엄청나게 줄어들어 현장의 노동강도는 더욱 더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평규회장의 노동탄압과 현장통제 하늘을 찌르다…
S&T 중공업의 회장인 최평규는 두산중공업내의 하청업체 사장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몇 개의 대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2003년 2월에 통일중공업을 인수하여 1년만에 적자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어냈다. 그리고 보수언론에서는 이렇게 되기까지 회장 개인의 각고의 노력(임금을 받지않고 직원들에게 임금을 나누어주는 선행을 보이며)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무슨 신화창조의 주인공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통일중공업을 인수하고 난 다음해 회사는 2004년 연초부터 410명 고용조정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시기를 앞당겨 노조를 임단협 테이블로 끌어냈고 노사 교섭 대표가 첫 인사를 나눈 날 100명의 조합원을 휴업휴가 조처했다. 그리고 2차 교섭에서 임단협 동결을 들고 나왔다.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부당한 휴업휴가 철회를 주장하자, 3차 교섭 직후 100명, 4차 교섭 직후 50명을 차례로 휴업휴가 조처했다. 그래도 지회가 손을 들지 않자 회사는 25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노동부에 신고했다. 결국 지회는 정리해고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임단협 동결’, ‘휴업휴가자 2005년 1월말까지 단계적 복귀’를 골자로 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회사는 이 임단협을 두고 ‘경영 정상화 대타협’이라고 불렀다.
이후 일방적인 휴업휴가에 반발한 조합원들이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업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고, 지노위는 이를 받아들여 ‘휴업휴가는 부당하므로 즉각 원직 복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05년 1월 250명의 휴업휴가자 중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던 176명의 조합원에게 주물공장에서 일하라는 일방적인 인사 발령을 냈다. 단체협약에 ‘9인 이상의 대량 인사는 노사 합의를 거쳐 본인의 불만이 없도록 처리’하게 되어 있음에도 지회와 합의는커녕 협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했으며, 급기야 여기에 반발한 90명의 조합원을 무단결근 등의 이유로 징계해고를 한 것이다.
다시금 90명의 해고된 조합원들이 중노위의 재심을 거쳐서 9명을 제외하고 81명의 조합원이 복귀를 하였고, 9명의 조합원은 중노위에 져서(단지 주물공장 파견에 대해 항의하면서 현장순회를 했다는 이유로, 순회장소 중 방위산업체 공장인 특사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다시 항소를 한 상태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노동탄압을 실시한 후 현장 분위기는 180도 바뀌어 버렸고, 회사의 현장통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산안회의를 마치고 사망사고가 발생한 차량생산 1팀 현장순회를 하러 들어갔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조합원들은 다 퇴근하고 없었다. 하지만 현장 곳곳에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플랭카드가 붙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문구가 ‘생각 즉시 행동’이라는 문구였는데, 이 문구는 최평규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로 전 회사에 도배가 되다시피 해 있었다. 최평규 회장의 말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누가 되든지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250명에 대한 휴업휴가 이후, 현장은 어느새 회사측이 장악하게 되었고, 관리자들은 조합원이 담배를 핀다든지, 이야기를 한다든지 하면 들어가서 일하지 뭐하느냐? 들어가라! 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고, 조합간부들이 현장순회를 하면 왜 왔느냐, 작업방해된다, 나가라! 며 노조간부들의 현장출입을 막는다고 한다.

이렇듯 이번 사망사고는 강화된 노동강도와 억압적인 현장통제로 인하여 발생한 명백한 회사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에 대한 조합과 유족의 교섭요구에 ‘조합이 함께 라면 교섭할 수 없다’ 라며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순회를 마치고, 빈소가 있는 창원병원으로 가서 이후 대응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끝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출근시간에 맞추어 회사정문 앞에서 유족과 노조간부들이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였고, 선전전 이후 바로 밀고 들어가서 고 이동재 조합원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들어가 작업을 못하게 막았다.
그때서야 회사측에서 교섭을 하자는 연락이 왔고, 유족대표와 노동조합, 회사가 만나서 교섭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게도 사측은 ‘위로금 천만원, 보상금 2천만원, 회사 과실 10%’라는 안을 들고 왔고, 황당한 노동조합과 유족은 못받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교섭이 결렬되었다.
뒤이어 조합과 유족안을 들고 몇차례 교섭을 진행하였지만, 회사는 막무가내로 무조건 자신들의 안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퇴근시간까지 별다른 진전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와 있었던 유족들이 많이 답답해하며 조합에 하소연을 하였지만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부산으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한지 2-3시간 지난 후에 연락이 왔다.
안타깝게도 유족들이 조합을 배제한 채 회사와 만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결국 그날 밤에 회사와 합의를 하고, 다음 날 5일장을 치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 이틀동안 통일중공업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족과 노동조합이 똘똘 뭉쳐서 우리들의 요구를 다 따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지만, 그럴 수 있는 현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쩌면 많은 현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현재 여러분의 현장은 어떠한지?

5일장을 치룬 그날, 경남지역 산안간부들이 모여서 노동부에 가서 집회를 하고, 통일중공업 근로감독관을 끌고 통일중공업 현장점검을 하러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유족과는 끝까지 싸우지 못했지만 노동조합과 지역 노안활동가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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