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월/특집2] 산재보험 개정의 흐름

일터기사


산재보험개정의 흐름

김재광/ 집행위원장

40년 만의 대대적 손질의 사연

산재보험은 64년에 제정되었고, 그 이후 많은 개정을 거치게 된다. 무엇보다 적용범위를 확대해나간 것은 긍정적인 부분임은 틀림없다. (현재 몇몇 제한은 있으나, 1인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적용범위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제 재해가 발생하여 적용을 받는 과정이나, 요양, 재활 그리고 복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난관이 버티고 있어 제도개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보험의 대행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전횡이 더 해지면 그야 말로 ‘악’소리가 안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개정의 작업을 시작하는데,… 여기까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즉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장을 확대하는 취지의 개정이라면 말이다. 진짜 속내는 이렇지 않으니 사단이 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러하듯 노동부는 산재보험의 구조개혁을 구상하는데, 쓸데없는 보상은 줄이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여, 근로의욕을 샘솟게 하여, 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기하는. 그리하여 노사가 상생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이에 자본 역시 옳다구나 박수를 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산재보험을 크게 한번 손 볼 요량으로 적극적으로 경총을 중심으로 달려들게 된다.

하여 노동부는 2004년 산재보험 제도상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를 6월부터 12월까지 운영하였으나, 보험요율체계, 요양제도, 보험급여 등 제도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지 못하고 1차 발전위원회를 마감한다. 시동은 걸렸는데, 진전은 없는 셈이라, 다시금 2005년 3월부터 ‘제2차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를 가동시키고, 13개 과제를 논의하고 그 해 12월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고 해산하게 된다. 이렇게 노동부의 개정에 가닥이 잡히게 된다.


노사정위원회 신묘함은 가동되고…

그런데 문제는 지난 40년 간 제도에 익숙한 재해노동자들이 ‘쓸데없는’ 보상을 줄인다고 반발하고, 노동조합이나 안전보건운동은 승인, 요양, 재활, 복귀 등의 보장의 확대의 획기적 변화도 없이 사용자의 간섭 여지만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에 올해 4월 5일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중소기업협의회,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전원합의제를 전제로 논의기구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노동부는 돌연 5월 4일 노사정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이곳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무래도 노사정위원회가 ‘협의회’보다는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어떤 곳인가? 노동과 자본이 서로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사회적합의주의 전위기구 아닌가. 더군다나 민주노총은 99년 대의원대회의 결정에 의해 들어 갈 처지가 아니니 명분 있게 배제하기가 얼마나 좋은가,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선 순간, 재해노동자 그리고 노동자 건강은 내줄 것이 있어야 하고, 얻을 것을 고민해야 하는 마이너스 섬 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설사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이 참여한들 마찬가지다)

이리하여 노사정위 산하에 산재보험발전위원회가 가동되고, 5월부터 8월까지 1주 1회 꾸준히 회의를 하여 13차 회의를 통해 총 5개 분야, 36개 주제, 93개 항목이 논의된다. 지난 40년의 개정요구가 8개월 간 논의되고, 정리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논의한 의제만큼 정리된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의 요구를 수용한 노동부의 안을 가공하고, 명분을 얻으려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찜찜한 것은 민주노총의 이해하기 힘든 태도이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앞서 쓴 바와 같이 참여할 수가 없다.(이 위원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아니므로) 즉 논의에서 완전배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별다른 물리적 대응 없이 노사정위 산하에 산재보험발전위원회를 사실상 관망하였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태도를 불문하고, 구조적으로 배제된 상태에서의 논의를 어떻게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를 불문하고, 노사정위원회가 거래하는 곳이라는 것은 상식인 인지라(거래라는 말이 거시기하면 협상이라고 단어를 바꿔보자, 그래도 마찬가지다.) 이 곳에서 노동자건강, 재해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하고, 거래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다. 설사 백이 개선되고 하나가 개악되더라도 그 하나로 인해 고통 받는 노동자가 생긴다면 전체가 개악일진데, 지금 이런 상태로는 거래할 수가, 거래할 것이 없다.

민주노총은 두 가지 명분으로도 노사정위 논의를 중단하고, 산재보험발전위원회를 해체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9월 1일 노사정위원회 앞 농성을 할 때 까지도 이러한 주장을 선명히 들어본 바가 없다. 노동안전보건단체 역시 노사정위로 논의가 접어들어 갈 때 이점을 명확히 지적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건 9/19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통하여 ‘산재법 전면개정과 정부 개악법안 저지투쟁을 하반기 집중투쟁과제로 설정하고, 하반기 투쟁과 결합해 진행한다’는 결의를 하였으니, 지켜볼 일이다. 우선은 11월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10월부터 노사관계로드맵 더불어 이 문제를 가지고, 대정부 압박투쟁을 현실화하는 것에 매진할 시기다.


타협할 이유가 없어지는 자본

아무튼 여기까지가 개정논의 과정이다. 노동부는 논의결과를 참고삼아 입법예고를 할 것으로 보이고, 노동안전보건진영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법도 문제투성이다. 헤아릴 수없는 노동자들이 복지제도라는 산재보험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이번 과정에서 불현듯 자본은 이제 노동과의 타협의 지대마저 거추장스러워하고, 필요 없음을 확신해가고 있음을 본다.

산재보험은 기원은 노동과 자본의 타협이다. 산재보험을 통해 자본은 적은 비용으로 민사적 책임을 면하고, 노동은 자본의 영세성이나 과실등과 상관없이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노동의 잠재적 불만을 해소하고, 살만한 자본주의로 위장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보험은 사회적으로 일정한 순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안전지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마저도 축소하려하는 것을 목도하니, 자본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인지 소름이 끼친다.

때문에 싸움을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노동자의 손발을 묶고, 노동자를 기계부품만도 못하게 다루고, 망가지면 버리는 자본, 타협을 구걸해도 타협할 의사도 타협할 이유도 없는 자본이 더욱 더 커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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