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월/신년]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일터기사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고단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2006년은 노동의 보람을 집어삼키고 임금 노예로 살아가는 족쇄를 토하며,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꿈을 집어삼키고 돈과 힘을 가진 소수가 모두를 지배하는 차별과 착취의 악몽을 토하는 자본의 생존 방식이, 그야말로 거침없이 관철된 한 해였습니다.

한미FTA, 비정규직 양산법, 노사관계 로드맵,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산재보험 개악 등 굵직굵직한 것들 뿐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을 일터와 삶터에서 몰아내는 해고나 계약 해지, 부동산 투기와 강제 철거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물대포와 소화기 가루, 방패와 곤봉으로 때려잡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살해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로 인한 다수의 피해자들이야말로 자본의 더러운 입을 틀어막을 저항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아직 주체의 현실은 그저 고단할 뿐입니다. 그나마 고단함을 감수하며 굴종하지는 않겠다는 이들조차 분노와 저항을 모아야 할 대규모 집회에서는 지루한 연설회의 청중으로 동원되고, 세상을 멈추자던 총파업이 생산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는 토막 파업 지침으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보며 답답해하는 정도입니다.

그만큼 노동자 민중의 생로병사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자본의 족쇄와 악몽이 위력적인 탓도 있지만, 누구와 어떻게 힘을 모아서 무엇에 대해 싸워야 할 지에 대해 주체 안의 교란도 또 하나의 원인입니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 빈곤과 불안정을 강요하는 정부와 국회에 대해 노동자 민중이 직접 맞서는 투쟁 대신 소위 지도부의 규탄과 촉구, 경고와 호소가 반복되었습니다. 초법적 내부 지침을 내세워 재해노동자를 짓밟고 산재보험의 존재이유 자체를 뭉개온 근로복지공단에 맞선 투쟁이나 산재보험 개악에 야합하여 노동 유연화를 완성하려는 노사정위에 맞선 투쟁 대신, 제도 개혁에 대한 전문주의/대리주의적 기대와 관행이 자리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 단결도, 지역 연대도, 일상의 저항도, 다수의 주체가 실천으로 함께 하지 못한 채 ‘어찌 해야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찌 해야 싸울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른 채, 새로운 한 해를 맞습니다.

2007년에도 자본은 노동자 민중의 삶과 꿈을 집어삼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대선을 노리고 얄팍한 당의정으로 포장할지 모르나, 삼키는 순간 오늘의 삶과 내일의 꿈을 빼앗겨 버릴 독약을 우리에게 강요할 것입니다. 한미FTA와 노동 유연화 공세의 수문을 활짝 열고, 저항을 차단하기 위한 회유와 폭력을 두손으로 휘두를 괴물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힘을 모아 싸우자며 옛 동아일보사 옥상을 점거했던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외침에서 희망을 봅니다.

집회건 농성이건 투쟁의 한걸음마다 조합원 모두가 함께 임하며 일년 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KTX 승무지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희망을 봅니다.

군대의 무력에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농사를 지으며 강제 철거의 공포를 공동체의 희망으로 바꾸어가는 대추리 주민들의 저항에서 희망을 봅니다.

몇년 째 사측의 야만적인 폭력과 비열한 회유가 그칠 날 없는 가운데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부산지하철매표소를 비롯하여 수많은 장기투쟁 현장 노동자들의 꿋꿋함에서 희망을 봅니다.

업종과 사업장의 경계, 간부와 조합원의 경계, 활동가와 대중의 경계를 흔들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그 경계에 부딪쳐 넘어지기도 했던 지역 연대 투쟁의 시도들에서 희망을 봅니다.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함으로써 모두의 권리를 일깨우며, 누가 대신 싸워줄 것을 바라기 보다는 직접 자신의 몸과 삶으로 실천하고 연대하는 이들이야말로 희망의 근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동지들에게 희망을 말하며 새해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희망의 근거를 더 굳게 부여잡읍시다. 주체 안팎의 왜곡과 교란을 뚫고 자본의 족쇄와 악몽에 맞서 스스로 저항을 만들어가는 희망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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