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월/포커스] 법원의 과로에 의한 간암 사망 업무상재해 인정, 어떻게 봐야 하나?

일터기사

법원의 과로에 의한 간암 사망 업무상재해
인정, 어떻게 봐야 하나?

한노보연 회원, 산업의학 전문의 김형렬

간 질환 악화는 과로스트레스와 상관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하급심인 행정법원에서 나왔다. 대법원 판결의 기준이 된 보고서가 판단 자료로 불충분하다고 판단, 업무 스트레스로 악화된 간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김상준)는 24일 보험회사 간부로 근무하다 간암으로 사망한 A씨의 아내와 외교통상부 서기관 B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과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각각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는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하면서 상부로부터 스트레스와 압박을 많이 받았고, 밤을 새우거나 새벽에 퇴근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면서 “기존에 앓고 있던 만성 B형 간염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급격히 악화돼 결국 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B씨에 대해서도 중요한 외교행사 업무에 따른 초과근무 및 수면부족으로 육체적 피로가 누적됐고, 업무 총괄 책임자로서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끼는 등 장기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 앞서 2002년 대법원은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은 과로나 스트레스가 없어도 악화될 수 있고, 임상적으로는 과로나 스트레스 없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사망자가 예외적으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질환이 정상적인 경우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점에 관한 자료가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판결은 대한간학회가 2001년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을 받아 만든 ‘간 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란 보고서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이 보고서가 업무 스트레스와 간 질환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자료가 아니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보고서는 만성 간염 환자에게 육체적 활동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육체적 과로가 간 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보고서는 2~3개월 만에 만들어진 문헌 요약본으로서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의뢰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보고서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서울신문 1월 25일자 기사 인용).

▶ 2002년도 간학회에서 제시한 연구보고서가 나온 이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기존 간질환의 악화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판결이 불인정으로 판정되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그간 산재불인정의 주로 근거로 활용되었던 간학회의 연구보고서가 명확한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즉, 기존 간학회 연구보고서가 과로와 간질환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막아낸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곧바로 ‘과로에 의한 간질환 악화 모두를 업무관련성으로 인정’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철저한 원인주의에 입각해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기여정도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들의 문제, 유가족들의 문제는 뒷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간질환을 둘러싼 업무상 질병 논쟁을 보며, 우리나라 사회복지 정책의 후진성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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