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월/되돌아보기]그 옛날 직업병 망자의 영혼에 분노하던, 지금의 대통령

일터기사

[되돌아보기]

그 옛날 직업병 망자의 영혼에 분노하던, 지금의 대통령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위원 신상도

세상 서러움 힘없이 토하다가
자신이 만든 온도계 하나 가슴에 걸고
서럽게 아프게 죽어간 소년 문송면
저승 가서 부디 고등학교 입학하여
못다 한 아쉬움 갈고 닦으며
이 세상 기류을 바르게 전해다오
(‘문송면’ <구봉산 가는 길> 조신호 作, 1993)

해마다 7월이면 우리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故문송면을 생각한다. 마석 가는 길 언덕너머에 모란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7월이면 어김없이 다치고 병든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아 외지고 험했던 어린 노동자의 삶을 생각하곤 한다.

불행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간 소년

故문송면이 고향인 서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고등학교를 보내준다는 서울의 공장에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2월 5일, 당시 나이로 14살 밖에 되지 않을 때였다. 압력계와 온도계를 만드는 생산직 50명 정도의 협성계공에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야간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달이 조금 더 지나고 나서, 두통 불면증, 열, 허리와 다리의 근육통이 생겨 88년 1월 20일부터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이러 저러한 치료에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자,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휴직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달에 받은 돈은 고작 7만 5천원 뿐. 발작을 일으켜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퇴원하였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후, 비로소 수은중독과 유기용제중독증 추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진단서를 근거로 노동부에 산재요양신청을 하려 하였으나 회사는 확인 날인을 찍어주지 않고, 노동부에서는 확인 날인이 없으니 요양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어린 직업병 환자의 딱한 처지가 언론에 오르자, 그제서야 노동부의 요양승인이 나왔으니, 요양승인을 신청한 지 석 달이 지난 6월 20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故문송면은 직업병전문 대학병원으로 옮긴지 이틀 만인 7월 2일에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다. 사실 故문송면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불행하다고 말할 틈도 없었고, 세상을 원망할 만큼 물정을 알지도 못하였다. 그냥 앓다가 외진 곳에서 죽어갔을 뿐이었다. 그는 그 때 한참 세상살이에 대한 희망에 부풀 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숱한 문송면을 죽이고 있는 지금의 대통령

처음 문송면의 애타는 소식이 전해지던 시절, 당시는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정치적 역동성이 솟아오르던 88년도이다. 이 시기에 부산에서 막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노무현 현 대통령이다.
“지난 7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5세 된 소년노동자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직업병에 대비한 의료체계의 미비 수은중독임이 밝혀진 이후의 회사의 비정한 처사와 노동행정관청의 태만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또래의 제 자식 놈은 아직 공부조차 힘이 들어서 온갖 투정이나 부리고 응석이나 부리고 있는 철부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 소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나이에 멀리 서산에서 서울까지 부모 슬하를 떠나온 것만 해도 애처로운 일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귀중한 생명이 좀먹어 가는 그 위태로운 작업장에 방치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한 책임은 결국 무능한 그의 부모만 져야 되는 것입니까?(중략)
노동부장관!
현재 전국적으로 미성년 취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다시 안 묻습니다. 한국의 산재율은 세계의 몇 번째입니까? 해마다 산재로 죽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그 중 병신이 되는 수는 몇이나 됩니까? 좀 알기 쉽게 1천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해에 몇 명이 병신이 되거나 죽는가? 한 노동자가 40년 일한다면 산재로 죽거나 병신이 될 확률은 몇 명 정도가 되고 그 중에서 죽게 될 확률은 몇 %나 되는지 1천명을 기준으로 해서 역시 한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은 꼭 한번 정확한 수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문송면군 사건은, 지난 2월 조사결과 그 공장 바닥에 수은이 떨어져 있었던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밸브’에서 수은이 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친구와 본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중대한 과실이 될 만도 합니다. 왜 구속하지 않습니까?” (88년 7월8일. 국회 본회의 노무현 의원의 대정부 질문 내용)

젊은 국회의원의 열정적인 항변 속에 담겨 있던 故문송면은, 그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된 오늘날, 기차에 육신이 잘려나가는 연 30명의 철도노동자의 삶으로, 삼호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죽음으로, 울산 SK정유에 다녔던 백혈병 노동자의 현실로 늘 되살아나고 있다. 수 만 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노동자로, 수면장애로 잠을 못 이루는 교대 노동자의 일상으로, 故문송면은 매일매일 우리 사회의 검은 그림자로 나타나고 있다. ‘중대 과실로 노동자가 죽었는데, 왜 구속하지 않느냐’고 노동부 장관을 호통 치던 젊은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된 지금, 연 2700여 명의 노동자가 죽고 7만 명의 노동자가 노동재해로 고통 받고 있다. 안전보건 규제 완화를 주창하는 참여정부의 주인공, 그의 놀라운 변신에 그저 마석 모란공원 어린 노동자의 넋이 안타까울 뿐이다.

15년 전 직업병 망자의 영혼에 분노하던 호통소리가, 대통령이 된 지금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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