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월/되돌아보기]여성의 노동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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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기]

여성의 노동과 건강
서울대 보건대학원 산업의학교실·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이혜은

생식기 직업병에 여성노동자들 집단적으로 노출

지난 94년 경남 양산의 LG 전자 부품 사업장에서의 유기용제 집단 중독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체 노동자 33명 중 69%에 해당하는 23명이 생리중단, 골수기능 저하, 정자 감소 등으로 직업병 인정을 받은 것이다. 원인물질은 노동자들이 세척작업에 사용한 유기용제인 2-브로모프로판으로 당시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관리대상 물질이 아니었다. 당시까지 인체에 해독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인체에 해로울 만큼 고농도에 노출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장측은 솔벤트 5200(2-브로모프로판) 침전탱크 2대를 추가 설치하면서 솔벤트의 휘발을 막기 위해 환기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서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근무시켜왔다고 한다.

20대 꽃다운 여성 노동자들, 영구적 불임 선고 받아

검사 결과, 결국 난소기능 장애와 골수기능 저하 등의 여성 17명과 정자수 감소 남성 6명이 집단적으로 직업병을 갖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2년 후, 여성 12명과 남성 4명이 영구적인 불임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때 밝혀진 직업병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내분비 학회지에 실리는 영예(?)를 안았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게 된 노동자들, 그러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으로 마무리되었고, 무려 6년이 지난 후에 산업안전보건법 상 2-브로모프로판이 여성 노동자의 취급 금지 물질로 제정되었다. 여성노동자의 삶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파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유산 경력 없이 버티어 나갈 수 없는 직장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졌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일년 내내 기차를 타고 다니는 철도의 여승무원 7명 중 4명이 유산을 경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밤새워 표를 팔고, 차량을 정비하고, 심지어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오르고 내리며 수신호를 보내고 차량을 연결, 분리하는 일을 하는 입환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생리불순과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가 보건 휴가를 받으면 다른 누군가가 두 배의 일을 해야 한다. 법이 정한 보건휴가는 공허한 이름일 뿐이다. 심지어 애를 낳는 날, 심해지는 진통 속에서도 표를 팔아야 한다. 명절에는 병가 금지 공문이 내려온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임신 기간에도, 열차 사이 좁은 틈에 기어 들어가 온몸을 뒤틀며 용을 쓰는 입환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전환배치를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사측은 오히려 집에서 먼 역으로 전근 조치를 취하고, 그곳에서 다시 입환 일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 여성노동자는 결국 유산을 하고 말았다.

구조조정, 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그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비단 하나의 공기업 사업장 예만은 아닐 것이다. 생식기능에 유해성을 지닌 마취가스, 벤젠, 일산화탄소 등 여러 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가사노동까지 부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강철같이 단련된 여성 노동자를 요구한다. 어머니, 아내, 우리의 누이들이 살아가는 끔찍한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01년 통계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8.4%에 해당하며 여성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은 26.7%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이 73.3%를 차지하고 있다. 정규직을 포함하여 여성노동자 임금의 평균은 남성노동자의 63%밖에 안 된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모성을 위협하는 유해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화는 여성의 결혼, 임신, 출산, 양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스스로의 선택이든 사측의 압박에 의해서든 취업의 단절을 겪게 되는 경우가 흔하고 이후 재취업을 한다 하더라도 거의 비정규직이 되기 쉽다. 보호받아야 할 숭고한 모성을 빌미로, 오히려 여성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열악한 노동조건은 또 다시 모성을 위협하는 현실, 그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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