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만나고싶었습니다] “안 싸우면은 받을 수 없어요. 싸워야지 받을 수 있어요.”

일터기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안 싸우면은 받을 수 없어요. 싸워야지 받을 수 있어요”
–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박지선

(intro)
인천에 있는 한 게맛살 공장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공장에는 엇비슷한 나이의 중국인 여성노동자가 제법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14시간에 육박하는 노동시간에 시달리던 그녀. 말 한 번 나누지 못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안 싸우고 있으면, 숨어서 있어요. 출입국사람들한테 잡히면 안되니까. 만약에 하는 일 위험한 거, 뭐, 프레스공장 같은 데서는 사고나도 우리 공장 출입국사람들 오면 어떡하냐 그래서, 그냥 해야돼요. 농성하고 있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집에 숨어서 있어야 하죠. 언제 와서 잡혀가나, 언제 우리 회사 들어오지 않나 하면서 걱정이 있어요.”

여느 겨울보다 더 추운 농성장의 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던 날,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중식집회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 중에, 한국말이 능숙하다는 하셈(30세. 방글라데시)과 고디르(28세. 인도네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말솜씨가 놀랍다 했더니, 한국에 들어온 지 7,8년쯤 되면 이 정도 말은 한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따뜻한 나라에서 와서 한국의 겨울이 추울텐데, 힘들지는 않을까?

“좀 힘들죠. 그래도 이렇게 안 하면은 앞으로 더 힘들 거예요. 농성하면서 제일 힘든 거는, 제일 가슴 아픈 거는, 한국 정부에서 우리 39일 동안 농성하고 있는데, 한 마디 말이 없어요. 그런 거 정말 가슴 아파요. 우리도 사람이라,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남의 나라 와 가지고 뭐가 인간답게 사냐 그런 마음 가지고 이거 하지 않아요. 같은 노동자,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여기 농성하고 있어요.”

추운 겨울보다 노동자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자본과 정부였다. 이들은 강제 추방을 피해 쫓겨다니고, 숨어 지내다가 결국 명동성당에 농성장을 꾸렸다. 보통 산업연수생의 이름으로 1000만원 넘는 돈을 브로커비로 내고 2-3년을 허송세월 한다. 그러고 나니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간사냥’이다.

저는, 첫아들이에요.

명동성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성모상이 굽어다 보는 벤치가 몇 개 있다. 여름날에는 그늘이고 해서 괜찮은 장소였는데, 겨울이 되니 영 휑뎅그레하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 추워서인지, 가족이야기가 나와서인지 하셈은 갑자기 커피 뽑으러 가겠다면서 나섰다. 우리들에게 그렇듯, 이들에게도 가족은 소중하고 그립다.

“우리나라 인구가 많으니까 일자리도 별로 없고… 한국에서 월급 받아서 보내면 그걸로 동생들이 대학 다녀요. 보고싶었는데, 뭐, 어쩔 수 없어. 가면… 동생 대학교 보낼 수 없고… 여기서 일 안 하면 안되니까. 그런 마음 가지고 있어요.”
요즘엔 농성 중이라 돈도 제 때 부치지 못할텐데, 커피를 받아든 것이 민망스럽다.

“만약에 지금 가면…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 어떡해. 가난한 나라니까 일도 별로 없고 가면은… 그리고 다시 들어올 때 너무 힘들어요. 내가 지금 가면 다시 들어올 때 1200, 1300만원까지 들어가요. 그런데 내가 그 돈 벌을려면 내가 또 2년 동안 일해야돼요. 가면은 또 올 수 있나 없나 그것도 몰라요. 내가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울어요. 그래도 내가 가면 뭐해. 일도 별로 없는데..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달래요. 너무 가슴 아파요.”

투쟁을 통해 만나는 나라, 만나는 사람들

명동성당에 자리한 이주노동자 동지들의 보금자리는 몇 개의 천막이 연결해서 만든 것이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몇몇씩 모여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투쟁을 알려내는 전단지를 접기도 한다. 농성기간이 한 달을 넘어섰는데, 지친 기색이라기보다는 익숙해진 모습들이다.

“여기서 농성하면, 뭐… 교육도 있고, 또 노동영화도 보고, 한국 사회를 조금 알 수 있어요. 농성하면서. 저는 또 농성 전에는 신문지나 뭐, 이주노동자 때문에 한국사람들 일자리 없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아, 그런 소리가 맞나 안 맞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지금 농성에 들어와 가지고, 한국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또 밤에 어떤 한국사람 와서, ‘아우, 고생한다. 미안해 미안해. 한국정부 때문에 이렇게 됐어…’하면서 고생한다 그랬어요.”

기상과 함께 농성단 출정식, 교육, 오후의 시민선전전, 조별활동, 저녁 결의대회, 연대단위 간담회가 이들의 하루 일정이다. 그야말로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느끼고 한국사람을 만난다. 이것이 생활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머리띠를 두르고 찬바닥에서 농성을 하면서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다.

“왜 한국 정부가 처음에는 다 들어오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 가라고 그러는 거야. 우리가 불법이면, 한국정부도 불법이야. 왜, 우리가 회사 일 해 가지고 우리 사장님 돈 벌었어. 그러면은 사장님이 세금 내는데, 그 세금은 뭐, 불법 아니에요? 그래놓고 어떻게 우리는 불법이에요? 사람 먼저 왔어요, 법 먼저 왔어요? 왜 사람만 불법이에요? IMF때 우리도 열심히 일했어요. 우리는 사람도 아니고 개도 아니야…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어 가지고, 여러 가지 생각했는데, 우리 안 싸우면은 받을 수 없어요. 싸워야지 받을 수 있어요.”

피가 나면 다 똑같아요. 다 빨간색으로 나와요.

고디르는 인터뷰 내내 담배를 물고 있었다. 많이 핀다고 했더니, 모국에서는 피지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 늘은 거란다.
“제가 모슬렘이잖아요. 종교식으로 말하면 그래요. 사람…. 인간 있으니까, 인간적으로 하면, 어떤 권리, 어떤 논리 있으면 꼭 찾아야 해. 저는 그거 믿어요. 아마 다른 종교도 그런 말 있어요. 나는 사람 안 따져요. 한국사람이나, 이주 사람이나 다 안 따져요. 다 같은 마음이에요. 피가 나면 다 똑같아요. 다 빨간색으로 나와요. 다 인간적으로 해야돼요.”

겹겹이 입은 옷가지 속에서, 충혈된 눈을 봤다. 이 땅 노동자의 눈이다. 없는 동전을 탈탈 털어 자판기 커피를 건네는 따뜻함도,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자의 익숙한 손과 같다. 죽음의 사슬을 끊고, 인간다운 노동을 하기 위해 함께 나서고 있는 동지들이다. 이제 팔을 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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