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11월ㅣ이러쿵저러쿵]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일터기사

돈이면 다 되는 세상?

한노보연 회원 이영일

나는 반찬을 고루 먹는 편이다. 그래서 한정식집을 가면 괴롭다. 모든 반찬들에 손이 가기 마련이고 배가 불러 위가 꽉 찬 상태에서도 반찬 그릇들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멈추지 않는 내 손길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일상이다.
나의 독서 취향 또한 이와 비슷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씩은 책을 읽었던 나였지만, 이후로는 불어나는 몸무게와 더불어 손도 무거워졌는지 책을 손에 쥐는 일이 뜸해졌다. 입 안은 이미 가시덤불이다. 그러던 중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한창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그 때에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외면해버렸다. 출판사에서 만든 인위적인 유명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나서는 그 때의 판단이 완전한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샌델은 책을 통해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시장지상주의의 맹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답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그저 화두를 던지고 스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샌델의 동영상 강의를 보면 샌델 스스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며, 주제를 툭 던져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토론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하나하나 던지는 화두들에 대해 항상 다양한 예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짤막한 글을 통해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머릿 속에 떠오르는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한 가지는 ‘대리 줄서기 사업’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뉴욕 시에 있는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er)는 국가 보조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비영리 사업체이다. 이 사업체는 여름마다 공원에서 무료로 셰익스피어 야외공연을 한다. 공연을 관람하기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줄을 서기만 하면 무료로 누릴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싫고 지갑은 빵빵한 사람들이 ‘대리로 줄을 서 주는 사람들’, 일명 라인스탠더(line stander)들을 벼룩시장 사이트를 통해 고용을 해서 125달러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업이 되고 있고,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다른 곳에서도 이제는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료 공연의 관람권도 쉽게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황당한 생명보험금에 대한 이야기이다. 월마트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작업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사망보험금으로 30만 달러가 나왔는데, 보험금의 수령자는 직원의 가족들이 아닌 월마트 회사였다. 월마트는 사망한 직원도 모르게 사망자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것이다. 유가족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과정 중에 나온 월마트 대변인의 대답이 가관이다. 월마트 대변인은 월마트 직원 수십만 명의 명의로 된 생명보험 증권을 소유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직원이 사망한 경우 그 자리를 채우는 비용으로 사망보험금에 대해 당연한 보상금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샌델의 책에는 위의 두 예보다도 더 황당한 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으며,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목격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샌델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샌델이 던지는 많은 내용들이 우리가 속한 사회적 상황과 연결지어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의 영역이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문화, 환경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확대되어 가면서 돈 몇 푼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의 경계가 우리도 모르게 무너져 가고 있다. 샌델이 책에서 화두만을 제시한 채 뚜렷한 방향이나 답을 말해주지 않은 것은 우리 스스로 도덕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하여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5년은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나라가 어느 지경까지 될 수 있는 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소중한 시간은 지난 5년으로 충분하다. 앞으로의 5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지켜질 수 있는 희망적인 5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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