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6월|연구소리포트]한 버스 운전 노동자의 편지 –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②

일터기사

한 버스 운전 노동자의 편지
–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②

한노보연 선전위원 최 민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노동자 5명이 참여한 심층 면접조사와 전국운수산업민주버스노동조합 경진여객지회 조합원 20명 중 17명이 참여한 설문결과를 기반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의 내용을, 버스 운전 노동자가 보낸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싣습니다.

너무 높은 직무스트레스
지난 시간에 저희들이 보통 하루에 16시간씩 운전하고 있다는 얘기,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기점과 종점을 2-3 바퀴 돌아야 되는 현실, 이러니 안전운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해드렸는데요, 이러니 저희가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다음 표는 우리 경진여객 조합원들의 직무스트레스 점수입니다. 100점까지 있는 점수인데, 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높다는 뜻입니다. 보시면 보상부적절, 조직체계는 90점이 넘고, 물리환경도 88.9 점이나 됩니다. 하루에 회사에 나와 있는 시간이 20시간씩이나 되는데도 월급이 많길 하나, 인간다운 대접을 받길 하나 이런 생각 때문에 저희가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는 일은 운전이니까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있고요, 쉬는 시간도 없지, 어쩌다 틈이 나더라도 다리 뻗고 누워 있을 공간도 없지 물리환경 점수도 나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운전 노동자들이 모두 그런 게 아니에요. 표1 맨 오른쪽 칸을 보시면 2009년에 가톨릭대학교에서 전국의 버스 운전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던 결과가 있는데, 저희가 스트레스가 훨씬 높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표 1> 경진여객 버스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

“야, 연차를 왜 써? 그냥 그 날 근무 빼”
조직체계의 직무스트레스가 높은 건 너무 당연합니다. 운행 계획 짤 때 운전기사가 쉴 시간, 밥 먹을 시간도 생각 안 하는 걸 보면 회사가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연차라도 쓰려고, 최부장(노무 담당자예요.) 만나러 들어가려면 교무실 끌려가는 중학생 된 기분이라니까요. 내가 참 더러워서. 연월차 쓰러 사무실 들어가면 “야, 연차를 왜 써? 그냥 그 날 근무 빼” 이래요. 우리 민주버스 조합원들은 연차 못 쓰게 하는 게 부당노동행위라고 알고 있으니까 연월차라도 쓰지요. 저쪽 조합원들은 일단 잔소리를 듣게 되니까, 거기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그냥 안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는 형님 한 분은, 회사 사람하고 면담을 하다가 둘 다 흥분해서 한참 말다툼을 하게 됐대요. 어쨌거나 얘기 마치고 나오는데 “○○○씨” 부르더니 “조심해.” 이러더래요. 딱 위협이죠. 듣는 순간 ‘이제 완전히 날 죽이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니, 그 뒤로는 잠이 안 오고 그 말이 항상 생각나더래요. 그 형님 얼마나 심했으면, 몇 달 있다가 자기 발로 정신과도 갔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뒤로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잠을 잘 못 주무시고,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그날 생각이 나고 그런대요.
조직체계 관련된 스트레스 질문 중에 일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게 있던데, 정말 안 되고 있는 부분이죠. 사고가 나면 그게 크든 작든 기사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한데 기사들을 위한 위로나 대책은 전혀 없어요. 우는 애기 뺨 때린다고, 사고 나서 힘든데 사표 쓰라는 얘기부터 하니까요. 사고 금액이 7백만 원이 넘으면 해고 사유가 되거든요. 저는 동료 기사들보고 사고 나도 병원 가라 소리 안 합니다. 만약에 차량이랑 손님 다친 게 5백만 원 정도 나왔는데, 내가 병원 가는 바람에 7백만 원이 넘을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에 못 가는 거죠.
사고 냈다고 자르지만, 권고사직 후 재고용하는 식으로 다시 취직은 시켜주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신입으로 돼서, 그 동안 10년을 일했든 20년을 했든 월급이니 상여금이니 모두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처음 몇 달간은 신입이라고 상여금도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사고처리비용을 뽑고도 남지요. 사실상 사고비용을 기사가 다 대는 셈이에요.

하루에 수십 번 사람 때리는 상상을…
스트레스가 이렇게 높아서 그런지 이번 조사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정신건강이 아주 나쁘게 나왔습니다. 우울증 설문을 했는데,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14명 중에 8명, 그 중에서도 지금 바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나온 사람이 6명이래요. 아주 걱정스러운 결과라는데 이런 얘기를 듣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죠.
사실 저는 ‘내가 정말 정신이 좀 이상해 졌나’ 싶을 때가 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상상을 할 때가 있거든요. 조사한 의사 선생님 말로는 이런 것도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가 드러난 증상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나만 이런 생각하나 싶어서 주변에 물어보기도 해요. 내가 이상해 보일까봐 많이도 못 물어보죠. 주변 친한 사람 몇 명한테 물어보는데, 자기들도 그렇대요.
우리 같은 경우는 하루 평균 2,000명 정도 손님이 지나가잖아요. 그 중 1%만 쳐도 20명이잖아요. 사람 중에 1% 정도는 이상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하루 평균 20명하고는 계속 시비가 붙어요. 눈에 띄게 부딪치지 않더라도 쓰레기, 차내 음식, 요금 덜 내거나 그런 걸로 보이지 않는 시비가 계속 있어요. 술 취해서 대놓고 기사들한테 함부로 대하는 손님도 있고요. 그러면 앉아서 운전하다가도 막 끓어오를 때가 많거든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정말 크죠.

우울증상(CES-D)

빈도 (명)
평균
21.64

0~16점 미만
4

16~21점 미만
2

21~25점 미만
2

25점 이상
6


14
<표 2> 경진여객 버스노동자의 우울증상 점수 분포

사람 생명 다루는 직업인데…
이러니 지금 직업에 대해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죠. 다음 그림은 저희들의 직업 만족도를 표시한 겁니다. 아주 만족하면 5점, 아주 불만이면 1점인데요, 휴가 빼고 나머지는 전부 2점이 안 돼요. 한마디로 다들, 모든 문제에, 아주 불만인 거죠. 똑같은 내용을 2006년에 운수노동정책연구소에서 전국의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조사한 적이 있대요. 고용 안정은 2.6점, 노동 시간은 2.3 점이었다고 해요. 그로부터 지금 7년이 지났는데 경진여객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요?

경진여객 운전노동자들의 업무 만족도

우리 기사들이 이상한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고, 또 직업에 불만이 이렇게 많다고 해도, 보람 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좋은 일은 결국 승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승객들이 그 마음을 받아준 거예요. 승객들이 버스에 우산을 놓고 내리는 게 많거든요. 운전석 옆에 몇 개 놓고 있는데, 아기 업은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든가 이럴 때 우산 빌려주거든요. 아기는 비 맞으면 안 되니까요. 우산 쓰시라고 줬더니, 아줌마가 쓰고 갔다가, 내가 운전해서 돌아 나오는데 저쪽, 반대쪽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음료수 하나 사들고, 우산 챙겨 들고서요. 그런 게 보람이죠. 이렇게 버스 운전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또 사람 생명 그것도 수천 명의 생명이랑 직결되잖아요.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이 자기 직업이나 자기 일이 ‘아, 할 만하다, 참 보람 있다, 잘 하고 싶다’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이 사회나 우리 회사나 그런 데 대한 관심이나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 손에 손 잡고
이 보고서가 나온 것도 4월인데, 아직도 뚜렷하게 해결된 게 없어요. 수원시에서도 회사에 압박을 해준다더니 지지부진합니다. 이렇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저희들 마음이 답답하고 억울하고 울컥 올라오게 만드는 원인인 거 같아요.
그래도 저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믿음이 있어요. 우리가 참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었거든요. 민주노조 만들었는데 그 뒤에 회사에서 협박하니까 몇 번에 걸쳐서 수십 명이 탈퇴하고 결국 우리 20명만 남았으니까요.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니, 내가 좀 못 하더라도 다른 조합원 친구들이 열심히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지요. 지금은 소수의 노조지만 우리가 뭉쳐서 한 번 바꿔보겠다는 생각, 나는 떳떳하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우리 조합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조합원 수를 많이 늘리는 게 힘을 키우는 데 제일 중요하죠. 그래야 회사에서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겠죠. 과반수가 안 되면 할 수 있는 게 적고, 튀어나온 못처럼 두드려 맞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경진여객 운수노동자들의 문제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나, 우리 버스를 타는 여러 승객 분들에게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걸, 거기서 생긴 노동 문제가 나랑 연결된다는 걸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경진여객 운수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승객의 안전처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들 서로는 서로의 노동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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