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I 1월 I 문화읽기]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해 지셨나요?

일터기사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해 지셨나요?




선전위원 푸우씨




2000만 대열에 합류하다!



얼마 전까지 잘 쓰고 있던 핸드폰이 슬슬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액정 중간에 커다랗게 한 줄이 가는 것을 시작으로, 멀쩡하던 키가 잘 안 눌리고, 갑자기 전원이 나가기도 하더군요. 결국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요금제와 다양한 조건들 때문에 핸드폰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도 고민이 됐어요. 요즘은 핸드폰 구입이 이동통신사에 최소 2년간 노예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최저요금제를 사용하다가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 갑자기 통신요금이 훌쩍 뛰어버리니 판단이 쉽지 않더군요. ‘스마트폰을 쓰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도 하고, ‘스마트폰은 해킹이나 보안에 취약하다’는 언론보도가 새삼스레 들리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게 한 보름가량을 어찌할지에 대해서 끙끙대다가 결국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한동안 이동통신사와 핸드폰 기종 선택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죠. 어쨌든 그렇게 2000만 스마트폰 사용자 대열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변화된 일상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 적어도 2주간은 타오르던 연인 사이도 멀어진다”는 소문이 있다더니 그게 뭔 얘기인지 새삼 알겠더군요. 새로운 기능이 많은 스마트폰 때문에 이것저것 만져보고, 어플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지우고 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에게 둔감해진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출?퇴근시간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면 일단 눈부터 감았던 저인데, 어느 샌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더라고요.
한번은 버스기사 아저씨가 엄청나게 화를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들 핸드폰 만지느라고 정신을 빼놓고 다니니까, 참내!”라면서 요즘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지나친 상태에서, 급하게 벨을 누르고 내려달라고 생떼를 쓰는 일이 늘었다고 하소연 하더군요. 당시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안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서 만지작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지금, 조그만 액정을 들여다보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누르다보니 눈도 침침해지고,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한 병원에서 지난해 목 부분 통증으로 치료 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30대 환자 수가 전년 대비 30%나 증가했다면서, 스마트폰 가입자와 과사용 인구가 증가하면서 어깨 결림과 목뼈 변형이 일어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남일 같지 않은 요즘입니다.



스마트폰의 확산과 그림자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새로운 통신환경과 신제품 광고들이 쏟아집니다. 그 중 “성질 급한 한국사람”이라는 생활밀착형 광고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특히 주변의 여성들이 매니큐어를 바르고 난 후 마르기를 기다리지 못해 망치고 마는 안타까운 에피소드에 대해 많이 공감하더군요. ‘서두르지 말라’, ‘여유를 갖자’는 메시지와 함께 ‘답답한 3G 무선데이터 환경을 넘어, 팍팍 잘 터지는 우리 회사 이동통신사로 오세요! 그래야 성질 안버려요!’라는 KT의 마케팅 광고 말이죠.


노골적으로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런 이미지 메이킹이 기업에게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기업 입장에선 성공했다고 느끼겠지만, 전 이 광고를 보면서 뻔뻔하다고 느꼈습니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KT계열 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 문제, 작년 12월 초 KT공대위와 홍희덕 의원실이 발표한 KT계열 노동자 75%의 우울증, 63%의 자살충동 경험 등의 노동실태 결과, 최근 뒤늦게 LTE망 사업에 뛰어들면서 자사2G폰 사용자에게 서비스 해지 협박 등 온갖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현실이 오버랩되니 말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확산되고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그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혹사될 것이라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합니다. 단적인 예로 작년 팬텍은 ‘베가레이서’라는 기종을 출시하면서 모 경제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3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새로운 폰을 만들다시피 했으니 직원들 모두 밤샘 작업은 기본이었죠. 임산부도 있었지만 예외는 없었죠.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테스트들이었기 때문에 불평불만은 없었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후 팬텍은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와 불매 선언을 맛봐야 했습니다.



스마트하게 쥐어짜기



스마트폰의 재빠른 확산에는 기업들도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스마트폰을 직접 배포하고, 스마트폰 구입지원금이나 통신료를 지원하기도 했으니까요.
한 기업체는 ‘업무 공간에서의 스마트폰 활용’이라는 글을 통해 “(스마트폰 배포가) 자의와 상관없이 비슷한 근무환경과 사회경험을 공유하는 대다수의 인원이 갑자기, 함께,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게 되는 기이한 사회적 현상”이며, “업무와 휴식/이동 공간의 구분을 없애 언제 어디서든 connected된 상태를 만들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고, “기업에서 스마트폰을 배포할 때 기대했던 바는 스마트폰의 Mobility를 활용하여 업무 시간외 언제라도 긴박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족쇄를 채워 이제 시공간을 초월해 노동자를 쥐어짜내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태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섬뜩합니다. 온라인상에는 스마트폰을 업무용 기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스마트한(?) 기업운영을 홍보하고 있는데 무척이나 소름이 돋습니다. 강남구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청소차의 이동까지 실시간으로 전송해 업무효율을 높이겠다고 홍보를 하는 꼴이니 대단한 일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날, 독일의 폭스바겐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 지시가 너무 많아 직장과 집의 경계를 무너뜨려 일상이 불가능하다는 노동자들의 항의가 잇따라, 결국 노사 간에 회사 측의 업무 하달 메일 전달 시간을 제한하는 협상을 했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폭스바겐 노동자들에게 참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의 현실도 특별히 다르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함이 남습니다.



한 달 남짓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순식간에 여러 가지로 변화되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떨지 궁금해지더군요. 일터 독자 여러분,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해 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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