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되돌아보기] 노동과 여성의 건강, 그리고 아이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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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여성의 건강, 그리고 아이의 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서울대 보건대학원 산업의학교실 이혜은

수많은 요인들이 여성의 생식기계 건강과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임신 중의 영양 상태, 과도한 음주, 특정한 일부 약 복용 등이 임신 및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보통 모든 산모의 10~15%가 자연유산을 경험하며, 모든 출산아의 1~3%가 중대한 기형을 가진다. 하지만 이 많은 경우 중에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태아의 기형을 일으키는 약물로 가장 유명한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 유럽에서 개발되었을 당시 수면제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약이다. 하지만 시판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은 사지 기형, 안면 기형, 장기 기형 등 중대 기형을 가진 기형아를 수천명 출산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결국 이 약물은 시판이 중지됐고 제약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엄청난 값을 치르고서야 이 약이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약물 뿐 아니라, 직업적 노출도 기형아 출생의 1% 이상의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특정 직업을 가진 여성들 혹은 특정 물질에 노출되는 여성들에게서 특히 기형아 출산이나 아이의 발달장애가 높은 빈도를 보이는 것도, 직업적 노출과 생식기계 건강이 연관성을 가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는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기형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며, 있다 하더라도 보고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직업과의 연관성에 대해 거의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 역시 각 종마다 독성물질에 대한 반응이 워낙 다양하여 여의치가 않고 인체 실험은 당연하게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식기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는 독성물질의 목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미 백년도 더 전에 납에 노출된 도자기 제조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유산, 사산, 저체중아 출산 등을 겪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브로모프로판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불임이 되어 충격을 안겨준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병원노동자들이 노출될 수 있는 항암제나 X-레이 등의 전리방사선, 여러 바이러스들, 전자 작업장에서 노출될 수 있는 에틸렌 글리콜과 같은 화학물질과 유기용제, 원진레이온에서 문제가 되었던 이황화탄소, 임신 중의 고된 노동(장시간 서있는 업무, 중량물 작업) 등 많은 작업장 요인들이 모성과 태아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증거가 있다.

현재까지 동물 실험 결과 약 천여개의 물질이 생식기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진 상태이지만 작업장에서 사람이 다루는 물질 중 전혀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4백만개에 달한다. 위험하다고 알려진 물질이 아니니까 안전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에 대한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들의 야간근무를 제한하는 것과 산전 산후 휴가 등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만이 있을 뿐이며, 실제로는 이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산이나 사산을 경험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원인을 개인적 문제로 생각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로 인한 모든 책임까지 한 가족 내에서 떠맡고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무관심의 결과이다. 출산 전후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보장하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건강을 축복으로 안겨 줄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앞당겨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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