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 근골격계 직업병 “유해 요인 조사”에 대해 시비 걸기

일터기사

[칼럼]

근골격계 직업병 “유해 요인 조사”에 대해 시비 걸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신상도

역학이라는 말에는 보통 세 가지 뜻이 있다. 양자 역학(力學)과 같이 기계적․물리적 운동을 연구하는 분야가 하나이고, 점술가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역학(易學)이 그 두 번째이며, 질병과 그 질병의 요인을 찾아내는 역학(疫學, Epidemiology)이 마지막 세 번째이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질병의 요인을 밝히는 학문으로 역학(疫學)이 했던 역할은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원인을 찾아내어 예방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물론 최근에도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와 같은 전염성 질환에서 역학은 가장 중요한 진단과 예방의 방법을 제공한다.

그러나 근대적인 의미를 넘어 최근의 역학은 전염병과 같은 특정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원인균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발병되는 모든 질환의 원인을 찾아내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직업병은 대규모 노동자들이 특정 위해환경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질병군이기 때문에, 그 발생 양상과 예방 방법이 일반적인 전염병과 유사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정유 공장에서 발생한 다수의 혈액암은 다른 원인이 아닌 정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벤젠” 이라는 특정 유해 인자에 만성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초래된다. 또 유기용제 취급 공장에서 여성 생식기 기능이 집단적으로 퇴화하였을 때 ‘브로모프로페인’이라는 특정 유해인자가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역학은 직업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역학적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업환경 내에 다수 발생하는 질환이나 증상의 원인을 찾아내고 밝히는 과정이다. 이 때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다수의 증상 호소’, ‘다수의 직업병 질환의 발생’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은 해당 질환의 유해 인자를 찾아내어 개선하고 직업병을 예방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7월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노동부 시행 규칙 개정이 이루어진 이래, 3년마다 한 번씩 사업주는 근골격계 직업병의 유해 인자를 조사하여, 그 정도를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출하도록 의무화 하였다. 올 6월 30일은 이 시행 규칙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1차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종료시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대기업 사업주들은 시행규칙에서 나열하고 있는 유해 요인에 대해 어물쩡 조사하고 평가하여 보고하겠다는 속셈들을 보이고 있다. 근골격계 투쟁에 전혀 나서보지도 않았던 한국노총 지방본부에서도, 유해 요인 조사를 감시하고 대응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서도 이에 대한 준비로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옷은 흐트러지고 그 맵시는 제 값을 못하게 된다.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유해요인 조사란, 바로 역학의 방법을 적용하는 과정이다. 그 첫 번째는 바로 현장 노동자들에게서 증상과 질환의 규모와 정도를 시원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직업병의 규모와 정도가 파악되어야만, 위해 요인의 특징이 파악되고, 특별히 구체적으로 조사하여야 하는 부서나 작업환경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예방 방법을 모색하고 개선안을 내는 것은 직업병의 규모와 정도가 정확히 평가되어 그 유해 요인의 특성이 정확히 알려진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바이러스의 종류를 모르면서 백신을 만들겠다던가, 세균의 특성을 모르면서 항생제를 주사하겠다는 발상으로, 유해요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단지 옷맵시만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병들어 생존의 벼랑에 몰릴 수도 있게 된다.

지금 당장, 현장에서 시작할 유해 요인 조사의 첫 번째 작업은 근골격계 직업병의 규모와 정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회사에 이것부터 요구하여야 일의 순서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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