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9월|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일터기사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nextstep1@hanmail.net

군대시절, 상급자를 만나면 거수경례를 해야만 했다. 입대 초 습관도 되지 않았고 거수경례가 싫어 상급자를 못 본 척 지나치다 여러 차례 빰을 맞은 적이 있다. 구호가 ‘단결’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지 ‘충성’이었다면 뒤지게 맞았을 것이다.
2012년 2월 1일「근로기준법」1) 이 개정되면서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시행일 2012.8.2.)”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실제 노동시간 외에 작업준비시간, 대기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단체협약․취업규칙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경우 실제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통해 비공식적인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실제 노동시간으로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조항이다.
얼마 전부터 한 사업장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다른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분명 ‘시업시각 09시, 종업시각 18시’로 규정되고 있는데 대부분 노동자들은 아침 7시~8시까지 출근하고, 저녁 7시~8시에 퇴근하고 있었다. 업무에 따라 밤 10시나 11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이유를 물으니 “예전에는 아침 8시쯤 출근했는데 요즘은 점점 더 출근시간이 빨라지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한 경우에 일찍 출근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회사는 일찍 출근하는 것이 부서간 경쟁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임원이 일찍 나오니까, 부서장이 일찍 나오니까, 팀장이 일찍 나오니까’ 결국 팀원들도 점점 일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면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 업무량이 많고, 1일 근무시간에 그 업무량을 해낼 수 없다는 것, 본질적으로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있고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10분, 20분, 30분씩 출근시간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조기출근 현상을 바라보니 그 노동자들은 임원, 부서장, 팀장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나는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은 많고, 사람은 부족하고, 목표는 달성해야 하고, 시간은 없고, 못하면 ‘쪼임’을 당하는 반복된 일상이 결국 노동자 스스로 비공식적인 노동시간을 늘이는 최악의 방법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악화시키게 된 것이다. 퇴근 후 시간외근로를 하는 경우,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 OT입력을 해야 하는데 OT입력을 하고서도 성과를 못 내게될 때 압박을 더 크게 받을 것을 우려해서 OT입력도 하지 않은 채 밤 늦도록 일을 한다. 늦은 밤 퇴근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고, 다음날 꼭두새벽에 잠 들어있는 아이들을 보고 사무실로 향한다.
비단 이 사업장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성과주의는 최종적으로 개별화를 목적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피곤함과 우울함이 더욱 급증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개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은 사라져가고 눈치보기, 줄서기는 더욱 확대된다. 결국 ‘나만 아니면 된다’, ‘나만은 해내야 한다’는 자폭성 멍에를 스스로에게 씌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과로사, 직업성 정신질환이 급증하는 것은(산재로 인정되는 것은 일부분일지언정)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스스로를 죽이는 ‘충성맹세’를 멈추고 나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업무량이 많아서, 조직분위기 때문에 점점 더 일찍 출근하는 현상만이라도 막아낸다면 다음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1) 「근로기준법」 제50조 (근로시간)
①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시행일 20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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