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월/기획1]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주체되서 이끌어야

일터기사

[기획1]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주체되서 이끌어야
– 경남 근골격계 유해요인 지역조사단 활동 탐방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이민정

(intro)
경남지역 ‘근골격계 유해요인 지역조사단’(이하 지역조사단)이 지난 4월 28일 창원노동사무소 앞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마산, 창원 지역의 10여 개 사업장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조사단은 이 날 집회에서 ‘사업주가 노동자를 배제하고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려는 것을 강제할 것, 조사대상에 비정규직을 포함시킬 것’등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많은 사업장에서 유해요인 조사에 대한 대응방향을 잡지 못한 채 기관 선정, 조사 항목 등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유해요인조사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도 커다란 고민거리이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 중소영세사업장으로 구성된 지역조사단의 활동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어떻게 노동강도 강화 저지투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노동자의 불만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제일 먼저”

유해요인조사와 관련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마창산추련)에서 먼저 지역조사단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후 수차례 지역의 산안담당자 회의를 거쳐 지난 3월말 금속 대표자회의에서 지역공동조사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의하게 되었다.

“회사는 6월말까지 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거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 회사에서 유해요인조사를 해야 된다고 조합에 던졌는데 조합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니깐 ‘이런 게 회사에서 왔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는 문의가 나오기 시작했죠. 대부분 외부기관에 위탁해서 조사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조합에서 직접 할 수 있는데도 배우는 게 없어지거든요. 개별사업장으로 대응할 게 아니고 지역차원으로 조사하면서 산안부장들 역량도 키워갈 수 있고, 그 사업 통해서 조합원들도 조직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작됐죠.”

지역조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스코 지회 박희상 조합원은 지역조사단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박희상 조합원처럼 지역조사단에서 조사하지 않는 사업장의 현장 조합원들도 지역조사단 활동을 함께 진행하기 위해 월차까지 내며 결합하고 있다. 지역조사단의 활동이 지역의 공동대응을 만들고, 현장 활동가를 조직하는 과정이기 때문.

지역에서 지속적인 연대가 있긴 했지만 공동조사단을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에는 20여 개 사업장이 근골격계 설문조사까지 진행하고 실제 투쟁에는 대부분이 중도 포기했던 경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조사단을 꾸리는 데는 많은 준비 과정도 필요했다고 마창산추련 이은주 사무국장은 이야기한다.

“일단은 조직을 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중소사업장 중심으로 10개 정도를 뽑아서 계속 설득작업을 했죠. 그 과정 속에서 이야기한 게 지역 전체의 목표도 있지만 사업장별 목표와 계획이 따로따로 있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사측이 현장출입조차 막는 악질적인 곳이라면 지역조사단이 압력을 넣으면서 적어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독조사 하는 건 막자 이런 식이죠. 사업장마다 목표가 조금씩 다른 게 있는 거죠.”

지역조사단은 교육선전팀, 조직팀, 현장조사팀 등 3개 팀과 산업의학 의사 등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자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조사팀에는 유해요인조사 경험이 있는 사업장의 활동가와 조사대상사업장의 산안부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실제 현장 조사사업과 이후 활동의 핵심이 될 수 있는 현장대책위를 각 사업장별로 꾸리고 있다. 되도록 현장조합원 중심으로 구성하려 하지만 상황이 안 되는 사업장의 경우 대의원 중심으로 현장대책위를 구성하고 있다고.

사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어떤 전문기관을 선정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조사단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현장대책위와 현장조사팀이다. 박희상 조합원은 유해요인조사는 현장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현장 노동자의 불만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제일 먼저라고 보거든요. 그게 핵심이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게 뭔지, 생산방식이나 인원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먼저 알아야죠. 물론 전문가들이 도와줘야 되는 것도 있지만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건 가능할 것 같거든요. 유해요인조사가 올 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이후에는 수시로 할 수도 있고, 적어도 3년에 한번씩은 해야 되니까요. 한 번만 해보면 노동조합에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노동부를 계속 압박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지역조사단을 만들면서 각 사업장에서는 현장대책위를 구성하는 한편, 사업주에게 실제 지역조사단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시간을 인정할 것과, 조사내용에 노동강도 평가를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지역의 사업주들은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노사 자체조사로 정리, 외부 기관에 용역을 주겠다’는 등의 입장을 보였으며 이중에는 ‘지역조사단의 현장출입을 막겠다’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업장도 있었다. 유해요인조사를 지역조사단 차원에서 진행할 것을 노사가 합의한 사업장은 1곳이다.

“회사들이 대체로 눈치를 많이 봐요. 외부위탁 줘버리면 제일 편한데, 지역조사단이라고 조합간부, 활동가들이 들어와서는 현장분위기 조장하고, 조합원들 선동할까봐 겁을 먹은 것 같아요. 사실 노동조합 요구대로 회사가 안 할 것 같으면 하지 말라고 그래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6월달까지 버티라는 거죠. 지부에서 노동부를 계속 압박해서 ‘노사합의 안 보고 조합 도장 안 받아오면 인정 안 해준다’고 약속을 받았거든요. 조사 안 하면 갑갑한 거는 회사죠. 다른 지역에서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실시하려는 사업장들은 도장 찍어주지 말고 버티면서 노동부를 계속 압박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지역의 사업주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며 지역조사단의 현장사전조사를 실제로 막은 곳은 단 1곳이다. 지역조사단의 조사활동을 거부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 지역조사단은 노동부에 공문을 보내 ‘노사합의로 진행하기로 되어 있는 유해요인 조사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며 노동부를 통해 압박을 행사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실질적 참여가 가능한 사업을 했으면”

마창산추련 이은주 사무국장은 지역조사단을 제안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우선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서 끌어가야 된다는 거였죠. 법제화된 것 자체가 근골격계 투쟁으로 치열하게 싸워서 얻은 결과인데 유해요인조사 관련한 고민들이 과거의 작업환경측정이나 검진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법률적인 대응, 기관선정’ 등으로 머물러 있었거든요. 몇 년간 노력해왔던 노동강도 저지투쟁의 의미를 이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조사결과가 현장개선투쟁의 근거가 되야 한다는 게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욕심인데요(웃음), 이번 연대투쟁을 통해서 현장대책위 동지들까지 해서 지속적으로 현장 고민을 같이 풀 수 있는 토론들을 이어가는 거죠.”

지역조사단은 지난 5월 4일부터 7일까지 본조사에 앞서 현장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지역조사단의 현장조사팀이 각 사업장의 현장을 직접 돌며 각각의 문제를 파악하고 본조사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 사전조사를 진행하면서 현장 활동가들은 다른 사업장을 처음으로 찬찬히 돌아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5월 10일부터는 현장 조합원과 대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장대책위 간담회와 교육 등을 진행한다.

“현재까지의 성과라고 한다면, 전부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지역조사단에 참여하지 않는 사업장조차 우리의 요구와 내용이 어느 정도 기준이 되고 있다는 거죠. 이게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곳에서도 꼭 적극적으로 대응해 들어가는 게 아니라도 공동의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역조사단의 활동은 이제 막 시작이다. 본 조사가 남았고,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 요구안을 만들고 싸워야 하는 긴 여정이 남은 것이다.

“조사결과로 공동교섭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요구안 정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결과 전체가 나오면 지역에서 공통된 문제는 또 같이 풀어가야 될 거고, 그런 투쟁 계획들이 잡힐 거예요. 결과와 상관 없이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하고, 현장 조직하는 게 가장 큰 의미인 것 같고요.”

먼저 유해요인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카스코지회 박형기 산안부장은 이후 대응을 물어보자 “결과 나왔는데 개선도 안 하고 끝내버리면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라며 웃는다. 박형기 산안부장은 “요구안을 대략 정리했지만 회의체계를 통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고 조합원 여론도 들어야 되죠. 카스코는 이번 사업하면서 현장조직력 강화가 최우선이었거든요. 반별이나 라인별로 조합원 여론조직하고 현장조직하며 가고 있어요.”라고 덧붙인다. 박형기 산안부장 역시 지역조사단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조사단의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현장 조합원이 함께하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지역의 현장 조합원과 함께하기 위해 지역조사단에서는 공동조끼도 제작하고, 조합원용 배지도 제작할 예정이다. 현장을 돌 때도 조합원에게 지역조사단의 내용이 전달되고 선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식지도 제작해서 지회마다 복사해서 현장에 배포하고 조합원들에게 배지도 직접 달아줄 예정이다.

“지금은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이 없는’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조합에서 조합원은 빠져버리고 집행부나 전문가의 별개 사업이 되는 거죠. 이번 사업은 조직화가 원칙이고, 조직화를 못하더라도 조합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가 가능한 사업을 했으면 해요. 처음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큰 성과물 안 생겨도 상관 없다고 보거든요. 노동조합이 조합원과 함께하는 근골격계 사업, 그게 조직화를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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