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월] 농성장에서 영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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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서 영화 보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공유정옥

4월의 끄트머리에 모처럼 명동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다룬 영화를 세편씩이나(!)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도착하니, 지난 겨울부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건설노동자 동지들도 저녁 식사를 막 마치고 둘씩 셋씩 모여서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소비의 거리 명동 한복판에서, 차가운 밤공기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우리들은 조그마한 스크린을 세워두고 영화 세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건설현장에서 생긴 일> 중 한 장면입니다. 건설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방송차량을 타고 건설 현장을 순회하면서 선전선동을 하고 있어요. 동지들의 얼굴은 고사하고 멀리서 사람 모양만 어른거리는 현장을 바라보며 확성기를 잡고 얘기를 합니다. 얘기를 마치고 마이크를 끄려는데 멀리서 소리가 들립니다. 알고 보니 저기 멀리 현장에서 철골 앙상한 건물 꼭대기의 누군가가 환한 목소리로 “야아~”하며 두 팔을 활짝 벌려 휘휘 젓고 있네요.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먼 곳에서 보내는 동지의 인사! 뭐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을테니 그저 “야아~”하고 두 팔을 크게 저어서 하늘로 날리는 동지애! 마이크를 잡았던 동지는 그 모습을 보며 “야호~!”하며 반가움과 환희에 가득찬 웃음을 웃습니다. 마음이 환해지는 순간입니다.

두번째 영화 <소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에 나오는 여러 철도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아주 담담하게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이 동지들이 이토록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고통 속에 내동댕이쳐지거나 고통에 짓눌려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맞서 싸워왔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에는 임신 기간 동안 고된 일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묵살당한 것도 모자라, 보복성 인사발령까지 당했던 여성 노동자가 나옵니다. 관리자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힘들 걸 모르고 철도 수송에 들어온 거냐”고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당한 노동자는 망설임 없이 반문합니다.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걸 모르고 수송에 여성을 뽑은 거냐”고 말입니다.

세번째 영화 <노동자다 아니다>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파업을 위해 줄지어 서울로 향하는 커다란 레미콘차의 행렬과 광장에 가득 모인 노동자들의 대오… 그런 가슴 벅찬 단결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도끼를 휘두르는 경찰의 폭력, 짐짝처럼 동지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내는 자본의 잔인함, 분노와 설움의 눈물과 통곡, 기나긴 농성 투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야기 등 치떨리고 가슴 아픈 장면들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한 동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탄압받고…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세상을 일순간에 깨달았다고. 그리고 법도, 정부도, 그 어느 권력도 노동자 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노라고.

이 글을 쓰기 직전인 5월 5일, 전 조합원이 해고되면서도 147일간의 투쟁을 이어온 서보레미콘 동지들이 마침내 사측과 타결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은 패배에 굴하지 않고, 작은 승리에 멈추지 않고, 레미콘 노동자의 투쟁은 계속 되겠지요. 노래 가사에도 있잖아요.
“노동자다 아니다 따지지를 말아라, 투쟁의 시동을 멈추지 마라, 노동자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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