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월/기획2] 직업성 정신질환 인정을 둘러싼 쟁점

일터기사

[기획2]

직업성 정신질환 인정을 둘러싼 쟁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김형렬

(intro)
2001년 보건복지부는, 한국에서 주요 정신장애의 유병율이 30.9%라고 보고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코올 중독이 15.9%, 불안장애가 8.8%,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가 4.6%, 정신분열증을 비롯한 정신증이 1.1% 등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대로라면 10명 중 3명에게 ‘정신이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신질환의 발생 증가는 다양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특히 직장 내 과다한 업무량, 대인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등 직무스트레스의 증가가 정신질환 발병의 관련요인이다.
최근 들어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직업병으로 인정되거나, 승인절차 과정에 있으면서 다양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왔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은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것의 규모, 원인, 대책에 대한 논의를 한층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의 글에서 직업성 정신질환의 발생 현황을 정리하고 이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 쟁점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1. 직업성 정신질환 발생 현황과 인정 경향

최근 들어 직업병의 발생양상은 소음성난청, 진폐증과 같은 고전적 직업병의 발생이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인과관계의 명확성이라는 면에서는 다소 약하다. 하지만 뇌혈관, 심장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 그 질병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규모가 큰 직업병에 대한 관심과 보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최근 들어 노동강도, 직무스트레스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으로 대두되면서 정신질환에 관한 보고 역시 증가하고 있다. 직업성 정신질환의 경우, 2000년도에 27명, 2003년에 85명이 산재요양 승인을 받았고, 이로 인한 보험급여도 2003년 3,606백만원으로 전년 대비 67.0%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전체 보험급여 중 0.15%정도를 차지하고 있다(표1). 전체 발생건수는 그리 많다고 볼 수 없으나, 흔히 일반(비직업적)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는 정신질환의 규모가 워낙 많기 때문에 현재 보고되고 있는 직업성 정신질환의 규모는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향후 지속적인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승인을 받은 경우를 질병별로 구분해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27.3%), 적응장애(19.7%), 우울증(18.7%)의 순서로 나타났다. 그 외 공황장애, 조울증, 급성 스트레스장애, 불안장애 등의 순이었다(표2). 이를 다시 분석해보면 질병코드 F3(기분장애), F4(신경증성, 스트레스 관련성 및 신체형 장애)에 해당하는 질환에 대해서만 인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F3에 해당되는 질병으로 우울증·조증 등의 질병이 있으며, F4에 해당되는 질병으로 공포 불안장애·공황장애·강박장애·적응장애·해리장애·신체형장애·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이 있다. 이외의 질병, 즉 정신분열증을 비롯한 여러 분열형 장애, 행동장애, 인격장애 등의 경우는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인정된 경우가 없었다. 즉 이들 질병의 경우 개인적 소인에 의한 발생이라고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진단명을 무엇으로 받느냐가 직업병 승인의 관건이 되기도 하는데, 정신질환의 경우 그 질병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으며, 또한 최종진단이라기보다는 질병의 중간단계로서의 진단명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적응장애의 경우 대표적인 중간단계의 진단명으로 이 단계에서 직업병으로 승인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직업성 정신질환의 인정범위가 특정질환에 국한되어 있고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는 악화요인을 비롯한 어떤 부분도 인정되지 않고 있는데 반해, 외국의 인정 사례나 기준은 우리와 다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질환을 배제하거나, 개인의 감수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없다고 볼 수 있다.

2. 직업성 정신질환 인정을 둘러싼 쟁점

과로사나 근골격계 질환을 둘러싼 쟁점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논리는, 이런 질병을 다 인정해 준다면 산재보험의 재정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재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해 기존의 고전적 직업병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다. 또한 이들 질병과 직업과의 관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개인적 소인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직업성 정신질환은 어떻게 보면 과로사, 근골격계 질환에 이은 3탄인 샘이다. 비슷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고, 여기서도 핵심은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다.

(1) 개인의 감수성(개인적 소인) 문제, 업무이외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의 경우 하나의 요인에 의해서만 발생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소음성난청의 경우 소음에 노출되지 않고는 발생할 수 없는데 반해, 정신질환의 경우 다양한 개인적 요인, 일상생활 요인, 작업장 요인이 함께 관여하여 질병이 발생한다. 따라서 논쟁의 지점은 순수한 직업병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과 어떤 것이 결정적인 기여하였는가의 주장으로 갈리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후자의 입장이 더 근거를 지닌다고 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 스트레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스트레스의 종류가 일상생활과 작업장 요인 중에 어떤 것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지가 중요한 인정의 근거가 된다. 순수한 직업병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는 개인적 요인에 의한 기여가 있으므로 이를 기존의 직업병과 동일하게 보상체계를 채택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이는 결국 직무스트레스가 질병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질병이 발생했다는 위 모델에 대한 부정이며, 현행 산재보험 외 사회보장체계의 부실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판단이다.(제도적 측면에서 한 사회의 직업병의 개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회적 상황에 따라 확대 변화 될 수 있는 개념이다)

(2) 정신분열증과 같이 특정질환을 직업병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정신분열증의 경우 생물학적 요인, 개인적 소인의 크기가 훨씬 크다고 판단하여, 설사 직무스트레스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여정도를 결정적이거나 상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주장대로라면 정신분열증은 직업병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열증의 경우라 하더라도 사회 심리적 요인이 발생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으며, 개인적 소인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이 발생에 주요한 기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동일한 판단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3) 직무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
직무스트레스의 정도를 정량화하려는 시도는 설문지 방식이나, 다양한 생물학적 검사방법 등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직무스트레스의 증가와 정신건강의 수준과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나, 정신질환의 발병과의 관련을 밝힌 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렇듯 집단의 연구를 통해 그 관련성을 밝히고는 있지만, 이러한 결과를 각 개인에게 적용하는데는 좀 더 적합한 평가도구와 근거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직무스트레스 도구 개발 등은 한국의 노동자들에 적합한 형태의 직무스트레스 평가 도구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3. 향후 방향

직업병의 인정범위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최근 들어 직무스트레스의 원인으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직무스트레스의 본질은 우리 사회 노동과정의 변화와 이로 인한 노동강도의 증가에 있다. 이러한 직관은 향후 실천적 연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하는 바이지만, 이를 소위 질 높은 과학적인(?) 방법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과학이 실험실과 컴퓨터에 의존하며 모두가 죽고 난 후인 몇 십년 후에 결과를 보겠다는 것이라면, 우리의 직관은 현장을 기반으로 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당장 행동하겠다는 결의이다.
다시 말하지만, 직업병의 인정범위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힘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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