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월] 무대 위의 합창단원이 외치는 거리의 구호 – 문화예술노조 국립합창단 지부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무대 위의 합창단원이 외치는 거리의 구호
– 문화예술노조 국립합창단 지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예술의 전당, ‘예술적인’건물 앞, 거리에서 몇몇 사람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국립합창단 단원들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왜 무대 아닌 거리인가?
왜 노래 아닌 구호인가?

박봉열씨와, 김미자씨. 이들은 국립합창단 단원이었다. 얼마 전 해고를 당했다. 이번 해고는 두 번째이고 복직한지 5일만의 일이다.

국립합창단은 연말에 1회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과의 계약 갱신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작년 12월에 박봉열씨와 김미자씨는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단3분간의 오디션을 통해 20년, 15년 동안 생활했던 직장에서 쫓겨났다.

금년 3월 10일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5월 11일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발생한 해고 사태에 대해 ‘부당해고’, ‘원직복직’ 판정을 내렸고 해고되었던 이들은 5월 17일 원직복직 되었다. 그러나 국립합창단 측은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절차적인 조건만을 갖추어 5일 만에 이들에게 다시 해고를 일방 통보했다.

이상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해야 할 박봉열, 김미자씨가 피켓시위를 하며 복직투쟁을 해온 과정이다. 오디션을 통한 1년 주기의 계약갱신, 오디션 담당자가 가지고 있는 인사권, 그리고 단원통제 수단으로의 악용, 인사권자인 예술감독(지휘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현실. 이들의 모습은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이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인생의 목표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였어요. 토스카에 나오는 아리아의 제목인데요.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20년을 하고 난 지금에는 노래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생자체였던 직장에서 3분의 오디션으로 잘렸고… 노래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해고자 김봉열씨의 말에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예술단체 소속 예술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고용여부를 결정한다는 오디션제도의 비합리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특히 합창이라는 공동의 창작활동을 하는 합창단원들의 솔리스트적 역량만을 판단하는 평가제도인 연말 오디션제도는 국립합창단원들에게는 더욱더 불합리한 제도인 것이다.

국립합창단에서 노래하는 단원들의 고통은 고용불안뿐이 아니다. 국립합창단은 원래 국립극장에 소속되어, 단원들은 문광부에 고용된 공무원의 성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 국립합창단이 재단법인화 되면서 합창단측은 재정 자립도의 향상을 위해 돈벌이 위주의 공연을 기획하고 단원들에게 공연티켓의 판매를 할당하거나 후원회 모집을 강요하여 그 실적을 근무평정의 ‘기여도’에 반영하는 등 예술이 아닌 ‘장사’에 치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일종의 정서적 교육이거든요. 그래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할 문제라는 거지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 발 한 번 들여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진정한 문화예술은 누구나 다같이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죠. 그것을 접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무료이면 좋겠고 돈을 지불하더라도 최소한이어야 할 거고, 또 필요한 곳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공연할 수 있어야겠고…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보슬비 맞듯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되겠죠.”

작년 겨울 출범하여 국립합창단 노조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공공연맹 산하 전국문화예술노조의 이용진 위원장은 현재의 투쟁을 설명하며 예술의 공공성 쟁취는 지금의 투쟁과 별개가 아님을 설명했다.

“예술가들이 노동자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고민해 왔습니다. 하지만 매달 봉급을 받고 합창음악을 연주하고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역시 노동자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항상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고… 강행군을 하다보면 목이 많이 힘들어도 전부 개인이 컨트롤해야 합니다. 합창단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죠. 예전엔 외국에 공연을 하러 간적이 있었는데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강행하는 바람에 임신한 단원이 공연 중에 기절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분을 업어서 무대 밖으로 대리고 나온 후에도 우리는 계속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립합창단 노조의 김도성 부지부장의 얘기에서 공공의 영역을 잠식하여 자본과 시장의 영역으로 포섭해버리는 신자유주의는 결코 민중에게 예술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 예술노동자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열정과 애정까지 포기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건 노래밖에 없다는, 노래가 곧 인생이라는 해고자 박미자씨가 얘기했다.
“평소에 길거리에서 뭐 나눠주거나 하면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경청하게 되었다는 것이 복직투쟁의 과정에서 얻은 큰 소득인 것 같아요.”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관철되는 그 날까지, 원직복직 되는 그날까지, 원직복직 되면 합창단이 민주화되는 그 날까지 투쟁하려고 해요.”

이제는 노래 말고 해고자복직투쟁도 할 줄 알게 된 박미자씨의 얘기를 듣고 공연예술의 문외한인 나는 이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공연을 ‘무료로’ 듣게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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