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월] 전쟁세력들, 반드시 망가진다

일터기사

[칼럼]

전쟁세력들, 반드시 망가진다
미디어참세상 편집장 유영주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해 한국 국민의 반이 찬성하고, 반이 반대하고 있다. 6월 18일 한국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이후부터 유력한 여론 기관들이 발표한 조사 결과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김선일씨 죽음 이후 찬성 여론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6월 24일 SBS 여론조사에서는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가 49.2%, ‘파병해야 한다’가 48.5%였고, 25일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의 경우 반대가 56.5%, 찬성이 40.7%로 조금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6일자 문화일보에 실린 한 여론 발표 결과도 그렇다. ‘이제라도 파병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가 45.1%, ‘결정사안인 만큼 파병해야 한다’가 51.9%로 나타나 오히려 찬성쪽으로 기울어졌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여론 조사 방법의 신뢰성에 딴지를 건다거나 하는 일은 무미건조하다. 어지간하면 그러지도 않겠거니와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6월 18일 파병 결정이래, 김선일씨의 죽음 소식이 알려진 이래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찬성을, 절반은 반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냉정을 찾고 이 사실을 곱씹어 보는 게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4월 팔루자 해방 이후, 특히 6월 30일 이라크 주권 이양을 앞두고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 매우 고조되었다. 미국이 주권 이양을 이틀 앞당겨 기습적으로 치렀지만,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권국 실현을 위한 공세는 쉬지 않고 전개되었다. 7월 14일에는 바그다드 중심부에 있는 ‘그린존’ 공격 등 주권 이양 이후 최대 공세가 펼쳐졌다. 미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국내에서의 여론은 악화되고, 동맹국들마저 꽁무니를 빼는 심각한 곤경에 처하였다.
필리핀은 이라크 저항세력과의 약속대로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당초 32개 동맹국 가운데 스페인과 온두라스 등은 이미 빠져나왔고 노르웨이도 10여명만 남긴 채 150여명이 철수했다. 태국과 뉴질랜드는 오는 9월 철수할 예정이고 네덜란드와 폴란드는 주둔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동맹 전선은 영국과 이탈리아, 헝가리 등 24개 나라로 줄어들게 된다.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없었고, 오사마 가(家)와 부시 가(家)의 오랜 밀월 관계도 폭로되었다. 미 상원조차 잘못된 전쟁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블레어도 망가졌고, 고이즈미도 망가졌고, 노무현도 망가졌다. 부시도 곧 있을 대선에서 망가질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예상이다. 주요 동맹국들의 수장들은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지금 이라크 전쟁에서는 군사적으로도 패전이 예고된다.

사태의 진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냉전 이후 미국은 세계를 통째 먹으려 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이 반발하고, 중국, 러시아 등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제국주의 국가 들은 힘 겨루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여기서 오늘날 폭력으로 점철된 제국주의 국가간 경쟁과 출혈의 실체가 낱낱이 폭로된다.
중동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다. 중동지역의 현대사는 이미 제국주의 세력간 쟁탈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세계 질서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점해야 할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 제국주의는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악의 축으로 거론한 나라 중 이라크를 제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먼저 결정하고, 전쟁을 벌이기 위해 전쟁 명분을 만들었다. 악의 축 발언과,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이라크 해방과, 테러 세력 척결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알려지는 법이다. 악의 축은 군산자본가집단이나 다름없는 미국 보수주의자(네오콘)의 자의적인 규정이었고,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라크 해방은 주체가 전도된 것이고, 테러 세력 역시 미국의 기준에 의한, 미국의 이해에 위배되는 세력을 일컫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테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단 한 번도 정식화한 적 없다. 테러가 무어냐고 하면 악의 축이라 하고, 악의 축이 무어냐고 하면 테러집단이라는 동어반복만 해왔다. 미국의 지배세력은 애국법을 통해 테러를 환기했고, 테러는 테러심리를 낳고, 테러심리는 테러위협을 낳고, 테러위협은 가상의 테러를 현실의 테러로 둔갑시켜 놓았다. 미국은 시민으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위력과 영향이 미비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인류 전체의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몽둥이를 든 테러세력을 잡는다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쏘아대는 대테러 전쟁의 정당성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였다.
이 논리를 작동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명백히 축적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계 초국적자본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전쟁을 통해 이윤을 노리는 초국적자본의 치밀한 투자 논리와 맞물려 있다. 세계 패권 장악을 위해, 자본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고, 미국이 그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파병을 최초로 결정한 것은 작년 4월, 국회 동의를 거쳐 서희, 제마 부대를 파견했다. 이윽고 9월 추가 파병을 거론한 이래 6월 18일 정부가 전격적으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작년 10월경 추가 파병을 결정할 당시 반대 여론은 70%가 넘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집요했다. 지치지 않고 국익 이데올로기를 퍼뜨려왔다. 국익을 위해 한 생명이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미 동맹이 깨지면 한국이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 간 신기남은 한-미 동맹을 찬양하고 최근에는 한국군 파병규모가 인구비례로 따지면 적정 수준이라는 말까지 내질렀다. 노빠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에 반대하는데 노무현 대통령한테 뭐라 그러는 건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전쟁세력들, 파병론자들, 이 땅의 지배세력이 퍼부어대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 이데올로기와 흡사하다. 미국이 테러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고 대테러 전쟁을 말하듯이, 한국은 한-미 동맹이 무엇이지 이야기하는 건 생략하고, 무조건 한-미 동맹이 깨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만 반복한다. 경제위기가 한국 경제 내부에 잠복된 상시적 위기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닥친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를 물으면 다시 한-미 동맹이 깨지게 되면 경제위기가 생긴다는 동어반복을 한다. 국익도 마찬가지다. 어떤 국익, 무슨 국익인지를 물으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뜨리면 국익에 저해된다는 식의 동문서답을 반복한다.
이윽고 노무현정권의 논리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두고 극단에 도달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선일씨 죽음에 대해 어떤 책임도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테러세력을 향한 경고 대목에 방점을 찍었다. 부시가 했던 테러세력 응징과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 논리를 한국 국민들 앞에서 재생했다.
지난 7일 청와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명의의 보고서를 게재한 것은 한마디로 코메디이다. 보고서는 어떤 근거도 없이 파병을 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다. 또 한-미 동맹 관계에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 균열이 생기고 이것이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형성될 경우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도 왜 그렇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한-미 동맹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것은 미국 지배세력과 한국 지배세력의 계급적 결사를 의미한다. 이들 지배세력은 지배자의 이해, 즉 제국주의와 자본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혈맹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주장과 논리가 다르지 않고 이데올로기 공세의 내용과 방식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국민들은 ‘국익’이나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나 ‘이라크 재건 활동’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배세력이 위로부터 퍼부어대는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손으로 뽑아놓은 대통령과 개혁정권이 시종일관 같은 말을 반복해대니, 동조와 회피하기를 번갈아가며 현실이 주는 무게를 좀처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거짓과 허위 이데올로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거짓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인데도 현실에서는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이데올로기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대안 정치의 부재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파병 찬반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때는 무르익는다. 지배세력은 파산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 이데올로기 공세에 있어, 전쟁 세력의 헤게모니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빠른 속도로 망가지게 될 것이다. 보편과 상식을 갖는 다수 민중의 이해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역사책에 다 나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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