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월] 잔잔한 일상에서, 노동자의 모습을 굳혀가다 – 삼남전자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잔잔한 일상에서, 노동자의 모습을 굳혀가다
–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삼남전자지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어딜가나 온통 유해요인조사 이야기

“회의 가면 유해요인조사 얘기뿐이에요. 어떻게 해야 잘 하는지, 어디하고 해야 하는지… 관심은 오직 하나. 온통 그 얘기뿐이라니까요.”

요즘 금속노조 경기지부 산안부서 지부회의에 참석하는 산안부장들은 유해요인조사 얘기만 한단다.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대한 유해요인조사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는데 노동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는 것.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힘든 투쟁으로 만들어낸 것이니 조사 역시 ‘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산안부서 지부회의 때 연구소 사무처장님이 교육을 하셨는데 그 때 처음 연구소를 알게 됐죠.”
삼남전자의 산안부장 김정환동지는 ‘어디하고 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하고 하자’로 결론 내렸고 그렇게 해서 삼남전자, 그 ‘일터’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독특’한 금속사업장, 삼남전자

삼남전자는 반도체의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안산 반월/시화공단 내에 있다. ‘서울의 과밀한 인구와 공장들을 적절히 분산시켜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꾀하며 서해안개발의 거점을 확보하고 서울로의 인구유입을 흡수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반월/시화공단, 이제는 ‘환경오염’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이곳에 대한 내 상상은 기계소음 가득한 ‘공단’이었다. 하지만 다니는 차도 얼마 없는 넓은 4차선 도로, 도로변에 줄 서있는 가로수, 그 바깥 양쪽으로 많은 공장들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하나인 삼남전자 역시 생각보다 조용했다. 금속사업장임에도 작은 반도체의 부품을 만드는 곳이라서 작업도 과히 격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도 꽤 많다고 했다.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경쟁력인 곳이라 보안상 많은 작업장을 가보진 못했지만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추측은 해볼 수 있었다.

삼남전자에 도착한 시간은 때마침 점심시간 직전인 12시 20분경이어서 조합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날의 메뉴는 고등어조림에 미나리무침, 그리고 무말랭이. 식사하는 삼남전자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나오니 자판기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모여있는 여성조합원들이 눈에 띈다. 건물이 좁아 따로이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단다.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는 여성조합원 중에는 정성 들여 십자수를 놓고 있는 조합원도 눈에 띈다.

“조합원들에게 산재에 대해 많이 알려주고 임기를 마쳤으면..”

“작년에 사고성 산재가 한 명, 근골격계 산재가 한 명, 산재환자가 두 명밖에 없었어요. 두 건 다 총무과 직원이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산재신청해서 처리했어요. 환자가 많지 않아서 노동부에서 내려오는 압력도 없고, 회사가 알아서 다 해요.”
“그래서 그런지 조합원들도 산재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또 분위기가 그러니까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번 유해요인조사가 끝나면 조금은 인식변화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김정환 산안부장으로부터 삼남전자의 사정을 들으면서 역시 독특한 ‘금속’사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산안부장께 ‘근골격계 직업병이라는 게 원래 정체를 확 드러내는 놈이 아니니 이번 유해요인조사를 통해서 현장의 작업환경을 좀 더 면밀히 확인하시고 조사 과정을 통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조사의 의의를 고민해본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지 못한 걸…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산안부장과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자못 즐거웠다. 올해 스물 여덟이신 산안부장께 “결혼은 하셨어요?” 물었더니, “다음 달에 출산예정입니다.” 하셨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나와는 달리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기도 하여 연이은 질문을 통해 부인과는 사내 커플이었다는 것, 다음 달 딸이 생길 거라는 것, 본인은 딸이 더 좋다는 것, 집안에 딸이 귀해서 아버지도 좋아하셨다는 것 등을 알아내긴 했지만, 정작 그 ‘방법’은 전수 받지 못했다는 걸…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알았다.

입사 6년 차인 산안부장은 조합 집행부는 처음이라고 했다.
“집회도 열심히 나가고 조합 활동은 열심히 했었어요. 근데 책임을 가지고 하기에는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러다가 원래 작년 9월에 꾸려져야 했을 현 집행부가 금년 2월에 어렵게 꾸려지면서 지금 지회장님이 제안하셔서 하게 됐어요.”

여섯 달 정도 산안부장으로서 한 때 부담스러웠던 ‘책임’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신 김정환 산안부장에게 남은 임기 동안의 ‘거창한’포부를 물었더니,
“저는 임기 중에 조합원들에게 산재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고 임기를 마쳤으면 좋겠어요. 저도 잘 몰랐으니까 같이 배우면서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유해요인조사도 잘 마쳤으면 좋겠고요.”하고 대답하셨다.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 그러니까 따님이 태어난 지 일 년쯤이 되었을 무렵의 산안부장을 상상해봤다. 예쁜 딸을 보며 웃고 있는, 포부를 이루어낸 멋진 아빠.

“조합원 스스로 노동자성을 잃지 않는 것”

산안부장과 얘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 잠깐 들른 조합사무실, 책장에 놓인 모범조합 상패를 보았다. 상패가 두 개나 있었지만 지회장님은 사실 별로 잘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집회에 잘 참석하는 것이 좋은 조합은 아닐 거라고, 조합원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지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경기도 노동자들의 여러 투쟁이 생각났다. 삼남전자지회의 조합원들을 포함한 경기도 노동자들은 경제자유구역법 폐지 투쟁, 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 투쟁 등을 전개해왔다. 이윤을 찾아 떠도는 자본의 이동만을 위한 경제자유구역법을 반대하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이라크 민중을 살해하는 미 제국주의 군대의 주둔을 거부하는 노동자의 투쟁이야말로 지회장님이 말씀하신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하고 선언하는 행위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남전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안산역으로 이동했다. 안산역에서는 자본과는 달리, 생존을 위한 이동의 자유조차 가지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보았고 서울로 이동하기 위해 나는 전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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