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월]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건강실태

일터기사

[연구소 리포트]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건강실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고상백

1. 조선업 노동자 절반은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94,123명. 직영 정규직 53,925명 하도급 40,288명으로 하청 노동자가 매년 증가하여 거의 절반에 가깝다. 이렇게 조선업 비정규직이 증가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의 유용성 때문이다. 조선업은 호황기와 불황기에 대비한 인력 및 설비를 사업주 입맛에 맞추고 있는데, 불황기에 방만한 인력과 설비를 갖고 있으면 부실화의 위험이 있고, 반면 호황기에는 보유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충분한 수주 물량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업종 사업주는 노동자 고용의 유연성을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하청노동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고용 형태는 하청업체에 공식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공식 하청과 이러한 고용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하는 비공식 하청으로 구분된다. 2차 이상의 중층 하청구조 상의 노동자들이나 비공식 하청 노동자들은 공식적인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1차 하청 노동자들이라고 할 지라도 근로계약서 작성은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공식적인 기준이 없이 개별화되어 하청업체에 의하여 임의로 결정되고, 저임금과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임금 지급방식은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일당제와 시급제이며, 연, 월차나 상여금, 퇴직금 등은 구조적으로 배제되거나 하청업체 사업주에 의해 부당하게 축소되고 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14시간, 월 노동시간은 320~3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일반적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사적인 취미나 가족, 친구와의 인간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강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불안정, 불평등한 고용 조건과 불안정하고도 낮은 수준의 임금을 시간급으로 지급하는 임금 조건이 이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2.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장해 기전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처해 있지만, 실직을 우려하여 무리한 작업량과 작업강도를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강도의 극대화로 이어져 근골격계 질환 등의 직업병과 각종 재해 및 사고를 증가시킨다.

또한 하청 노동자들은 주로 물량이 많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데다가, 저임금과 고용불안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는 경향이 있어 유해 요인에 집중적으로 폭로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유기용제, 분진, 소음 등 노동 과정상의 유해 요인들에 장시간 폭로되고 있다(그림1). 그러나 하청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제도를 통해 안전보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하청노동자들은 물량에 따라 사업장 이동이 잦기 때문에 산안법에 따른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의 주기가 돌아오기 전에 이동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설령 평가에 포괄된다고 하더라도 질병이나 재해로 건강이 나빠진 노동자들은 이미 퇴출되고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에(이것을 일명 ‘건강 노동자 효과’라고 한다) 건강진단을 통해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보건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러 직종은 대부분 여러 종류의 직업병에 걸리기 쉬운 고위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위험들은 하청 노동자의 만성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 구조, 노동조합 등 조직적 대응력의 부족, 그리고 법, 제도적 보호 장치의 미비함으로 인해 한층 증폭되어, 조선소의 하청 노동 과정은 ‘안전보건의 무법지대’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3.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실태

그러나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건강진단에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건강하다고 발표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부 조선업종 노동자들의 건강진단에서 나타난 유소견자 규모를 통해 직영과 하청업체 간의 건강수준을 비교한 결과, 일반질병의 경우 직영은 약 10%의 유소견율과 5%를 상회하는 유병률을 보인 반면 하청업체의 경우 6%의 유소견율과 4%의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직업병 유소견자도 일반질병 유소견자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 하청업체 보다 모기업에서 높은 유소견율을 보고하고 있었다(표1).

그런데, 직영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건강수준 비교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고용의 안정성 여부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이직율이 높고 직장을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동자는 이동할 때 채용과정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 직업병의 경우, 해당 직업에의 근무기간이 발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무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업병 유소견의 단순 비교만으로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진정한 건강수준을 절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하청업체의 경우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동자가 선택적으로 정기건강검진에 누락되는 ‘건강노동자 효과’와 직업병의 발생 및 일반건강수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근무기간의 차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실제와 다른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건강근로자 효과’를 보정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기건강검진의 누락자들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채용건강진단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건강수준을 보다 실제에 가깝게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제시된 정기건강진단과 동일한 시기의 일부 조선업의 채용건강진단을 받은 결과를 보면 유소견자(요관찰자+질병자)는 전체 수검자의 37.9%를 차지하고 있다.

채용검진의 특성상 채용에 보다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고혈압 또는 간기능 수치 이상 등의 소견은 치료 후 재측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정기건강진단의 낮은 유소견율은 바로 이러한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건강수준을 적절히 반영하는 지표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게 된다.

4. 높은 산재사고율과 산재은폐

19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주요 통계지표들의 추세를 확인해보면, 재해로 인한 사망이나 재해강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재해율만 감소한 것(그림2)을 알 수 있다. 또한, 재해자 중에서 신체장해자와 사망자의 점유율 추세를 확인하면 비슷한 추세선을 그리고 있고 1989년부터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대재해 발생시 보고가 불가피하고 은폐할 수 없어 비교적 산재통계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경미한 재해의 경우는 산재로 보고되지 않는다는 것의 현실적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심하며, 정규직보다 하청 또는 비정규직일수록 산재보다는 공상이나 의료보험으로 해결되었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즉, 재해율이 급격히 떨어진 1980 후반부터 최근까지 산재보험 대상노동자의 수에 큰 변동이 없었고 동일시기에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실시(1988년 5인 이상 사업장, 1989년 전국민 대상)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업무상 재해 중에서 사망이나 장해에 이르지 않는 손상의 상당부분이 의료보험으로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산재현황 역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사망재해를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우 10,000명당 사망자 수가 1.8명에서 2.7명으로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지만, 재해건수를 보면 정규직의 경우 훨씬 높은 건수율을 보이고 있다(표2, 표3). 중대재해는 비슷하면서 재해건수가 하청 또는 비정규직이 낮다는 것은, 많은 재해자가 은폐되거나 의료보험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5.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심리적 건강수준

한편 노동의 불안정화는 노동과정, 노동력 재생산, 노동시장에 중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을 규정하고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설문조사에서 직무요구도, 직무자율성, 사회적지지 및 직업불안정을 각각 중앙값 기준으로 높은 군과 낮은 군으로 나누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포 차이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직무요구도가 높은 집단은 비정규직에서 많이 나왔고, 직무자율성과 사회적지지가 높은 집단은 정규직에서 많이 나왔다. 직업불안정의 경우 정규직의 94.7%가 안정적 집단에 속하였고, 비정규직의 81.5%가 불안정한 집단에 속하였다(표4).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직업불안정이 설명력이 높은 변수로 채택되었는데, 이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외국의 보고와도 일치된다. 앞서 언급된 이직, 실직 등과 함께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의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주요 원인이라 하겠다.

6. 조선산업 비정규직의 노동권/건강권 확보방안

조선산업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고강도의 장시간 노동이다. 저임금 구조와 만성적인 고용불안은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층 하청 구조 속에서 노동조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은폐되어 있으며 노동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3권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못하여 위의 문제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강도 완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저임금 구조와 불안정한 고용상태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저임금 구조의 개선을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아래 정규직과의 차별을 축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개별적 임금 결정방식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임금 수준 및 산정 방식에 대한 지침 및 규제가 필요하고, 한편으로 시간급 중심의 임금 산정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노동강도 강화 없이 생활 임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원청 기성금 변경에 대한 사전허가제 등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임금 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 함께 하청 사업주에 의한 불법 착복 감시 및 처벌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상태 안정을 위해서는, 근로 계약의 최소 단위를 설정한다거나 구직급여를 통한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고용보험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비공식 하청과 불법파견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비정규직의 일자리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저임금-고강도-불안정 노동을 유발시키고 있는 불법파견 하도급 구조에 대한 대책으로서는, 동일작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투입 금지, 사용사업주의 책임성 강화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스스로 자신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 3권을 보장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조선산업 내 불법 폐업 및 부당노동행위 특별 감독,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 및 처벌, 조선소 사업장 내에서의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관리 감독 및 처벌 기준을 강화하고, 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개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채용시 건강검진으로 인한 고용차별 및 산업재해 보상 과정의 불이익(고용 무효화) 사례 조사 및 감독과 함께 건강검진 및 작업환경측정제도 개선을 통해 하청 노동자가 누락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림1] 사내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환경 악화 기전
[표1] 원청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건강진단 결과
[표2] 조선업종 재해 사망 만인율
[표3] 조선업종 재해 건수 천인율
[표4] 조사대상자의 직업적 특성 및 직업성 긴장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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