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월] 그분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같은 땅을 딛고서 살면

일터기사

[<일터>게시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김승섭

두려운 게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처음 세상을 알아가던 무렵이지요. 장애인들이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집회를 하다 전경들에게 양다리 양팔 들려 닭장차 안으로 끌려갈 때도, 노동재해로 자살한 노동자를 산재보험으로 보상하라며 근로복지공단 앞마당을 점거했을 때도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언정, 내가 다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IMF때 아버지께서 실직하시고 어머니께서 하숙집을 하신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장사인지라 하숙생들과의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다툼들에 지치셨는지 염색을 하셔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십니다. 대학을 7년이나 다녔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께 월급봉투 갖다 드리며 ‘어머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말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곱고 착한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 친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더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20대 후반. 나이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닌데 잃고 싶지 않은 일상이, 그래서 두려운 일이 많아집니다. 내가 활동을 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였겠지요. 20대에 뜨거웠던 많은 사람들이 30대에 소시민이 되고 40대에 보수가 되는 것은 자신이 잃고 싶지 않은 것들에 갇혀버렸던 것이겠지요.

졸업을 앞두고 연구소에 가입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일터>를 읽다보면 대체인력이 없어 철도에 뛰어든 사람을 치고도 계속 운전해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 수십 미터 고공 크레인에서 소변을 받아가며 하루종일 일하는 아저씨, 그래서 파업을 했는데 법 위반이라며 잡혀간 아주머니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분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같은 땅을 딛고서 살면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조금은 더 넓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열심히 두 발로 뛰어다니는 회원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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