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월] 치매와 공무원노조에 대하여

일터기사

[칼럼]

치매와 공무원노조에 대하여
자유기고가 박일평

최근 일본 정부는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꾸기로 했다. 흔히 알려진 질환이지만 그 이름이 불쾌감과 경멸감을 주는 말이라는 지적이 많아, 여론 수렴을 거쳐 대체용어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후생 노동성이 실시한 인터넷 투표 결과, 인지증/인지장애/잊어버림증/기억증/기억장애/알츠하이머(증) 등 여섯 가지 대안 중에서 ‘인지장애’에 투표수가 가장 많았으나, ‘인지 장애’는 치매 외에 다른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 대안적 용어로 ‘인지증’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치매는 우리나라에서도 ‘노년기 삶에 최대의 적’이라 할 정도로 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앓고 나면서 알츠하이머라는 영어식 병명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치매는 모두 같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의미도 다양하다. 사전적인 의미로 치매는 원래 정신지체(精神遲滯)와 마찬가지로 지능의 장애인데, 정신지체는 주로 지능의 발육이 늦거나 정지된 것인데 비하여 치매는 병 전에는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 때문에 저하된 것을 말한다. 치매의 전형적인 것은 대뇌신경세포의 광범위한 손상이며 기질(器質)치매라고 한다.

치매의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기억 및 이해의 장애, 계산능력의 저하, 사고의 빈곤화, 보속(保續:일정한 언동을 실현하는 충동이 존속하여 같은 언동을 되풀이한다)의 경향 등이 있다. 다시 감정적인 장애를 수반하며 정동(情動)의 불안정이나 제어가 곤란하게 되는 정동실금(情動失禁) 등도 볼 수 있고 성숙한 정성(情性)도 침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심적인 시야도 좁아지고, 치매가 심해지면 동물적 생활에 빠지는 일도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에 비하여 초로기 치매(presenile dementia)는 일반적인 연령보다 빨리, 갑자기 강하게 일어나는 병으로, 알츠하이머병(病)이 대표적이다. 초로기(45~60세)가 되면서 지능이 저하하는 것으로서 특히 여성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건망증이 심하고, 차차 기억/이해/판단/계산 등이 둔해지면서 치매가 뚜렷해진다.

치매가 끔찍하고 두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보다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은 이미 그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실은 두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주체성의 상실, 자아상실의 두려움을 간접경험 하는 것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것, 그 두려움의 크기는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온 세상을 뒤집을 것같이 호들갑스럽던 여론몰이 뒤끝에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세상의 호들갑과 관심에 비해 노동조합의 투쟁력과 파괴력은 보잘 것 없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행정자치부의 징계 절차만이 여론의 관심거리로 남아 있게 되었다.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한 질타에서부터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라도 쥐었으니 파업으로 내달리면 안된다는 점잖은 비판까지 공무원노조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올 겨울 관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패배감과 자괴감이 작지 않을 듯 보인다.

이번 공무원노조 파업사태를 진압하고 있는 것은 행정자치부이다. 법무부나 검찰조직과 달리, 평소 업무 추진방식의 탈을 벗고 파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3,000여명 전원을 해임하겠다는 신속한 정책결정과 집행의지를 보여주었다. 조선일보가 흘리는 ‘주체사상 선동’류의 고루한 수법은 아니지만, 국가기강 수립이라는 전체주의적 개념을 옹호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자부의 놀라울 정도로 신속한 행동 이면에는 이해찬과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지도자의 결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들 두 사람은 과거 운동권 언저리에서 사형도 받고, 감옥도 갔던 투사류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탄핵을 넘어섰으며, 다른 한 사람은 행정부 수반인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미 과거의 그들이 아니라는 점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미 이들은 그 자신의 역사와 과거, 주체성, 자기인식마저 상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1988년, 민주화의 물결에 이어 국회의원 배지를 가슴에 단 젊은 정치인 노무현씨는 공무원 노동3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 발의했다.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공무원노조 설립을 허가하는 법률개정은 어쩌면 다소 별 볼일 없는 진보적 정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당시 공무원노조가 설립될 수 있는 객관적인 정세도 아니었거니와,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가능할 수 있는 공무원 사회도 형성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안 되는 줄 알면서 법안개정 한 번 시도하는 따위의 정치적 쇼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수구 보수정당을 이끌고 있는 김덕룡 현 한나라당 원내대표조차 당시 같은 논리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더욱 정치적 쇼였을 개연성이 높다. 더구나 당시 법률이 지금의 민주노동당 법률 정도의 내용에 부족함이 없으니, 당시로서는 도저히 현실성 없는 법리 논쟁이었을 게다. 당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잡아넣는 일만으로도 바쁘던 시절이니, 그따위 법률이 기억에 남을 리도 없고, 설령 기억난다 하여도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데 중요한 지렛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18년이 지난 후, 젊은 시절 국회의원들 중 하나는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하나는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50대 중, 후반의 젊은 감각의 정치지도자로서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이 되어 있다. 나이든 국민이나, 젊은 386세대나 그들이 거쳐 온 지난 20년의 세월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암울했던 역사의 시기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개혁의 과제를 제시했던 젊은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잊고, 부정부패 추방/노동3권 보장을 외치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가슴에 흉기를 들이대며 협박하고 있다. 국가기강을 해이하게 하는 범법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이야기하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알아도 오직 낡은 색으로 채색되어 가는 그 정치인들만 모를 뿐이다. 젊은 50대 중, 후반에 벌써 과거를 잊고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아 초로기 치매 증상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치매라는 용어가 부적절하고 부정적이라 하여 ‘인지증’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로 노인들의 고통스럽고 두려운 병증을 둘러 말하려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자연적인 병의 경과일 뿐인데도 짐짓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는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쓸데없는 편견으로부터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 사회 역시 더 넓게 펼쳐졌으면 한다. 그러나 병의 증세와도 완전히 일치하고 본질과 정의 상 자기를 상실해 버린 우리 사회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같은 사람이야말로, ‘노동3권’만은 최소한의 인간기본권이라고 읊어대던 시절을 까맣게 잊은 사람들이야말로, 감옥에 끌려가고 사형을 언도 받으면서 국기 문란 운운하던 판결을 받았던 자신의 과거를 잊은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야말로 “정치 치매증 (political dementia)”이라는 약속된 진단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거짓말쟁이, 허풍, 위선, 이 모든 정치인들의 특징은 이 정치적 치매에서 유래한다.

새해에는 우리나라 역시 치매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새 단어로 따뜻하게 호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전교조를 탄압했던 그들과, 공무원노조를 탄압했던 그들이 하나로 뭉친 오늘의 정치 현실에 대해 “정치적 치매증”이라는 역사적 진단이 새해를 맞이하는 노동자 민중의 가슴에 잊지 않고 새겨져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가 앓고 있는 진정한 병증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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