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0 알아보자 LAW동건강] 건강보험공단의 ‘산재 신청 계도’

일터기사

건강보험공단의 ‘산재 신청 계도’

김지나 후원회원, 노무사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급여의 제한) ①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2.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이나 요양기관의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

3.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55조에 따른 문서와 그 밖의 물건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기피한 경우

4.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ㆍ부상ㆍ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②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법령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험급여에 상당하는 급여를 받거나 보험급여에 상당하는 비용을 지급받게 되는 경우에는 그 한도에서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하략)

제57조(부당이득의 징수) ①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ㆍ준요양기관 및 보조기기 판매업자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

(하략)

D씨는 업무상 회식을 위해 이동하던 중 어지럼증을 느끼고 계단에서 넘어져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계단에서 넘어져 외상성 상병이 같이 진단되었지만 두 대학병원 모두 ‘자발성뇌출혈’이 먼저 일어나 넘어졌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다. D씨는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였으나 수술 이후 급격히 나빠진 건강과 기억력, 인지 저하 등으로 당분간 치료와 재활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치료에 집중하던 그 시기에 D씨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승인 신청 계도 안내’ 통지를 받았다.

안내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업무과다 및 회사 업무의 연장인 회식이 원인이 된 사고로 다쳐 치료받은 것이 확인되니 2020년 00월 00일까지 산재 승인 신청을 하라’ ‘미신청시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제1항제4호 및 제57조제1항, 민법 제741조」에 따라 공단부담금에 대하여 부당이득금 청구를 할 예정이다’ ‘산재 신청을 한 이후에는 담당자에게 알려야 한다’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거부해도 알려야 한다’ ‘산재 신청을 했으나 불승인 된 경우에도 불승인된 사유서를 팩스로 보내야 한다’ ‘해당 진료가 산재와 무관하면 증빙자료를 보내야 한다’ 등이다. 당시 치료와 재활로 일을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 부담한 치료비가 4천만원 이상이었던 D씨는 산재를 신청하기도 전에 이를 반환해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으로 치료에 집중할 수 없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산재 신청 전 환수 내역 및 금액’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였더니, “없음”이라며 “업무상 재해로 산재요양신청 전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은 공단부담금은 산재보험법 제42조(건강보험의 우선적용) 및 같은 법 제90조(요양급여 비용의 정산)에 따라 공단과 근로복지공단과 사후정산 대상이며, 재해자(보험가입자)에게 환수할 대상은 아님”이라는 회신이 왔다. 그러나 D씨는 특히 사고가 아닌 질병임에도 위와 같은 안내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 건강보험공단은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에 해당한다면 다른 법령에 의한 보험급여 등을 실제로 받은 경우 뿐만 아니라 보험자의 급여 승인여부와 관계없이 그 법령이 정한 보험급여의 지급요건에 충족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급여지급제한 사유에 포함된다”면서 “급여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고 다시 회신하였다.

건강보험공단은 특히 업무상 사고에 대한 치료라고 판단한 경우 위와 같이 ‘산재신청 계도’ 통지를 하고 있다(D씨의 경우에는 ‘회식’이라는 경위 때문에 계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산재 은폐가 많고, 산재가 명확한 사고임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일반 국민의 건강보험료 인상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일면 긍정적일지 모르겠다. 문제는 사실상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겠다고 하여 산재 신청을 (상대적으로 업무상재해가 명확한 사고 뿐 아니라 질병에까지)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곧바로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경우’로 해석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목적에도 반한다. 우선 치료에 집중하고자 하는 재해 노동자에게 산재 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특정 시점을 지정하여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건강보험공단이 “보험자의 급여 승인여부와 관계없이 그 법령이 정한 보험급여의 지급요건에 충족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급여지급제한 사유에 포함된다”고 한 내용은, 업무상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으로 먼저 치료를 받고 이후 산재를 신청하여 산재로 인정된 이후에 건강보험으로 먼저 지급한 비용, 승인 이후이기 때문에 청구하면 당연히 지급되는 비용에 대한 사례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청주지법 2006.11.21. 선고, 2006나2217).

건강보험공단의 산재신청 강제

건강보험공단은 공단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하여 보험가입자 개인의 질병과 사고가 ‘산재인지 여부’를 직권으로, 일종의 ‘조사’를 하고 있고, 산재법상 요양급여는 법상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당이득금 환수’를 고지하며 기한까지 정하여 산재 신청을 강제한다. 산재 신청을 안내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강제는 일부 산재 노동자 개인에게는 더욱 부담일 수 있다.

국내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급여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로 ‘산재 인정이 안 될 것 같아서’ ‘경미한 상해라서’ ‘인사상 불이익’ 등의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하였고, 특히 면접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불이익’ ‘회사로부터의 인사상 불이익’ ‘경미한 재해’ 등의 이유가 가장 빈도가 높았다고 한다. 최근 대법원은 산재 증명책임은 업무상 재해임을 주장하는 노동자에 있다고 다시 확인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그리고 이제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으려면 ‘해당 진료가 산재와 무관하면 증빙자료를 보내야 한다’.

산재 신청 어렵게 만드는 현실

산재 은폐는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사업주가 산재신청을 꺼리는 이유가 더 크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은 보험가입자에게 먼저 산재신청을 계도하고, 이후 사업주의 방해가 있거나 3일 내 요양 등의 경우에는 사업주에게도 환수 고지를 한다. 그러나 사업주의 방해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명확하지 않고, 사업주가 산재 신청 대신 ‘공상’으로 하겠다고 하면 사업주에 환수 고지를 할 뿐 산재 신청 여부는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부당이득 환수 고지 이후 보험가입자가 ‘절차가 복잡하여 산재신청이 어렵다’ ‘회사 불이익이 두렵다’고 하여 산재 신청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사업주가 ‘공상’ 처리 하겠다고 하는 경우, 보험가입자 또는 사업주는 건강보험공단에 환수 고지를 받은 금액을 납부하고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 보험가입자(재해 노동자)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본인이 비용 모두를 지불하면서 양 공단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주었고, ‘공상’처리를 한 사업주로 인해 여전히 산재는 은폐되었다.

만약 산재 은폐를 줄이고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예컨대 독일처럼)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이 사업주와 근로복지공단, 노동청 등 기관에 신고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자의 ‘신청’이 있어야만 급여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급여지급 기관이 일정 부분은 직권으로 업무상 재해에 대하여 조사, 판단하고 급여지급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지, 신속하게 치료하고 사회로 복귀해야 할 노동자에게 해고 불안이나 다른 사회적 불이익은 감수하고 각 ‘사회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산재임을 또는 산재가 아님을 모두 증명하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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