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0 발칙건강한 책방] 해방의 길엔 포기란 없다

일터기사

해방의 길엔 포기란 없다

『짐을 끄는 짐승들』. 2020. 수나우라 테일러 저. 이마즈 유리·장한길 역. 오월의 봄

김창헌 회원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한 터라, 선전위원회에서 개최한 ‘책 제공에 따른 서평 모집’ 소식이 반가웠다. 동물 및 장애 해방을 다룬 책이 있다길래, 〈짐을 끄는 짐승들〉을 덜컥 신청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동안 많은 후회를 했었다. 우선 〈짐을 끄는 짐승들〉엔 내가 생각했던 해방과 해방이 만나는 곳의 새로운 세계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데에 상당한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미를 참아가며 끝에 다다르자, 비록 해방의 길은 찾지 못했지만 내 삶을 돌아보는 길은 찾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닭 실은 트럭’을 보며 장애를 지닌 수나우라 테일러는 동물의 고통과 처절한 삶을 봤다면, 가난하고 허기진 삶을 겨우 살아가던 나는 ‘저 닭 한 마리면 우리 가족이 배고픔을 잊고 하루를 푸짐하게 보내지 않을까’라며 군침을 삼켰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누나들은 원하던 학업을 뒤로하고, 어린 동생의 먹거리를 위해 산업전선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삼성 반도체에 특채돼 일하던 동네 동생이 울면서 회사로 돌아가기 싫다는 게, 그저 배부른 투정으로 생각됐다. 아마 그 친구의 삶에는 병들고 죽어가는 반올림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었으리라. 이제 40대 중반이 됐을 동생이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미안하다.

저자가 장애인의 삶을 살며 장애와 동물에 대한 세상에 눈뜨게 됐다면, 나는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 ‘현대제철’에서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됐다. 실험실에 편하게 일하다 노동조합을 알게 됐고, 선거운동을 통해 노동조합의 노동안전 차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수많은 중대사고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능함과 그에 따른 자괴감에 자리를 내려놓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후 5개월간 이어진 지회장의 끈질긴 설득과 협박 속에 다시 금속노조 충남지부 노동안전 부장을 맡게 됐다. 그리고 내 삶을 바꿔준 세 사람인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 실장, 안재범 갑을오토텍 노동안전 부장, 이훈구 동지를 만나게 됐다. 박세민 동지에겐 노동안전의 당위성과 목표를, 안재범 동지에겐 각종 투쟁 사례를 통해 노동안전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투쟁하는지를, 이훈구 동지에겐 감정만 앞세우던 내 삶에 여유와 함께하는 노동안전 활동을 배우며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됐다. 또한 훈구 형의 달콤한 속삭임 덕분에 내 삶엔 어느샌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새겨져 있었다.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강제로 생산하도록 품종이 개량된 젖소,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만큼 살찌운 돼지, 마취 없이 부리를 절단당하는 오리 등… 가축화된 동물에게 장애는 흔하다. 산업화된 가축의 삶을 보며, 기간산업에 방치돼 죽음과 골병으로 물들어 가는 노동자의 삶이 저들과 그리 다르지 않단 것을 깨달았다. 흔히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하다 다쳐도 119를 부르지 못한 채 죽어간 노동자, 일하다 다쳐 장애까지 왔지만 산재신청을 요구했단 이유로 해고통지를 받게 된 노동자, 프레스에 눌려 죽어간 일용직 노동자의 피가 식지도 않았는데 회사의 물량독촉에 프레스를 가동하는 노동자가 여전하다. 이뿐인가? 팔다리가 잘려도 외국인이란 이유로 산재 처리는커녕 쫓겨나는 노동자, 종일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반복 작업을 하며 손목과 손가락이 뒤틀어지지만 이게 당연하다 생각하면서 물량에 매달리는 노동자, 어린 나이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죽거나 죽어가는 수많은 노동자, 일거리에 치여 과로로 죽어 나가는 택배 노동자도 여전하다.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일하다 사고가 났지만, 현장 조사에서 사측과 같이 참여한 노동조합 노동안전 간부가 사고의 원인을 ‘피해 노동자가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서’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탓에, 정말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현실이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며, 우리 삶에 장애가 참 많이도 깃들여져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과학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장애가 장애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도 하게 됐다. 안경이 없었다면 시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글도 볼 수 없고, 사물도 구분할 수 없어 장애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안경이 당연해지면서, 시력이 떨어진다는 게 더는 장애가 아니게 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노동자의 삶에도, 노동안전 운동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일상에 깃들면 산재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줄어들지 않을까?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지금도 수많은 노동안전 활동가가 여기저기서 활동을 하지만, 곧바로 좋아지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가고 동지가 가면 어느새 길이 만들어져 있듯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면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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