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1월/되돌아보기]작업중지권의 역사와 노동자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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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의 역사와 노동자의 권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위원 신상도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중지권에 대한 항목이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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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조(작업중지 등) (2002년 12월 30일 개정안)
①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 보건상의 조치를 행한 후 작업을 재개하여야 한다.
②근로자는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에는 지체 없이 이를 직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직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신설 1995.1.5>
③사업주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에는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 기타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신설 1996.12.31>
④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근로감독관과 관계전문가로 하여금 재해원인조사, 안전 보건진단 기타 필요한 조치를 하게 할 수 있다.
⑤제4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노동부장관이 정한다.<개정 1995.1.5, 1996.12.31>

작업중지권은 1989년, 노동운동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최초로 주장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96년까지 몇 차례 개정이 이루어진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 당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작업중지권의 내용이 매우 형식적이었다. 즉 현재의 작업 중지권 내용 중, 겨우 1항, 즉 사업주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되고, 노동자는 사업주의 지시가 없으면 대피조차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때 미리 위험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라기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거나 실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야 비로소 ‘회피’할 수 있는 권리로 제한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노동진영의 문제제기가 일부 받아들여져 95년에 개정을 하게 된다. 지금의 제 2항이 그 때 신설되게 되는데 내용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그 당시 작업중지권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 자료를 살펴보면, 작업중지권에 규정되어 있는 ‘급박한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은 누가하며, 대피 후 작업재개의 조건과 판단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고, 대피한 작업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조치가 없다’는 한계점들을 지적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이후 이에 대한 노동보건운동진영과 현장의 지속적인 요구는 96년에 3항의 신설과 4, 5항의 개정을 가져왔다.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하는 경우는 노사간 단체협상이 결렬되었을 때처럼 공식적인 파업 투쟁의 일환으로 작업을 중단할 수 있으며(단체행동권), 작업자가 안전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이를 해결하고자 할 때 작업을 중단할 수 있다(작업중지권). 그러나 전자가 노사간의 수많은 협상과 조합원의 쟁의 발생 결의, 법적 조건의 충족이라는 매우 제도화된 작업중지 상황이라면, 후자는 긴박한 위험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작업자 개인 혹은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작업중지권은 작업을 중지하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하는 결과가 노동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판단과 결정은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험 상황에 대한 예비적인 대처를 현장 노동자의 권리로 자본이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대공장 노동조합처럼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조직적 힘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같은 공장,·같은 공정에서 여러 명이 죽어나가도 작업을 중단시킨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또, 작업의 성격이 철도 노동자들처럼 공익에 복무한다던지 할 경우에는 ‘1인 선로 순회’가 가장 치명적인 사고를 부른다는 것을 노사가 잘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결코 작업을 중지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제 3항) 경우라고 할지라도, 적용되지 못한다.

2001년 12월 3일 OO조선의 로얄 도크에서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현장으로 가는데 도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머리를 여러 번 부딪혔고, 사다리 설치 상태도 불안전하여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겨우 상부에 올라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안전통로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고 또한 통로라고 하면서 현장안전요원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기가 막혔다. 배의 구조물에 의하여 통행이 가능한 곳으로 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상 30M이상이 되는 곳이며 고소작업장의 가장 기초적인 안전조치인 핸드레일, 사다리, 안전그물 등이 설치되어야 하는데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해당부서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작업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부서 책임자는 작업을 강행하였고,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작업자를 철수하여 작업중지를 강행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해당부서는 안전 조치에 대한 시정을 약속하였으나,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업중지 해제 명령이 공표되기 전에 이미 부서의 작업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이 웃음거리가 된 셈이다.

대공장 노동조합이 추진한 작업중지권 역시 현장 투쟁의 힘과 능력이 없을 경우 앞의 예처럼 형식적인 권리로 파괴되고 만다. 결국 작업중지권은 현장에서의 노동자의 힘을 그대로 반영하는 권리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작업중지권의 역사가 곧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권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 사업장은 1994년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아직 법제화되기도 전에 이미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여주었던 조선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작업중지권의 알량한 법조문이 구구절절히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나뒹구는 마당에, 사측의 노림수와 탄압에 모든 노동자가 영원히 숨죽이며 살아갈까? 우리는 먼 조선소에서 다시 솟구치는 작업중지권 투쟁의 당찬 함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조문 그대로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다치지 않을 ‘합리적인 근거’를 노동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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