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1월/그것이알고싶다]산재보험 사전승인제도의 문제점

일터기사

[그것이 알고싶다]

산재보험 사전승인제도의 문제점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임준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비상수단에 불과하다. 산재로 인한 신체적·재정적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산재보험의 목적이 실현되려면 매우 까다로운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법에서 정한 확실한(?) 노동자일 때만 가능하다. 학습지교사, 레미콘노동자,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특수한 조건에 처한 노동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음으로 법에서 인정한 확실한(?) 사고나 직업병이어야 한다. 특히 직업병은 곤란하다. 업무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요양투쟁을 통해 산재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엔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는 인정을 받기 힘들 뿐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서 개별 요양신청에 대해 불승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관계로 산재보험 혜택을 받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고나 직업병이더라도 안심하면 금물이다. 더 큰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2차 관문을 통과했더라도 산재보험 신청을 하려면 회사의 압력과 회유를 뚫고 사업주 날인을 받아야 한다. 사업주 날인이 필수가 아니라고 근로복지공단은 강변하지만 일종의 사기다. 날인이 없는 신청서는 접수조차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큰 사고가 아닌 한 노동자가 산재보험 신청을 하겠다고 사업주 날인을 받는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수개월의 치료가 필요한 사고가 발생해도 공상으로 처리하고 산재보험 신청을 막고 있는 실정인데, 한두 달 요양이 필요한 산재로 사업주 날인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공상 처리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산업안전공단이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보더라도 산재사고를 당한 노동자 중 약 70-80%는 공상 처리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이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마침내 산재노동자가 도달하는 것은 산재보험 혜택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높고 높은 장벽이다. 그나마 사고성 재해는 사정이 낫지만, 직업병으로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는 자문의사제도, 직업병인정기준을 근거로 한 불승인 조치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불승인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재심사, 행정심판, 소송까지 2-3년을 끌게 되면 산재보험 혜택을 받아도 이미 산재노동자의 몸은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산재보험의 현실이다. 산재노동자를 산재보험으로부터 배제하는 기형적 구조, 즉 산재보험의 사전승인제도를 폐지하지 않고서 산재로 인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발상 또는 주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산재보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취약한 보장성 문제가 전부였다. 치료 중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이 너무 많다거나 휴업급여 수준이 낮아 가계를 꾸려나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또한 원직장복귀를 포함하여 산재노동자의 재활이 등한시되고 있는 문제점이 주로 제기되었다. 물론 이것조차 문제제기에 그치고 전혀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산재노동자의 초기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산재보험의 제도적 문제점은 노동자건강권운동영역에서조차 주요한 의제로 등장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2001년부터 산재보험제도개혁공대위가 출범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최근 현장 노동자의 근골격계 투쟁과 결합하지 못함으로서 힘있게 활동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되었건 산재보험 혜택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사전승인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다치고 아플 때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절차 없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투쟁이 요구된다. 노동자건강권운동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이 한 단계 승화·발전하기 위해서도 산재보험제도개혁투쟁과의 결합이 요구된다. 정규직 노동자든 비정규 노동자든, 조직 노동자든 미조직 노동자든 다치고 병들면 누구나 손쉽게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고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산재보험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비상수단에 불과한 산재보험의 위상을 정상화해야 한다.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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