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성냥팔이 소녀 사망의 업무관련성 여부

일터기사

성냥팔이 소녀 사망의 업무관련성 여부

김대호(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연구위원)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은 근골격계/뇌심혈관계/정신 질환, 호흡기계 질환 중 진폐를 제외한 질병으로 산재보험 요양급여/휴업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그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 판단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자문기관이다. (산재 승인/불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처분기관은 아니다.) 최근 우리 기관에 들어오는 많은 사건은 사회적인 관심이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사건과 관련된 개인과 업체들을 특정할 수 있기에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업무관련성 판단을 위한 전문 조사의 예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과 관련된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고자 한다.
크리스마스 저녁,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던 소녀 ‘안나’는 성냥을 잘 팔지 못한다. 볼품이 없었던 성냥을 아무도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성냥을 팔지 못하는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주정뱅이 삼촌에게 혼나기 때문에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손이라도 녹이려고 성냥불을 켜는데, 성냥을 하나씩 켤 때마다 늘 바라던 따뜻한 난로, 화려한 만찬, 크리스마스 트리 등의 환영이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냥불이 꺼지면 환영도 곧 사라져 버렸고, 네 번째 성냥을 켜자 생전에 자신을 무척 아껴주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났다. 외할머니가 사라질까 봐 안나는 남은 성냥을 다 꺼내어 불을 붙였고, 할머니 품에 안긴 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온몸에 눈이 쌓인 채 쓰러져 있는 안나를 발견했다.

이야기로 추정해보는 ‘안나’의 사망 경과와 직업력
안나는 사망 당일 성냥을 켤 때마다 환시(visual hallucination)가 보이다가, 나머지 성냥을 모두 사용할 때도 환시가 보이는 등의 신경학적인 증상이 동반된 상태에서 사망했다. 저녁에 사망하였다는 점과 발견 당시 눈이 쌓인 상태로 사망하였다는 점에서 저체온증이 동반되면서 사망하는 동사(凍死)가 소녀의 직접적인 사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네 번째 환시가 발생한 후 추위를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사망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망 당시 뇌신경장애에 의한 의식소실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신경학적인 장애가 선행사인일 가능성이 크다.
성냥팔이 소녀의 사망 당시 직업은 성냥 판매인데, 사망 당시 수행하였던 성냥 판매업무 전에 무엇을 하였을 것인지 추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화가 출판될 당시의 시대를 읽을 필요가 있다. 안데르센이 『성냥팔이 소녀』를 발표한 시기는 19세기 중반인 1845년이다. 안나가 판매를 하였던 마찰 방식 성냥은 1827년 영국의 존 워커가 최초로 개발하였는데, 부싯돌보다 간단하게 불을 켤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성냥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면서 아동노동이 금지되기 전이었는데, 성냥공장에서는 아파서 퇴직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퇴직금 대신 상품화할 수 없는 불량품 성냥을 줬다는 점과 동화 속에서도 안나가 길거리의 사람들이 잘 사지 않는 불량품 성냥을 판매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안나는 성냥공장에서 일하다가 퇴직했을 가능성이 크다.

성냥공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
나무를 가공하여 성냥의 축목을 만들고, 축목의 머리 부분에 두약을 바른 후 건조하면 성냥이 만들어지는데, 성냥 머리에 바르는 두약은 백린, 염소산칼륨, 황, 고무를 혼합하여 만든다. 백린(white phosphorous)에 노출되면 턱뼈 괴사(phossy jaw)가 발생할 수 있는데, 축목에 두약을 바르는 공정(dipping)과 건조공정에서 백린 흄에 노출되기 쉽다. 일반적으로 3~5년 정도 백린 흄에 노출되면 치은염, 치조정(alveolar crest)의 분리, 하악골 또는 상악골의 골 괴사(phossy jaw)가 동반될 뿐만 아니라 호흡기 노출을 통해 객혈을 유발하기도 한다. 전신적인 효과로 골수 또는 뇌를 침범하여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데, 백린 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뇌를 침범하여 섬망(delirium), 경련(convulsion), 발작(seizure) 혼수(coma), 갑작스러운 실신(sudden collapse)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백린의 뇌 침범으로 환시가 발생한다는 의학적인 논문은 없지만, 각종 다양한 신경학적인 증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안나에게 발생하였던 환시 역시 동반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성냥팔이 소녀 ‘안나’의 사망에 관한 업무관련성 판단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종합하면 안나는 백린성냥을 제조하는 공장의 두약 또는 건조 공정에서 일하다가 백린 중독에 의해 더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성냥공장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되고, 퇴직금으로 받은 불량품 성냥을 판매하다가 4번의 환시를 겪은 상태에서 사망했다. 백린성냥 공장에 근무할 당시 백린에 만성적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는 점, 사망 당시 동반된 4회의 환시는 만성적인 백린 중독에 의한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백린에 의한 뇌 침범(phossy brain)으로 섬망, 혼수, 실신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성냥팔이 소녀였던 안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사망하였을 가능
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성냥팔이 소녀 안나의 죽음과 관련한 업무관련성 판단을 해 보았다. 이렇게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는 데에는, 아동노동이 허용되었던 시대적인 상황과 성냥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는 업종의 특징, 그리고 성냥공장에서는 퇴직금으로 불량품 성냥을 줬다는 많은 노동자의 경험담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었다. 30년 이상 직업적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어 직업병이 발생한 많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업무관련성 판단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몸을 담았던 업종의 시기별 특징과 과거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린 노동조건, 많은 노동자의 남겨진 진술과 같
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들이 의학적인 지식과는 무관하지만, 어떤 노동자 사망의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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