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월] “누가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누가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 울산대 병원 간호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이민정

“그나마 우리는 좋은 편인데, 임신해도 나이트(야간근무) 하는데 많거든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점심을 하던 조합원들이 입을 모은다. 87년에 만들어진 탄탄한 노동조합의 힘으로 야간근무부터 어린이집 설립까지 하나하나 노동조건을 바꿔가고 있는 탓으로 울산대병원 조합원들은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하지만 ‘백의의 천사’에서 이제는 3D직종이라고까지 불리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딸이 한다고 하면 안 시키고 싶어요’라고 한다.

“실습을 나온 학생들한테도 이렇게 힘든 걸 왜 하냐고 그래요. 누가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간호사 돈도 많이 벌고, 고학력이고, 의사랑 결혼한다고 그러는데 의사랑 진짜 많이 싸우거든요.(웃음)”

데이(낮), 이브닝(저녁), 나이트(야간)로 나뉘는 3교대 근무도 간호사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야간에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고 힘들어요. 나이트 근무에는 멤버도 줄잖아요. 최고연차 선생님들도 없어서 중간연차들 부담감이 엄청 크죠. 다음날 데이 근무를 위해 준비해놔야 되고. 몇 년씩 일했는데도 낮에 자면 10시간을 자도 피곤해요. 간호사들 기본으로 있는 병이 불면증, 변비니깐.”

보건의료노조 조사에 따르면, 병원노동자들은 스트레스 관련 질환, 물리적 부상, 피부질환, 감염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수면장애도 29.2%나 되었고, 근골격계직업병 역시 심각한 수준을 보였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병원노동자들이 고된 노동때문에 근골격계 직업병에 시달리고, 질병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중환자실 근무하면 성격도 까탈스러워진다’
그 중에서 힘들기로 유명하다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곽숙임씨는 내과 병동에서 일하다가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중환자실을 지원한 흔치 않은 경우.

“굉장히 중한 환자들이 많이 오거든요. 그런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시간 시간 정해진 때마다 체위 변경해야 되고, 허리도 굉장히 아파요. 저는 튼튼하니깐 괜찮은데, 허리에 복대차고 다니는 애들도 있어요.”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자세로 침대에만 누워 있다보면 욕창이 생길 수 있어 간호사들이 시간마다 체위를 변경해줘야 한다. 그나마 1년여 전에 침대가 오토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환자를 옮기고 대소변을 치우는 일은 간호사들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간호사 1명 당 서너 명의 환자를 체위변경은 물론 일일이 붕대를 열어 수술부위의 출혈은 없는지, 어떤 주사를 투약했는지,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 그러다보니 ‘중환자실 4년 근무하면 성격이 까탈스러워진다’는 말까지 생겼다.

병든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그날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기라도 하면 간호사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게 된다. 밤새도록 지켜본 환자가 아침에 사망하면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은’ 허탈감에 빠져 울기도 한다. 물론 못 알아볼 정도로 건강해진 환자가 간호사들에게 인사하러 올 때면 보람도 크다고 한다.

‘어, 화장실 한번도 안 갔다’
일반병동의 김경옥씨는 울산대병원이 대학병원이 되기 이전인 혜성병원 시절부터 일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이전과 대학병원이 되고나서의 차이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들이 ‘무슨 대학병원이…’ 이러면 무조건 큰소리 안 나도록 막아줘야 돼요. 지금은 기계가 좋아지면서 수술실에서 하던 것도 특수검사라고 해서 병실에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는 환자가 20명인데 그중 1명이 특수검사가 있으면 그 환자 본다고 다른 환자는 방치되는 경우도 있죠.”

일반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평균 3-4명. 환자는 50여명이다. 의사의 처방대로 환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원에,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까지 일일이 챙기려면 쉴 틈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대학병원이 되면서 그나마 한가했던 주말, 휴일에도 환자들이 꽉 차 있다.

“일하다 바쁘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참게 돼요. 8시간 넘도록 일하고 한 번도 화장실을 안간 적도 있어요. 나중엔 정말로 ‘어, 화장실 한번도 안 갔다’ 이런 생각이 딱 드는거야. 월요일은 죽음의 날이에요. 비어있는 병상 다 입원 들어오고. 환자들 불만 제일 많을 때가 입원 첫날이거든요.”

김경옥씨는 일반병동에서 환자도 돌보면서 데스크까지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간호사가 받아야 될 의사 처방을 계속 확인해서 전달하고,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전화받고, 보호자들한테 절차 설명해주고. 여기 있으면 눈치도 빨라야 되고, 그때그때 캐치하는 그런 게 있어야 돼요.”
화면에 수 백 개의 칸으로 나뉜 프로그램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나름의 약속이 정해진 처방전을 써서 간호사들에게 전해주면서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김경옥씨는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니깐, 아무리 나한테 못되게 해도 ‘그래 나는 아프진 않지’. 그 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깔려 있으니깐, 아무리 황당한 경우도 넘어가는 것 같아요, 환자니깐.”

첫 실습 나왔을 때 ‘간호사가 천직’이라고 느꼈다는 김경옥씨.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하겠다면 말리겠다’는 김씨. 어려운 조건들도 환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버텨왔다면 진짜로 일할만 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가야할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더 멀고 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는 병원노동자들은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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