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월] 술판 깨는 사회

일터기사

[문화마당]

술판 깨는 사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문화국장 박선봉

노동자들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작년 말에 했던 ‘노동자 문화 실태 조사’에 의하면 “노동자의 자동차 보유율과 함께 자가운전 경향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전에 비해 음주경향이 많이 낮아졌다”는 견해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들은 76.2%가 술을 마시고 있으며, 이 중에서 남성은 82.0%, 여성은 61.1%가 술을 마시고 있다. 노동자들의 음주횟수는 ‘일주일에 1-2번 마시는 경우’가 51.3%로 가장 높았고, ‘한 달에 1-2번 마시는 경우’는 28.9%, ‘일주일에 3-4번 마시는 경우는 13.6%’, ‘거의 매일 마시는 경우’가 4.0%로 나타났다.

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이런 결과가 약간 의아스럽다. 그들은 매일 점심식사 때 반주로만 소주 각 1병을 마시고, 퇴근 무렵 술시만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슬렁거리고 다니면서 술 먹을 사람들을 조직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면 하루에도 두세 번씩, 1주일에 10회 이상은 술을 먹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먹은 술만 토해내도 호남평야에 물을 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4.0%밖에 되지 않는다니 조사결과가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만약 원하는 만큼 술을 못 마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날 일 때문에”가 39.4%, “돈이 부족해서”가 21.3%, “건강이 좋지 않아서”가 20.2%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다음날 일 때문에” 술을 못 마시는 경향이 높았고, 생산직 노동자들은 “돈이 부족해서”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나는 그 조사 결과를 보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계속되는 “파이를 키워야 너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늘어난다”는 자본가들의 거짓말에 속아 파이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했는데, 이놈의 썩어빠질 정권과 자본은 신자유주의라는 괴상망측한 잣대를 새로 들고 오더니 “그동안 파이 치수를 잘 못 쟀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줄어들었으니,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그나마 파이를 줄이는 바람에 이제는 맘 놓고 소주 한 잔 기울일 여유조차 없어져 버렸다니, 도대체 성질이 나서 술을 안 마시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에라, 개 같은 세상, 낮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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