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월,2월/현장의 목소리] 우리도 말처럼 달렸으면….

일터기사

우리도 말처럼 달렸으면….

–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노동자들-

한노보연 정흥준

1월5일 토요일 늦은 시간에 서울의 한 노조사무실에선 민주노총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지부의 조합원간담회가 열렸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은 경륜․경정의 일용직 발매 업무를 하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그런데 조합원간담회에 참여하다 보니 이 동지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안고 노동하는 동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비정규노동조합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광명 경륜장, 미사리 경정장 및 서울, 경기에 18개의 장외지점을 두고 있으며 소속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이중 현장관리, 전산, 사무보조, 선수, 심판, 연구조교 등 500여명은 상용직이지만 1000여명의 발매원들은 일용직이다.
2006년 상용직 노동자 500여명은 한국노총 연합노련 산하 국민체육공단일반노동조합을 결성하였으나 일용직인 발매원들의 노동가입을 유보해 왔다. 2007년 공단이 일용직의 무기계약을 회피하고자 시급제 전환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 때 일용직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저지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반노조에서는 조직력확대를 위해 일용직의 가입신청을 받게 되었다.

공단의 탄압과 한국노총 소속 일반노조의 외면
1000여명의 발매원 동지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연령층은 40~50대가 주를 이루고 근속기간은 보통 4년에서 10년에 정도이며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계약직노동자들이다. 상시적인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무기계약 전환 대상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공단에서는 무기계약전환을 회피하고자 이들에 대해 향후 외주화를 검토하고 있다. 공단에서 정부에 제출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무기계약전환대상자]에도 발매원들은 무기계약 제외대상으로 외주화대상이라고 명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발매원 동지들은 당연히 노동조합 가입을 통해 고용안정이 이루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그저 기대뿐이었다. 우선 일반노조 1500여 조합원 중 발매원 조합원 수가 1000여명이었으나 고작 4명의 대의원만을 배정해 의견수렴통로를 차단해버렸다. 또 발매원 조합원들의 정당한 단체행동(게임시작전 형식적인 인사거부)에 대해 일반노조위원장은 “그런 지시를 한 적 없다”며 조합원들을 외면하였다. 일반노조에서 발매원 조합원들의 보호를 포기하자, 공단은 07년 10월 14일 일용직 발매원 조합원 18명에 대해 정직, 견책 등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발매원 조합원들은 노조에 총회소집을 요구했으나 일반노조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오히려 7명에 대해 조합원 제명을 처리해 버렸다.

참다 못한 일용직조합원들의 노조결성
크리스마스를 막 지난 2007년 12월 26일 발매업무를 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서울지방노동청 동부지청에 총회소집 요구를 하였고, 총회소집 결정에 따라 잠실 아시아공원 원형무대에서 538명의 조합원이 참석, 임시총회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지부를 결성하였다. 그러자 공단은 4일 후인 30일자로 백복균 지부장, 박인자 부지부장, 김성금 사무국장, 이명선 부지부장, 유경희, 한수경, 유보숙 조합원들을 계약해지하고 해고를 통보했다. 탄압은 간부들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240여명의 발매원 조합원들에 대해 원거리 인사발령을 통해 사실상 ‘나가라’는 방침을 결정했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한국노총 소속의 일반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보호받을수 없으며, 외부불순세력의 개입에 의한 행위라며 다시 일반노조로 돌아올 경우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회유를 했다.

노동조합의 외면과 공단의 탄압을 뚫고 한판 싸움에 나서다.
현재 공공노조 국민체육공단비정규지부는 공단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공단이 교섭에 나선다는 약속은 받지 못했다. 힘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노동조합도 잘 알고 있었다. 지부장은 이사장이 교섭에 나올 때까지 다양한 투쟁으로 압박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8명의 해고자들은 전국의 지점을 돌며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있는데 해고자들 역시 가만히 앉아서 복직만을 기다리진 않을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또 지점별 조합원간담회를 통해 공공노조 소속의 새로운 지부를 알리고 조합원가입을 설득하고 있다. 아직까진 조합원들이 공단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단이 최종적으로 외주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노동조합을 통한 고용안정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지부는 매주 목요일 2시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앞에서 집중집회를 개최하고 1월 30일에는 전 조합원총회를 통해 힘을 모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러한 힘을 통해 공단의 외주화 음모를 저지하고 고용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간담회 풍경
늦은 7시, 토요일 일을 마친 조합원들이 하나 둘씩 간담회장소로 모였다.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아직 식사 전이라 김밥 한 줄을 먹고 어느 정도 조합원들이 모이자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공단의 비인간적인 처우, 일반노조에 대한 실망감, 현 지부에 대한 기대와 요구 등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어느 덧 시간이 9시가 넘었지만 토론은 계속되었다. 막바지에 이르자 한 조합원이 말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예요. 여기서 더 물러나면 앞으로는 어려울 거라고 봐요.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새롭게 하고 사람들을 가입시켜야 합니다. 우리 **지점은 지난 집회에도 거의 모두가 참여할 정도로 동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다른 참석자들도 대부분 수긍했으며 마지막으로 지회책임자를 선출하고 앞으로 지회에서 어떻게 조합원들을 늘려갈지에 대해 토론했다.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점심시간을 이용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9시 30분.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간담회는 끝이 났다.

한국사회모순을 현장에서 해결할 비정규노동조합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정부산하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가 상용직과 일용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정상적이다. 일용직은 모두 무기전환계약대상이지만 공단은 이마저도 외주화를 통해 누더기 비정규직법마저 피하려는 악랄함을 보이고 있다. 비정상적이다. 상용직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일반노동조합은 일용직들을 방패막이로 삼고자 할 뿐, 동지로 보고 않지 있었다. 이 역시 정상이 아니다. 특히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상용직 중심의 일반노동조합을 보면 현재의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분열이 향후 비정규직간의 분열과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물론 상용직노동자들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상용직 일반노조의 어용성과 한국노총의 몰계급성이 원인일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누구의 문제냐를 떠나 계급운동의 퇴조를 어떻게 극복할 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08년, 이명박의 당선으로 사회는 국민총생산 3만불, 4만불 시대를 떠들고 있지만 정부산하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60만원~100만원을 받으며 민주노총에 가입했단 이유로 해고되고, 수원에 살면서 강북구 길음지점으로 부당 전근되고 있다.
“버스로 10분이면 출근하던 회사를 코앞에 두고 왕복 5시간이나 걸리는 경기 광명으로 출근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잖아요…”한 조합원의 신문 인터뷰 내용이다.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이제 막 출범한 비정규노조와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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