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월/특집2]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되돌아보다

일터기사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되돌아보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3월 2일 오랜만에 동네뒷산에 올랐다. 곧 새순이 돋아날 나무들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한겨울에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로움이 시작되기 바로직전 있는 그대로를 다 드러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몽땅 드러내는 것,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새싹의 기운이 돋기 시작하는 거 아닐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그 몸체 안에 새움이 잉태되어 있는 거겠지

현장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고 함께했던 투쟁..

2002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근골격계 투쟁.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날에 숨죽이던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세상에 분출되기 시작했다. IMF 이후 많은 현장 노동자들이 일상적 구조조정에 의한 노동강도와 현장통제의 강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만한 이데올로기와 전략은 없었다.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노동강도 강화저지투쟁은 이 이데올로기와 전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구조조정에 맞서 고용안정투쟁을 전개하던 현장은 지난 투쟁의 과정속에서 획득한 많은 것들을 자본에 내어주어야 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몸과 삶이 피폐해지고 망가져가고 있는 현실을 근골투쟁은 정확히 읽어내었다. 고통을 정확히 읽어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고, 그 요구는 봇물처럼 터졌다. 아래 내용은 당시의 선전물 내용의 일부이다.

“골병 그냥 두어선 안 됩니다. 매일 밤 파스를 부쳐가며 통증을 잊으려 하고 계시진 않는지요.
이 정도의 통증이야 누구나 있지 라며 참고 일하고 계신다구요. 근골격계는 몇년 동안 계속 쌓이게 되면 작업 후에도 회복되지 않고 감각이상과 통증이 오고 운동장애와 모양의 변화까지 생기게 하는 병입니다. 이게 어디 나만의 문제이겠습니까? 10명중에 7명이 아프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릴까봐 아파도 말을 못하기 때문에, 제때 치료를 못해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우리 몸뚱아리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구조조정 중단․ 노동 강도 강화 중단 없이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명칭을 부르기도 어려운 근골격계 골병은 당연히 산재로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노동자 대부분이 알게 되었다.
자본과 정권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배경인 일부 전문가들은 개별적 특성이라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관리를 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떠들어 대고, 지금도 떠들어대고 있지만, 이제 누구도 근골격계 직업병이 ‘구조조정에 의한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발생하고 급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총자본의 치밀한 공세와 역풍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4년을 경과하면서 근골격계 문제는 급속한 제도화와 관리의 시기로 들어섰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문제의 관리를 통해 노동강도와 현장 통제를 둘러싼 전선의 약화와 교란을 시도한 자본이 있었다. 즉, 노사 합동의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시도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반해 치료 중심으로 문제의 성격을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근골격계 인정기준이라는 자본과 정부의 공세로 ‘집단요양투쟁’이라는 전술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더욱 촉진되었다.
노동강도 강화저지투쟁이 자본이 자신들의 성역으로 여겼던, 생산량, 인력 등을 결정하는 과정을 노동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투쟁임을 간파하고 이를 막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정부는 서둘러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 문제를 순수한(?) ‘근골격계 직업병’만의 문제로 한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고, 자본은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았다. 
2003년 기업안전보건위원회구성, 2003년 노동부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 운영, 2004년 산재환자 적정요양기간에 대한 연구, 2005년 근로복지공단 3대 독소지침, 근골격계 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마련 , 2006~2007년 노사관계로드맵, 비정규법안 통과, 산재보험법 개악, 한미FTA협상까지 거침없이 밀어부쳤다.

자본의 무한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의 몸과 삶을 통제하는 전략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 노동자간 분리, 경쟁을 조장하고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이데올로기 공세
* 노동시간 연장 ,휴식시간 감소 ,인원감축, 교대제, 다기능화 ,자동화 ,비정규직 증가 ,팀제도입 등 경쟁체계화를 통한 노동강도가 강화, 현장통제력 확보
* 노조조직체계 무력화하여 자본의 통제아래 하위배치
* 각종제도와 협약에 대한 개악시도
* 작업외적 물리적 통제기제로써 부속의원 , 재활센터 및 물리치료실 , 노사공동상담실 등

근골격계 문제는 자본 스스로 밝혔듯이 신자유주의 핵심을 폭로하는 문제이기에, 자본은 사활을 걸고 대응했던 것이다. 노동부에서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권고하고 있는 내용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한, 사업장의 근골예방관리프로그램 매뉴얼에 따르면 “의학적 관리를 통해 건강을 회사가 책임진다는 만족감을 심어줄 것이며, 이러한 만족감을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답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목표로 설정되어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본이 근골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총자본은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 맞게 모든 걸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은 철저하게 분해되고 통제된다. 새로운 통제장치들은 전문화되고 대중들의 삶을 새롭게 종속시켜간다.
사업장내에서 진행되는 근골격계 예방관리프로그램에 의한 의학적관리가 노동자들의 철저히 관리하고 산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모른 채, 사내복지 프로그램 수준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사회통제 시스템의 작동은 자본의 목적에 따라 동원되고 활용된다.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살기위해 스스로 경쟁을 내면화하고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밥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현장의 노동자들이 모든 걸 감내하고 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골병 들어가며, 과로사에 쓰러져가고, 심야노동에 수명이 단축되어가도, 잔업특근에 목 메일 수밖에 없고, 동료도 친구도 경쟁자가 되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병든 노동력은 가차 없이 폐기처분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했다. 신자유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노동력은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두고 목숨만 연명하라고 한다.

그리고 2007년은 법적으로 보장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두 번째로 진행되는 해였다. 경남과 포항지역 금속노동자들은 지역공동조사와 공동투쟁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사측의 형식적인 조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현장주체조직과 역량강화의 측면은 배재된 채, 인간공학적 접근중심으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였고,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곱씹어야 하나?

근골투쟁의 정신을 먼저 되돌아보자 02년 당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투쟁해왔다.
첫째, 노동강도 강화저지투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지속되는 한 계속되어야 할 투쟁이다.
둘째, 이 투쟁을 통해 기존의 임단협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의 관성을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투쟁, 무너진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기 위한 투쟁의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셋째, 노동강도 강화저지투쟁은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현장 활동의 역사적 한계(산재보상실무위주의 활동, 산안간부에 국한된 활동, 전문주의적 경향)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처럼 우리는 근골투쟁이 일회적으로 전개되는 투쟁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고, 새롭게 힘을 구축하는 지속적인 투쟁이어야 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투쟁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며 정당하다. 이제 그간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고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제대로 읽어 낼 때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 현장에 불을 지피는 지속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2000년 초반의 근골 투쟁은 하루아침에 조직 된 것이 아니었다. 97년경부터 이어진 금속노동자들의 투쟁, 한국통신 전화교환원들의 투쟁, 지역별 사업장별 조직적인 공동투쟁의 바탕위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 강도 저지투쟁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일상적인 구조조정에 맞서는 근골 투쟁은 일터에서 삶에서 일상적인 저항이 조직되고 진행될 때 거대한 불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근골격계 문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물임이 다시 한번 명확히 인식하자. 그간 진행해 온 근골격계 투쟁의 방식만을 고집하거나 집착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근골투쟁에 가로 막힌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전략을 세워내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자 삶과 몸의 파괴되는 그 현실에서 우리의 투쟁은 지속되어야 하고, 일상적 저항을 바탕으로 전체 노동자의 저항으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 투쟁의 주체, 일상을 변화시켜 갈 주체를 세워내는 투쟁이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진행한 투쟁을 돌이켜보면 집단요양투쟁, 현장실천을 통한 생산성에 저항하는 현장투쟁, 현장조사투쟁 등이었다. 이는 모두 현장의 주체를 세워내는 것을 통해 가능했다.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투쟁 맵을 만들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준비조사, 교육선전 과정을 거치고 투쟁이 본격화된 다음 단절이 되기 일쑤였다. 투쟁에 지치기도 하고, 바쁜 일상에 쫒겨 돌아볼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상투쟁의 방기가 아니라 이행의 상이 부재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주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던 현장조직력 복원을 위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일상투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색되어야 하는지 함께 진단하고 고민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힘들고 어려운 투쟁과정을 통해 얻은 성과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임단협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의 관행이 반복되고, 노안간부에 갇힌 활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고통의 지점을 제대로 읽고 드러내야 한다
‘날마다 파스 부치며 참고 계신다구요 그대로 두어서는 안됩니다’와 같이 주체들의 고통을 드러내며
맘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게 되었듯이 현실의 고통을 제대로 읽어내고 함께 해야 한다. 자발적 경쟁에 내몰리며, 망가진 몸뚱아리와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에 분노와 좌절을 반복하고 있는 현장의 고통을 말이다.

우리는 2007년 지역공동조사와 투쟁을 통해 다음과 같은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7년 경남지역의 공투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장의 노동강도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었고, 직무스트레스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근골격계 증상도 중증도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병에 대한 치료문제도 개별화되는 양상이 증가하였고, 공상, 근무중 치료도 증가하고 있었다. 이는 경남지역에만 한정된 결과가 아니고 대부분의 사업장의 모습일 것이다.

조사결과 중 노동강도 변화항목을 보면 작업 중 휴식시간, 여유시간, 하루 중 휴식시간, 부서나 팀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하루 중 작업시간, 작업속도, 같은 시간 해야하는 일의 양, 담당하는 기계시설 수, 일의종류, 교대작업, 하청외주도입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업장 전반적으로 상대적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있었으며, 업종의 특성에 따라 절대적 노동강도의 강화도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근골격계 증상 유병율을 비교해본 결과, 증상이 중증도화되어 가고 있었다. 현장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는데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은 근골격계 질환 증상의 중증도를 키웠다.

그리고 현장토론을 통해 현장동지들이 누구보다도 근골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의 방법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4년에 비해 개별적인 환경문제보다 물량, 인원, 구조조정 등에 대한 이야기가 토론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품무게도 문제지만, 두시간에 몇 개해야 한다는게 있잖아요. 이런 물량이 무리하게 하는 요인이다. 물량을 줄이면 좀 낳지 않을까. 물량이 안정이 되면 속도도 좀 낮추고 하면 덜 아플것이다.’

‘인원이 절대적으로 많이 부족하고.. 지원다니고 이렇다 보니깐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 물량을 다 맞춰주고 이렇게 되니깐 철야하고 물량을 빼다보니깐 아픈거라.. 근본적인 문제 인원을 정규직으로 채용을 해줘야 되는거지.. ’

* 자본의 전략을 정확히 분석하고 우리가 걸어갈 길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고통의 지점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자본의 전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고통의 분출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 공세, 현장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 제도적 개악을 통한 기본권 박탈, 복지로 둔갑하는 전문화된 통제방식 등이 각 사업장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장과 지역, 전국단위의 공동의 투쟁과제를 설정하고 공유하며 실천하는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

자본주도로 움직이는 근골 관리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밝혀내는 것, 수시유해요인조사를 복원하는 것, 아픈 사람에 대한 치료를 보장하는 투쟁, 재활복귀프로그램에 대한 노동자 중심성을 확보하는 것, 이러한 다양한 투쟁이 전체흐름을 관통하는 투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분석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보다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근골투쟁만 별도로 고민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골투쟁의 정신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은 근골투쟁 속에서 하고자 했던 기본적인 정신과 그 실천과정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려 그것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산재법 개악에 맞선 투쟁, 심야노동철폐,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몸과 삶이 파괴될 수 없다는 기본적인 권리가 사회적 권리로써 제기되고 주장하고 쟁취하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동지들과 내가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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