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월/이러쿵 저러쿵] 4가지 이야기

일터기사

4가지 이야기

한노보연 회원 김승섭

이번 달에 딸이 태어납니다. 딸 이름은 제가 지인(知仁)이라고 지었습니다. ‘어짊을 아는 아이’라는 뜻이지요. 아이가 크면서, 자기 이름을 지어준 아빠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한번쯤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내는 배가 불룩해졌습니다. 임신 38주거든요. 아이가 뱃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면 더없이 좋아하다가도, 낳을 생각만 하면 두렵다고 합니다. 한번은 ‘왜 여자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 하고 지나가는 말을 하는데, 아무런 대꾸도 못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10을 만점으로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이 6이라고 하면, 출산의 고통이 8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자들은 여자들이 출산과 관련해 이야기할 때는 아무 이야기 안하고 묵묵히 미안해하며 있는 게 도리인 것 같습니다.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7월말 출국이구요. 직업보건을 공부하러 박사과정으로 미국에 갑니다. 3월초 합격 통보를 받고도 학비와 생활비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었는데, 학교로부터 다행히 학비 전액과 생활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교’라는 곳에 가게 된 한국 사람들이 한번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이어서 일까요. 무언가 못 마땅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다른 고민이나 활동을 덜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피부과나 성형외과 레지던트를 하는 것처럼, 대학시절 다른 무엇보다도 학업에 신경을 썼던 사람들이 영어 시험을 잘 보면 그 학교에 가는 것인데, 저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사회운동가가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쓴 책이예요.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전세계 전자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콩 동지와 이야기하다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이 발생했는데, 그 이후에 삼성이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듣고서 울컥해서 시작했습니다. 항상 그 놈의 ‘울컥’이 문제이자 시작이지요. 한국어로 번역하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10명이 넘는 여러 분들이 도와주셔서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책으로 얻게 되는 번역료 전액과 인세 전액을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에 내겠다는 조건인데, 돈 안 되는 노동에 바쁜 일정 쪼개가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그런 마음에 빠져있다가도 가끔은 바짝 긴장이 되요. 책이 나오는 순간은 좋은 의도에서 번역을 했다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 번역이 얼마나 읽을만한가 또 원문의 내용을 얼마나 잘 살렸는가 하는 냉정한 잣대를 통과해야 할 텐데. 총 책임을 맡고 있는 만큼, 좋은 마음으로 노동에 참여해준 이들의 이름에 누가 되면 안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간혹 떠오릅니다.

석사 논문을 쓰고 있어요. 제목은 ‘수용시설 내 생활환경이 교도소 수용자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공중보건의사로 교도소에 근무했던 고민에서 시작된 논문입니다. 교도소에서 의사로 일하게 되면 수용자들이 아프다고 하는 말이 진짜 아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꾀병일 수 있다는 생각부터 하게 되요.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싸이코 패스니 하는 단어들도 여기저기서 들리구요. 도대체 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하는 것이 항상 제게는 고민이었어요. 사람자체를 정신질환을 가진 존재로 규정하기 이전에, 교도소의 열악한 수용환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정리해보자는 것이 제 석사논문의 주제인 것이지요. 미국에 가져져가겠다고 안 되는 영어로 논문을 쓰며 온갖 삽질과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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