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월/새세상열기- 교육] 2회. 이명박 정권의 교육시장화 정책 아이들이 뿔났다!

일터기사

2회. 이명박 정권의 교육시장화 정책
아이들이 뿔났다!

진보교육연구소 소장 이 현

오렌지? 어륀쥐? – 영어몰입교육 파동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에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교육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마 공교육을 강화하여 사교육의 필요성을 대폭 진보교육연구소 소장 이 현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일 게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약들을 살펴보면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학교를 시장판으로 만들어 사교육비를 확대시키고 교육 불평등을 더욱 구조화시킬 정책이라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새 정권 출범 전인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의 방향을 한 눈에 가늠해볼 수 있는 ‘영어몰입교육’ 파동이 일어났다. 인수위에서 처음에 제시한 ‘영어몰입교육’은 가능한 모든 과목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영어몰입교육을 제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세계는 글로벌 경쟁시대이고, 영어가 글로벌 언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아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자는 것이다. 즉 그들은 교육의 목표를 ‘영어 배우기’로 집중시키려 한 것이다. 다른 과목의 수업이 부실화되더라도(실제로 우리말로 수업을 해도 많은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학생들이 영어몰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학부모들이 영어사교육비를 더욱 많이 지출해야 할지라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영어, 영어만이 그들 눈에는 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하는 많은 나라들이(영·미의 식민지였던 예를 들어 인도, 말레시아, 필리핀 등 모두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한다.) 우리보다 못 살고 있으며, 우리처럼 영어에 광적인 관심을 쏟지도 않고 영어 실력도 떨어지는 일본은(국제 영어인증시험인 토플에서 우리나라는 평균215점 일본은 191점이다.) 여전히 선진국을 유지하고 있다. 영어는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내에서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필수코스이며,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은(대부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 등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이다.) 영어를 통한 개인적인 출세의 경험들을 마치 나라를 살리는 길인 것처럼 확대 포장하여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의 ‘어륀지 소동’은- 그 덕에 수많은 오렌지들이 집회장에서 수난을 당하였다.- 영어몰입교육 사태의 화룡점정이었다.
영어몰입교육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과 학생들의 마음은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몰입교육 사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무능하면도 저돌적인 정권, 어떤 정책이 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경쟁력 강화만 염불처럼 외우는 시장제일주의를 앞세우는 강남 정권으로서의 이명박 정권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고편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난 국민들이 모두 좋아할 줄 알았다? ” – 4·15 학교 자율화 조치

영어몰입교육 사태로 한바탕 국민들과 학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이명박 정권은 4·15학교 자율화 조치를 통해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4·15 학교 자율화조치는 학교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고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0교시 부활, 우열반 편성 허용, 학교보충수업에 학원 참여 허용, 촌지 규제 조치 폐지 등등 수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다. 우리는 ‘자율화’와 ‘다양화’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정부가 내세웠던 구호가 학교 자율화와 다양화의 확대였다.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율화 조치는 곧 시장적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는 곧바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열반의 편성은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지만 다수의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그들을 패배자로 내모는 반교육적 행위이다. 결국 일부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조치로 이어졌다.
또한 입시경쟁이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최소한의 규제조치의 폐지는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을 해치는 과열 경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떤 학교에서 0교시를 하면 다른 학교에서 -1교시를 하게 되고, 어떤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야간학습을 연장하면 옆에 학교에서는 12시까지 연장한다. 경쟁은 경쟁을 낳고 결국 교육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경쟁만이 남게 된다.
교육 주체들과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번 조치가 모든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줄 알았는데 왜 반발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여 또 한 번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고 말았다.

교육에서만큼은 경쟁과 시장화는 이제 그만! – 덜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교육을!

교육은 본질적인 속성상 경쟁과 어울릴 수 없다. 예를 들어 여기 한편의 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성적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시를 공부하는 학생은 오로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의 주제가 뭐고 소재는 무엇이며, 어떤 표현 기법을 사용하였는지 열심히 암기할 것이다. 이는 시를 읽는 본래의 목적인 정서적 감동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입시경쟁이 과열화된 한국의 교육은 교육의 본질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해가고 있으며 입시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교육은 남을 누르는 승리를 목적으로 할 수 없다. 모든 학생들이 자기의 풍부한 잠재성을 계발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사회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개개인의 학생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 지원 등이 기본적인 원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교육의 본질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교육 시장화를 단호히 배척할 수밖에 없다. 시장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강자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주고 약자들에게는 기회를 더욱 박탈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교육에서만큼은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 주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성과 연대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기회’가 아니라 ‘덜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교육을’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줄줄이 추진 중에 있는 교육 시장화 정책!

영어몰입교육 사태와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 시장화 정책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미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부터 교육을 황폐화시킬 강력한 시장화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전방위적으로 시장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귀족학교에서 서민학교까지 – 고교 다양화 정책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이 추진 중에 있다. 이름은 다양화이지만 기존의 고교 평준화 체제를 해체하고 고교를 계급화·서열화하겠다는 발상이다. 평준화 이전 60·70년대의 고교 서열화가 단지 입시 성적에 의한 서열화라면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고교 다양화는 교육여건이나 교육과정, 학교 체제 등 모든 측면에서 질을 달리하는 즉 귀족학교에서부터 서민학교까지의 계급적 서열화이다. 결국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훨씬 좋은 교육 여건에서 공부하게 되고 돈 없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옆의 피라미드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 현실화시킬 고교 서열체계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불 능력과 학생들의 중학교 성적에 의해 완전히 다른 학교 체제에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이제 대입이 아니라 고입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입시경쟁과 사교육은 더욱 빨라지고 심화될 것이며, 아이들은 훨씬 어린 나이부터 갈라치기와 불평등의 고통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 평가 시스템의 전면 확대 – 일제고사·학교평가 그리고 평가 결과의 공개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가 주관하는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개별 학생의 성적을 통지하고 학교별 성적도 공개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이 현재 학교에서 보는 시험만으로도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가 확산되면 아이들 겪는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며 아이들은 더욱 시험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이 시험을 통해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성적표를 받아본 학부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 성적을 학교별 공개하는 것은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학교와 교사들은 오로지 성적 올리기 경쟁에 혈안이 될 것이다. 이미 과잉 입시교육에 의해 교육 본래의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험과 관련되지 않은 교육은 더 이상 학교 현장에 발붙일 수 없게 될 것이다. 학교는 시험지옥, 입시지옥으로 변해갈 것이며 학원화될 것이다.
학교별 성적 결과는 뻔히 예상할 수 있다. 부자 동네에 있는 학교는 성적이 높을 것이고, 가난한 동네일수록 성적이 낮게 나올 것이다. 이제 가난한 노동자-서민이 몰려 사는 동네의 학교는 3류 학교가 될 것이고 덩달아 아이들도 3류 학생이 될 것이다. 그나마 살만한 집 아이들은 부자 동네로 이사를 갈 것이고 이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 아이들의 원망을 들으면서 3류 학부모의 설움을 곱씹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교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가난한 동네의 학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기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나타난 현실일 뿐이다.

󰋫 교원평가 –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가 과연 강화될까?

한편 학부모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정책이 교원평가 추진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참여할 권한이 전혀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것에 찬성하는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현재 시범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원평가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학생과 학부모가 여러 항목에 거쳐 교사를 점수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초중등 교육 단계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제도이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것일까? 지금 추진 중인 교원평가 방식을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해답이 쉽게 찾아질 수 있다. 교육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상호 신뢰와 인격적 교류가 가능할 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교사를 점수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자기의 교육적 소신과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항상 염두에 두면서 학생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기 어렵다. 또한 일년 동안 가르친 교사들을 점수로 평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리고 모든 관계들을 점수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우리 부모는 몇 점짜리 부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학부모-학생 사이에 상호신뢰와 인격적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교원평가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모든 관계들을 점수화하고 서열화하여 상대방을 압박하고 경쟁시키는 것은 비교육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반인간적인 것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자기들의 요구를 표출할 수 있고 학교교육과 교사의 교육활동을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 단위에서 학부모회, 교사회, 학생회를 법제화하고 학급 단위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평등한 협력자로서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사-학부모-학생의 관계가 서로 견제하고 통제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교육이 죽는다.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상호 신뢰가 강화될 때만이 참된 교육이 되살아 날 수 있다.

학생들이 뿔났다. – 미친 소와 미친 교육 –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입시교육에 너무 찌들어서 아무런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여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어찌어찌해서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해도 변변한 직장 하나 얻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권의 미친 소 수입 결정과 계속 쏟아지는 노골적인 학교 시장화 정책은 학생들의 불만을 점화시키고 드디어 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이제 어린 학생들이 열어 놓은 길을 어른들이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다. 입시지옥에서 정당한 배움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아이들, 경쟁에 찌들어 좌절하고 패배감에 젖어 있으면서 미래의 삶에 대하여 불안해하는 아이들. 이제 입시지옥과 과열 경쟁을 폐기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디자인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이런 과제들을 미래의 과제로 미룰 수 없음을 아이들이 행동으로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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