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월/이러쿵저러쿵] 일터 구독자여러분 반갑습니다.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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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구독자여러분 반갑습니다. 꾸뻑^^

한노보연 회원 안재범

나는 대학진학을 기대하시던 부모님의 반대와 학대(?)에도 불구하고 1994년 4월 무한경쟁시대에 사회공헌에 이바지하고 조국근대화의 기수를 꿈꾸며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계획대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나의 회사에 대한 인식 수준은 초등학교 때 요구르트 공장으로 견학 갔던 수준에서 정지된 상태였고 독립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더불어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던 선택이었기에 두려움 따위는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자력갱생! 무식한 게 용감하다! 소잃고 외양간고치기! 로 나의 회사생활은 지함 속에서 무한도전이 시작되었다.

자력갱생!
현재는 소음 진동에 관한 시험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입사당시는 시작실로 배치되었다.
첫 부서배치 후 느낌은 군대는 갔다 오지 않았지만(귀신 잡는 특례병임 ㅋㅋ) 느낌상으로 6주간 훈련을 마친 후 자대배치 받은 느낌이랄까? 음~~뭐~~암튼~~그랬던 것 같다.

연구소 소속 지원부서인 시작실은 7~10명 정도가 근무하며 연구소의 개발팀에서 제공되는 제작사양에 따라 기계가공, 조립, 용접 등으로 샘플을 제작하는 곳이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급격한 환경변화로 긴장과 실수가 제품불량으로 이어져 혼도 많이 났다. 심하게 좌절도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막내(14년째 현재진행형)인 나를 유난히 친동생처럼 무척이나 아껴주고 챙겨주던 형님이 두 분 계셨다.(순천이형, 윤성이형)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두 형님들 중 한분의 이야기를 통해 어렵고, 힘들고, 끝도 없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의지와 열정으로 극복하고 현장의 희망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2004년 어느 날 형님이 말소리를 못 알아듣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TV나 사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다고했다. 본인 또한 답답한 심정에 개인적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은 결과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후 소송 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병원 원장은 문진도 없이 기도검사만 실시하였다고 했다. 직업과 하는 일이 뭔지만 물어 봤더라면 쉽게 소견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
이후 대의원동지로부터 혹시 산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 산재? 밑져야 본전이지 뭐~ 일단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장해보상청구가 근로복지공단 1년, 법정투쟁 1년 9개월 만에 승소하는 결과를 나았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충분한 자료 없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만을 기다렸다. 결과는 “기각” 소음성난청은 요양은 안 되며 장해보상청구를 하라는 것이다. 헐~~~접수 전에나 말해주던지…

그 당시 소음성난청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근거자료나 지식이 없는 우리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재 인정이 어려운 것이 관행이다. 더욱 3년 동안 이어질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07년 7월 15일 소음성난청 불승인 사유: 85dB 이상 연속음으로 노출된 사업장을 보기 어렵고, 2004년 작업환경측정 시에도 83.7dB로 측정되었으며 귀하의 소음성 난청 관련하여 과거에 85dB 이상의 연속음에 노출되었다는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현재의 진단된 상병을 업무와 관련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움. 아~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게 이렇게 가치가 없을까? 겉으로는 안 그런 것 같지만 살짝 맘이 상하신 울 형님과 자료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대의원 정우형, 나, 우리 모두는 상실감에 빠져있었다.

그 시기에 지회 임원선거가 실시되었다. 현장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던 우리가 선거투쟁을 통해 집행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용부장과 노안위원(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언 형님 구하기가 시작되었고 현장에서 넘치는 노안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무식한 게 용감해서인지 의욕이 넘쳐 지금까지도 노안문제가 혈압을 상승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휴~~노안활동의 직업병인 듯하다

소잃고 외양간고치기!
시작은 노동자 한분의 문제였지만 과정을 보면 뭔가 놓치고 가는듯했다. 우선 노안위원들은 조합원동지들의 건강상태와 작업환경측정, 특수검진 실태를 파악하기로 하였다. 지회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고 자료를 찾고 확인하다보니 사측과 기관의 여러 가지의 축소, 은폐 의혹이 들어났다.

▶공교롭게도 같은 검진기관에서의 특수검진 판정결과가 97년 당시는 직업병 요 관찰자인 C1 판정을 2005년도에는 일반성질환인 D2판정을 내렸다. 검진기관 담당 산업의학과 교수의 D2 판정의 이유는 청력은 4000Hz부터 서서히 나빠지는데 과거의 검사기록이 없으므로 갑작스런 소음에 폭로되어 청력이 한순간에 나빠졌다라고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의 ㅅ대학 부설기관의 추적관리 실태를 파악한 결과 한해는 C1, 한해는 C2로 관리된 노동자들이 여러 명 확인되었으며, 형님과 같이 과거 5년 동안 요 관찰자 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자에서 누락된 조합원이 상당수이며 D1판정과 D2의 엇갈린 판정도 여러 차례 발견되었다.

※모두 부 정확한 판정들이며, 검진대상자 누락, 사후관리미흡, 작업환경측정 또한 일부 한정된 부서나 공정에서만 이루어졌으며 과거에 단 한건도 기준치를 초과한 곳이 없었다. 따라서 말로만 듣던 측정, 검진기관과 회사와의 유착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후 회사의 관리 실태부실과 측정 및 검진기관의 신뢰성 등을 이유로 측정 및 검진기관을 바꾸어냈다.

과거의 7.8년간 30명 남짓했던 요관찰자(C1)는 현재 200여명 정도이며 유소견자(D1)의 실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특수검진을 통해 한 번도 청력검사를 받아보지 않은 대다수의 동지들을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한 작업환경측정결과 과거의 한건도 없던 현장의 기준치 이상을 초과한 공정이 무려 소음만 20공정이 넘는다.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은 비교적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나 관련된 기관에서는 책임성을 가지고 꾸준한 개선과 추적 관리해 나가며 측정 및 검진결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더 이상 직업성질환이 생겨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각 사업장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가 지금 부터라도 내 작업장의 환경과 내 건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하며 시작은 우리의 권리를 찾는 요구로부터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요구로 올바른 측정과 검진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는 세계시간의 기준이 있답니다.
영국이 지 멋대로 세계시간의 기준을 삼아서 기분이 살짝 나쁘긴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 기준이 되다 –

왼쪽에 서지도,
오른쪽에 서지도,
뒤쪽에서지도 않을 것이다.
난 세계의 기준이 될 것이다.

소음성난청은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으며 회복이 불가능해서 평생을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소송 3년간의 시간이 악몽 같다고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라고 말합니다. 이제 마흔 중반 나이에 그 성격 좋은 분이 양쪽 보청기를 하고 다니기 창피해서 사람만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모든 책임을 사업주와 회사 측 안전 관리자들에게 만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늦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눈높이가 기준이 되어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계처럼 노동자 건강권의 기준이 되는 지침서가 되어 제대로 감시하고 스스로 피하는 법을 알려내는 것이 우리 노안활동가들의 몫이 아닐까 이러쿵저러쿵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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