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월/새세상열기-의료] 1편. 의료민영화 논란, 실체를 밝힌다

일터기사

‘의료 민영화’
실체와 대응방향

영화 “식코”는 의료가 완전히 민영화, 영리화되면 어찌 될 것인지를 미국 사회의 끔찍한 현실을 통해 생생히 보여주었다. “식코”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현실은 우리나라와는 동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불행히도 우리의 미래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제주도에서의 영리병원 도입시도가 도민들의 힘으로 일단 저지되긴 하였지만, 그 시도는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에서는 ‘의료민영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의료민영화’가 의료의 공공성과 노동자, 민중의 의료이용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진보적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해 보고자 한다.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편. 의료민영화 논란, ‘실체’를 밝힌다.
2편. 제주특별자치도 영리병원 저지 투쟁의 경과와 의미
3편.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진보적 대안은 무엇인가?

1편. 의료민영화 논란, 실체를 밝힌다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박형근

1. 들어가며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고급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등 다양한 수사를 수반하며 일련의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영리법인병원 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설립 허용 등과 같은 자본조달 기전의 합법화, 당연지정제 예외 허용 등의 건강보험 예외 의료기관 제도화, 건강보험 대체재로서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그 핵심이다. 이러한 정책 추진에 대한 의료민영화 우려가 깊어지는 것과 괘를 같이 하면서 의료서비스 산업 활성화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요구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면 의료비가 내려갈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에서부터 정부가 5조원을 들여서 추진하는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고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비교적 솔직한 주장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정부당국에서는 현재의 정책 추진이 의료민영화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에서는 의료민영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다.

2. 의료 민영화의 정의

건강보험 민영화가 당장에 본격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무리한 주장일 수 있지만, 연 40조원 대에 이르는 건강보험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거대한 규모라는 점과 건강보험 예외기관 인정 확대와 건강보험을 대체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측면에서 ‘의료 민영화’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의료 민영화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란 민간보험회사가 주체가 되는 민간의료보험이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경쟁 혹은 대체할 수 있도록 육성시키고, 영리법인 허용 등의 조치를 통해서 자본시장으로부터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조달 기전을 합법화하여, 이윤추구를 존재 이유로 하는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 간에 자율계약을 통해 의료서비스 비용을 결정하고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3. 의료민영화 추진의 실체: 3대 핵심과제

의료민영화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정부 당국과 의료서비스 산업 활성화론자들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제도 변화의 실체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핵심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이 아닌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해서 민간의료보험사와 자율적인 가격계약에 기초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 모델은 미국식 의료제도라는 사실이다. 현 보건의료제도에서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한 3대 핵심과제는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정책의 조합에 따라서 의료 민영화 추진의 강도와 속도가 결정될 정도로 기존 제도는 현행 건강보험체계를 유지시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구체화된다면 시장은 의료 민영화 추진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보다 자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1)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에 대해서 언급하면, 현정부는 이미 당연지정제를 고수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천명하였다는 답변이 바로 돌아온다. 필자도 현 정부에서 당연지정제를 손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사정이 녹록치 않다.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를 기대했던 정부 입장이 돌변하자 의사회가 당연지정제 폐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다. 당연지정제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으로 당연지정제 위헌 소지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와 보건복지부는 제주에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더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적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에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리법인병원은 주식회사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에 대해서 생산품의 범위와 가격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 헌법 119조 ②항에 담겨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에 의거하여 일정한 규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특정 시점에서 영리법인병원에 대한 ‘당연지정제 적용 위헌소송’이 제기된다면 합헌 결정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왜냐면 기존 위헌소지 이외에 영리법인병원의 주주인 주주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예상되는 개헌 논의 과정에서 헌법 119조 ②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건강보험당연지정제 위헌소송’ 등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점차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경향은 외국의 보건의료 주요 현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행정당국에서는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어도 당연지정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책임질 수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2)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허용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비록 2008년 7월 제주도민의 현명한 선택으로 인해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과제이다. 내년 제주에서, 아니면 경제자유구역에서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사안이다. 국내에서 의료기관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지 오래인데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든 말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영리법인병원이 비영리법인병원과 다른 차이점은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금 현재는 의료기관 설립자격이 의료인과 제한된 법인에게 국한되어 있는데,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이후에는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자본시장, 즉 주식 및 채권 발행을 통해서 의료기관 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주식회사 병원이 탄생한다고 보면 되는데, 주식과 채권 발행이라는 형식보다는 수백조원대의 부동자금이 이윤을 목표로 의료시장에 유입되는 통로가 합법화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영리법인병원은 투자자에 대한 수익금 배당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이윤 추구 행동이 보다 더 뚜렷해진다고 이해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넷째,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이 의료 정책과 제도에서 갖는 중요한 차이점은 영리법인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요양기관으로 당연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기왕의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높은 의료공급자들이 건강보험체계 밖으로 이탈하거나,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가격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작동할 것이고,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이익 확보가 가능한 보험료 산출을 위해 건강보험이 축적한 건강보험 자료마저 얻게 되면 영리법인병원과 민간보험 간의 자율적 가격 결정에 기반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가 구축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될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의 파괴력 때문에 완화된 영리법인병원 허용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MSO(병원경영지원회사)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 25일 발표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서 ‘부대사업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하여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되 보완장치도 마련’ 할 것이며, ‘MSO 설립 등’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6월 10일 복지부의 입법 예고안에는 복지부 장관이 그 범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있다. MSO는 의료기관이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으로, 이제도가 도입되면 의료서비스 분야와 내용만 건강보험의 규제를 받는 제한적 범위의 영리법인병원이 등장할 수 있게 된다. MSO 설립 허용 이후에는 의료시장에서 자본조달과 관련해서는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에 준하는 시장행동이 활기를 띄게 될 것이고, 투자 자본에 대한 수익배당과 이윤 창출을 위해서 수익 확보에 충실한 행동이 강화될 전망된다. 삼성의 경우 아예 발벗고 나서는 형국이다. 2008년 8월 1일자로 삼성서울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마산삼성병원, 성균관대 의대,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인성의과학연구재단 등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6개 기관을 ‘삼성의료원’체제로 통합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의료경영지원회사(MSO)와 생명공학 벤처기업, 건강증진센터 등 신규 사업 추진을 통해 경영합리화도 이룩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 삼성생명이 주도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연계된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벌이 주도하는 의료민영화의 길이 본격화되는 시대가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이 시장에 대해서 의료 민영화 추진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3)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 추진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은 참여정부 의료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핵심은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의 제도화, 기업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의 단체 가입에 대한 세제혜택,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상품개발을 위한 건강보험공단의 질병정보 공유이다. 기왕에 존재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교통정리, 실손형 보험 가입자 확대를 위한 보험사에 대한 특혜 제공, 대체형 보험 개발을 위한 민간보험사에 핵심 정보 제공이 요체이다. 관계 부처 간 주요 쟁점에 대한 협의가 마무리되었으나, 의료민영화 우려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개입하여 추진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역시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7월 말 금융위원회에서 2008년 정기국회에 건강보험공단의 질병정보를 민간의료보험사와 공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금융위원회에 보험사기 조사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비롯한 관련 공공단체에 개인 질병정보를 포함하는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이 요청을 받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은 의무적으로 자료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보험사기라는 단서를 달아놓았지만 현재도 보험사기 등 보험관련 범죄가 발생할 경우 검찰 등 수사기관은 건강보험공단에 질병정보를 요청해 열람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민간보험회사의 요청에 의해 금융위원회가 건강보험 질병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이 자료는 민간보험회사들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될 것이고 민간보험회사들은 건강보험 정보를 고객 가입 시 혹은 보험금 지급 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었거나 특정 질환으로 오래 진료 받은 경력이 있었다면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지급 보험금을 깎기 위한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법안이 확정되면 모든 보험 가입자에 대해서 질병정보 확인을 요청하여 가입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험금 지급 시점에서 모든 대상자들의 자료를 요청하여 과거 병력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건강보험의 질병정보 공유는 단지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선별이나, 보험금 지급 최소화를 위한 수단에 활용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민간의료보험회사들이 건강보험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건강보험이 보유하고 있는 질병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 소득수준별로 언제, 어떤 질병으로, 어떠한 의료기관에서 어떠한 치료를 얼마에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게 되면 수익 산출이 가능한 다양한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되고, 의료보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굳이 개인별 정보가 아니어도 인구학적·사회경제학적 특성별로 의료이용 정보만 확보하게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정보가 민간보험회사에게 넘어가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민간의료보험상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고, 건강보험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4. 의료민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혹은 완화, 영리법인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이 3가지 조합이 함께 추진되면 의료민영화는 완성된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 반발을 이유로 이 3가지 조합 중 당연지정제 폐지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의료민영화’ 사실 관계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촛불의 힘과 제주도 영리병원 시도의 좌절로 인해서 다소 주춤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MSO 허용에서 보듯이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고, 이후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 등과 같이 의료민영화 논란을 촉발시킬 악재들이 줄을 있고 있는 상황이다. 고로 의료민영화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실체가 분명한 사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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