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월/칼럼] 여성노동자와 한가위, 그리고 노동해방

일터기사

노동해방이

여성노동자와 한가위,
그리고 노동해방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여성실장 정영자

얼마 전 흔히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한가위를 보냈다.
기실 한가위는 오곡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가난한 민중들이 배곯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이기에 더욱 환호하는 명절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가 되면 더더욱 잔치문화가 왕성해지고 먹거리와 함께 즐길거리도 풍성하여 민족 잔치의 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온갖 산해진미가 다 차려지고 온갖 즐거움이 가득한 이 축제의 그늘에는 이러한 음식과 놀이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부서지는 몸뚱아리로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즐거운 고성에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특히 이러한 즐거운 때에 어디 아프다는 엄살 아닌 엄살은 ‘분위기 망치는 괴 소리’ 정도로 치부되며 감히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는 엄격한 불문율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위가 진정으로 온 국민이 함께하는 즐거운 명절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뒷 그늘에서 핍박받는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문화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명절 지출로 인해 몇 달이 힘든 살림살이의 경제적 부담..

명절이 되면 그동안 살아가면서 전화 한통도 제대로 안하던 부모님께 반드시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한다. 그 부모님은 또한 반드시 시댁 부모님이 되어야 하고. 친정은 언제나 뒷전이어서 시댁의 일과가 다 끝나고 난 후가 될 뿐이다. 만약 시댁과 친정이 우리나라 땅 끝을 가야 하는 조건이라면 이미 단 한번도 명절에 친정을 다녀오는 행운은 포기해야 한다.
명절을 며칠 앞둔 남편은 이미 기분이 한창 들뜨기 시작한다. 시댁에 갈 물건 꼼꼼히 챙기고, 부모님께 드릴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용돈도 푸짐하게 챙겨야 한다. 특히 우리보다 상황이 조금 나은 형제라도 있으면 그 형제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생각과 일년에 한 번뿐인 효도를 위해 충분(?)한 용돈은 필수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남편은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이날만큼은 가장 기가 왕성한 때가 된다.

그러나 맞벌이를 해도 모자라는 아이들 교육비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그리고 남편의 나이에 따른 더욱 씀씀이가 커지는 사회활동비(용돈) 등 언제나 쪼들리는 살림살이에서 ‘일 년에 한 번뿐인 한가위 지출’은 몇 달의 살림살이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정권과 자본이 비록 명절에 몇 푼의 돈을 푼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뼈빠지게 벌어논 바로 내 돈을 시기에 맞추어 받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에 용돈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편의 호들갑은 비록 말은 못하지만 우리 주부들의 시름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

웃으며 건네는 인사말에도 스트레스는 왕창 증가

시부모님의 인사말에서부터 시작되는 스트레스에서 명절 고통은 시작된다. 시댁 문턱을 들어서면서 먼저 반갑게(?) 하시는 말씀, “얘야, 아비 얼굴이 왜 이리 여웠냐? 아이들이 클려고 그러나, 와저리 까칠하노!” 이 한 말씀에 거실에 있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자연스럽게 흘겨보게 된다, 퇴근 후 틈틈이 아이들과 남편 추석빔 사랴, 추석 전 빨래하랴, 대청소하랴 몸이 천근만근인 관계로 시댁 오는 동안 차간에서 잠시 머리대고 잠든 내 얼굴이 그새 부은 것이 시어머님 눈엔 살찐 것으로 보이는 것이 더욱 죄스러워 마음이 그야말로 콩만해 진다.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자 잠시 쉬는 틈도 없이 얼른 옷 갈아입고 앞치마 두르고 부엌으로 나선다. 부엌은 시어머니가 하던 음식들이 널려 있고, 대충 정리하고 있자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소리, “얘야, 술상 봐 오너라”
이때부터 명절 음식 준비 돌입이다.

명절 음식 준비로 망가지는 몸과 마음

이렇게 시작되는 명절 음식준비는 거의 날을 새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은 한켠에 음식 차려놓고 이미 방안 가득 화투장이 날아다니기 마련. 방안 가득 그리웠던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천정을 날아다녀도 거기에 동참할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례상 음식과 술안주 준비에 허리가 휘고 어깨가 부서져 나가도 아프다는 소리는 가족 화목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해서는 절대 안된다. 특히 엊그제까지 심야노동에 시달리다 잠 한숨 못 자고 달려와도 힘들고 아프다는 소리는 사치라고 판단한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다. 작은 살림도 아니니(8남매 대가족) 그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허리도 어깨도 내 것이 아니다. 명절이라고 인사하러 오는 사람이 많을라치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초죽음이 된다. 조금이라도 일찍 시댁을 출발하여 쉬고자 하는 마음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한가위증후군으로 몸은 만신창이, 불화는 끝간데 모르고

겨우 시댁일이 마쳐지면 부랴부랴 친정으로 간다. 그러나 많지 않은 친정형제들은 이미 제 갈 길을 가고 없다. 친정에서 잠시 쉬고 가려 해도 이미 출근일은 다가와 쉴 틈은 없다. 친정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귀가 길에 오르지만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상한 마음은 만만한(?) 남편에 차안에서부터 하소연해야 한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말이라도 “하루 월차 내더라도 장인, 장모님께 하루 쉬다가지”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집으로 와서도 다녀온 후처리는 심각하게 남는다. 출근 준비에, 청소 해야지, 애들 챙겨야지. 즐거운 명절이라기 보다는 사람 죽이는 명절 탓에 섭섭한 남편에게 불똥이 튀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명절 술에 운전에 자신도 거의 초죽음이란다. 이렇게 밤새 남편과 티격태격 하다보면 다음날 아침이면 바로 출근이다.

기실 민족의 명절 뒤에 숨은 여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특히 직장 여성들에겐… ‘일년에 한 번뿐인 민족 최대의 명절’ 그 자체가 엄청난 노동으로 이어지고, 스트레스와 과로는 이미 도를 넘어서기 일쑤다.
자본과의 한판승부에 의해 결정되는 조건이라지만, 가정에서의 노동해방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2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