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월/이러쿵저러쿵] 서른즈음에

일터기사

서른즈음에

한노보연 후원회원 양민재

요즘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소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주로는 산재 노협 후원회원, 드물게는 한노보연 후원회원이라는 지칭을 사용하지만, 어딘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년이면 서른 살의 전공의 4년차가 된다. 나 자신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모두, 내 일상의 단면들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편한 ‘나는 내과 의사 양민재 이다. 10여년의 세월이 낳은 수동적인 결과물인 셈이지만, 이는 내 인생의 유일한 긍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치관에 부합되는 정치적 행위들이 임상 의사로서의 삶의 틀과 잘 융화되어서, 하루 24시간을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 소박한 소망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서른은 목전에 둔 요즘, 그것이 참 철없고, 알맹이 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함께하는 사람들과 깊이 있게 친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의 인생에 좀 더 자신감을 갖는 다면,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삼성 백혈병 토론회를 통해 지역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던 모임인데, 동년배의 좋은 술친구들을 몇 명 사귀게 되었다. 이 사회의 작은 편견 탓인지, 아직은 나를 ‘의사 친구’라고 부르지만, 오히려 그 관계가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한노보연에는 10년을 함께 해 온, 모 선배와, 모 노동자도 있지만, 10년째 보아 오면서도 어색함을 감출 수 없는 모 소장과 모 노무사를 비롯하여 아직 통성명도 하지 못한 동지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한참 선배들인 데다, 일상의 활동을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지로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자주 뵌 중년의 모 동지에게서 왠지 모를 정을 느끼고, 멀리서 있었던 한 결혼식에 함께 온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좀더 유대감 있는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노보연의 외연이 경기 남부로 넓어지고, 실천 활동들을 함께하게 되면 어느덧 그 분위기에 녹아있을 나를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에게 작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생의 왕성함을 맛보기 전에 생의 허무함을 맛보아 버린 목련 같은’ 이라는 시 구절 처럼, 조금은 피동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기에 앞서 20대 초반에 썼던 일기를 들춰 보니 고민은 고민을 낳고, 정작 나 자신은 20대 초반의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추상적이거나 거창한 가치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작지만 실천하는 진보적 인간이 되고 싶다. 99년도 대학에 처음 왔을 때 노동현장 활동과 고 이상관 투쟁을 통해 만났던 동료, 선배들이 아직도 나를 추동하고 있고,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내 30대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다가 올 30대, 그리고 전문의라는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여 여러 동지들과 보다 더 진일보한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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