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1월/이러쿵저러쿵] 행복한 운동을 위하여

일터기사

행복한 운동을 위하여

한노보연 회원, 반올림 이종란

마음을 담은 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쓰는것은 그나마도 소심한 내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노보연 신입회원으로써,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터에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하며^^ 주저리 주저리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대학교 일학년 초, 입학한지 얼마 안 되어 나이든 한 선배와의 논쟁 끝에 선배가 권해 준 책을 읽었다. 백산서당 출판사에서 나온 ‘철학의 기초이론’! 문고판의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머리를 마치 망치로 한 대 맞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세계의 반쪽을 본것 같았죠… 그 뒤로는 소설책보다 사회과학 서적이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고, 학과에서 배우는 수업보다 집회와 농활 같은 활동들이 더 큰 자산처럼 여겨졌습니다. 물론 소심한 성격 탓에 ‘짱’을 맡는 일 없이 조용하게 뒤를 따르는 역할을 충실히 했죠…. 그리고 늘 직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직업을 갖는다면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대학 졸업후 우연찮게 공인노무사란 직업을 알게 되었고, 어렵게 자격증을 땄습니다. 대학교 때 약간의 경험 덕에 큰 거리낌없이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나름 어설프게 노동상담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때 만났던 노동자들 한명 한명이 지금까지 다 기억날 정도로 매우 소중하고 보람있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그 뒤 줄곧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마음이 매우 초조해지고 무거워집니다. 특히 법적인 해답이 없는 비정규직 상담이 많아지고, 폐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정리해고 때문에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과 직면하여야 하는 중압감, 노조간부 혹은 활동가들의 구속, 수배, 벌금 등의 고통을 늘상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봐야 하는 무거움, 민주노총 상근 활동가로서 크고 작은 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제대로 연대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사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궁색한 자기 변명속에서 마음이 초조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이죠…

그런속에서 나는 또, 이제는 나의 최대의 숙제가 되어버린 일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이제는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로 새롭게 태어난…. 그 활동이 벌써 1년이 되었네요..

법률원 구성원으로서 노동상담과 사건 송무 등 자기본연의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을 뒤로 하고, 반올림 활동이 내 일상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 뿐만이 아니라 반올림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유가족 대책위 분들 모두 그럴 것입니다.

그만큼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적 문제제기와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고, 우리의 의제는 반도체 뿐만 아니라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건강권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도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실행에 옮기려면 넘을 산이 많지만… )

그러나 무엇보다 반올림 활동을 하는 우리들 스스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속에 1년을 함께 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존경스러운 고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어르신과 고 황민웅씨의 아내이자 삼성반도체 현장노동자로 일했던 정애정씨의 헌신적인 활동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큰 힘이 되고 있죠….

그러나 역학조사의 결과를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지금, 마음이 다시 무겁고 초조해집니다.다른 일들이 잘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은 무거운데 당장의 앞길을 헤쳐 나갈 묘안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조금은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매일같이 반올림 동지들의 얼굴을 보며 고민을 나누고 함께 실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각자의 시간적 조건과 현실은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네요…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오늘도 열심히 전화를 돌려봅니다.^^

‘행복한 운동을 위하여’ 란 글이 있습니다.
평생 노동운동에 매진한 姑 조문익 동지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이 글을, 제 책상 밑 유리에 깔아두고 힘들고 답답해 질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운동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운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목표를 갖는다.
이것은 매우 공익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고 위대한 일인가?

운동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운동은 운동의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일깨우고
함께 좋은 세상을 열어나가는 사람들이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는 역사속의 동료들을 민중이라 부르며
민중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인류가 하나 되는 민주공동체의 가능성을
시시각각 확인한다.

현실적 고민은 늘 무겁고, 돌파구를 찾는 것이 마냥 어렵고 힘들지만,
함께 고민을 나누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 마음만은 훈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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