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9ㅣ12,1월ㅣ새세상열기-주거 ] 개발의 현실 1편 ‘집은 인권이다’

일터기사

‘집은 인권이다’

한국에서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수의 부자는 많은 집을 소유하지만 다수의 서민들은 집 한 칸 얻기 힘든 나라,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집이 없이 거리로 시설로 가야하는 나라, 가난한 재개발지역 사람들은 정작 재개발된 곳에서는 살 수 없는 나라, 계급의 공간적 분리가 철저하게 되어 있는 나라, 집을 사기 위해 평생을 돈 모아야 하는 나라, 이것이 지금 이 나라의 주거와 관련된 처지이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내가 살(live) 집을 사는(buy) 것이 아니라, 팔(sell) 집을 사고 있다. 집을 사고파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었고 집에 담긴 삶의 의미들은 ‘부동산’에 묻혀버렸다.

앞으로 3회에 걸쳐 한국사회 개발의 현실과 문제, 주거 빈곤의 현실, 그리고 주거권 확보운동에 대해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연재한다.

개발을 꿈꾸는 당신! 꿈 깨시라!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이원호

1. 공사판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해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한다.”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빨리빨리 몰아치자는 한나라당 박희태 당대표의 말에,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 했다고 한다. ‘전국토의 공사장화를 통한 난국 돌파’는 이명박 정부가 현 경제위기 극복의 방안을 건설·부동산 경기부양이라는 개발정책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출범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6번의 부동산정책을 발표하였으며, 이는 모두 미국발 경제위기가 진동하기 시작한 8월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발표된 부동산 정책은 미분양 해소정책에서부터 감세정책까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공급확대를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기치로, ‘도심공급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기존 도심의 용적율 완화, 개발요건 완화 등 각종 개발규제완화로 도심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도심공급 확대의 대표적인 정책이 뉴타운 개발과 같은 도심 광역개발 방식이다.

2. 13,400,000 : 27,000,000

1,340만과 2,700만 이라는 숫자에는 한국사회 개발의 현 주소가 담겨있다. 1,340만은 바로 1973년 이래 30여년간 개발된 서울지역의 면적 1,340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2,700만㎡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 뉴타운·재개발사업으로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예정된 서울지역의 면적이다.
7·80년대 개발독재정권을 포함해서 30여년간 이루어진 서울 도심의 개발 면적의 딱 2배에 이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개발이 지금 우리들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전국 곳곳에 해머소리와 함께, 전광석화와 같이 질풍노도처럼 몰아’치고 있다.

3. 개발, 현실을 저버리는 욕망

“처음에 뉴타운 바람 불 때는 빨리 됐으면 빨리 됐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돼 보니까… 너무 잠을 못 자는 거에요 지금… 이 마음을 누가 알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남이 와서 봤을 때는 집 같지도 않겠죠. 그러나 저는… 그나마 이 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행복이에요. 여기서 사는 게 이렇게 좋은데…” (왕십리뉴타운 세입자, 40대, 여)

뉴타운·재개발사업을 가지고 벌어지는 정치적, 지역적 상황들에 대해 ‘욕망의 정치’, ‘뉴타운 중독증’, ‘대박환상’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되곤 하였다. 아마 지금 당신의 집, 당신의 지역도 개발로 인한 기대심리에 부풀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당신이 지금 세입자임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개발에 들떠있을 지도 모르겠다.

‘욕망’, ‘중독’, ‘환상’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뉴타운을 포함한 재개발 사업은 이상과 현실에서의 괴리, 즉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알면서도, 혹은 망각되어 환상에 붙들려 진행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표의 결집을 위해, 지역 주민들은 집값 상승과 지역발전이라는 헛된 욕망에 붙들려, 표면화되고 있는 개발의 문제들을 덮고 계속해서 욕망을 스스로 부추기고 재생산하고 있다.

4. 집 없는 자, 서울을 떠나라! 집 있어도 돈 없는 자 서울을 떠나라!

“보통 제가 일할 수 있는 범위가 왕십리거든요. 여기 떠나서는 제 생활권이 굉장히 위협을 받아요. 저는 여기가 고향이고.. 어쩔 수 없이 (전세금 때문에) 경기도 양주로 이사했어요. (이사)간 사람한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이사)간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왕십리뉴타운 세입자, 50대, 남)
“추진위는 개발하면 좋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지만, 정작 분양 때 주민들은 2억~3억원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개발해도 주민이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안 돼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장위동 가옥주 인터뷰, 한겨레 12.16, ‘뉴타운 대박 허상이 깨지고 있다)

뉴타운·재개발에 있어서 표면화되고 있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쟁점은 바로 ‘원주민 재정착률’ 문제이다. 개발 이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20%내외라는 일련의 결과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라는 개발의 근본적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집 없는 세입자들은 당연히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하는 것이고, 집 있는 가옥주도 높은 추가 분담금을 감당할 돈이 없으면 살던 동네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살던 곳을 떠나긴 떠나야 하는데, 서울 전 지역이 공사판이라, 한마디로 갈 곳이 없다. 때문에 가난한 세입자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 도시외곽이나 지하셋방, 심지어 무허가 건축물이나 비닐하우스촌과 같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떠밀리고, 영세 가옥주들은 세입자로 전락하고 만다.
개발사업의 본래취지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개선하여, 삶의 질의 근본인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자는 것인데, 이미 이러한 취지는 상실되고 투기의 장으로 변질되어, 개발사업자의 개발이익 실현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채 중․대형 분양아파트 중심의 개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는 환상에 붙들린 개발 사업이 장소만 번영할 뿐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분리수거로 진행되는 개발

지난 9월 정부는 도심주택공급 정책을 통해, 뉴타운 추가지정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명박은 “서민을 중심으로 하는 무주택자를 임기 중에 없애겠다”며 그린벨트해제와 서민주거정책이라는 이름의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명박의 말들이 무섭게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난 정말 그렇게 할까봐 무섭다. ‘무주택자를 임기 중에 없애겠다’ 는 그의 말이 무주택자, 즉 도시의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버리겠다(다 쓸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기존에 진행되는 개발방식을 보면, 이번 대책도 ‘도심을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없게 하겠다’ 는 것으로, 철저한 분리수거정책으로 진행될 것이다.
뉴타운중심의 강북개발지역 만큼 저소득층부터 부유한 층까지, 소형주택에서부터 대형주택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결합이 잘 이루어진 곳이 없는데, 개발로 인해 소형주택의 멸실과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주거지로 변모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던 마을 공동체가 일순간에, 강부자들의 투기장이자 준 부자동네로 변모하는 것을 볼 때, 이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급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뉴타운을 25개 추가지정하고 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역세권 고밀도 광역개발을 추진하여, 결국 강남은 고밀도 개발을 통해 강부자들의 이득을 보장해주고, 강북을 준강남으로 개발하여, 도심을 중상층 이상이 사는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심의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 도시빈민들의 일부는 도심외곽의 보금자리주택으로, 나머지는 ‘알아서 사라지시라…’는 완벽한 공간의 계급분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운 예측을 지울 수 없다.

6. 개발을 원하는 당신 꿈 깨시라! 제발 꿈 깨시라!

앞서 지적했듯, 이명박 개발주의 정권은 경제위기상황을 해머소리와 불도저 굉음으로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주의방식의 단기경기부양으로 반짝 경기 상승을 가져와 국민들의 체감을 좋게 하는 ‘몰핀 효과’를 가져올 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욱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거기에다 ‘세제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각종 개발이득 환수장치들의 무용화 시도들이 정주개념의 주거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주택이라는 시장논리를 극단으로 밀고 갈 것이분명하다. 결국 다가올 개발 광풍은, 인간을 위한 개발, 모두를 위한 주거권이 아닌, ‘그들’을 위한 개발, ‘그들’만을 위한 재산증식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개발이라는 욕망, 중독, 환상에 붙들려, 모두가 자신들이 ‘그들’에 속해 살아남을 거라는 이유 없는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개발을 원하는 당신 꿈 깨시라! 제발 꿈 깨시라!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 깨어났을 때 분리수거 되어 있는 당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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