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02월ㅣ일터다시보기 ]‘의료민영화 실체와 대응방향’을 읽고

일터기사

‘의료민영화 실체와 대응방향’을 읽고

-‘건강보험체계의 보존’만으로는 의료민영화에 대응할 수 없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 의사 송홍석

이 글은 지난해 3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새세상열기 ‘의료민영화 실체와 대응방향’을 읽고 난 후 들었던 나의 짧은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작년 가을, 40대 후반 중년의 아저씨가 피로감과 무기력감. 체중감소를 호소하며 병원에 오셨다. 딱 보기에 그의 눈은 노랬다. 황달이다. 간기능 검사와 복부초음파를 했다. 예상대로 간수치가 많이 올라가 있었고 황달도 심했다. 그런데 간 초음파에서 간의 안팎에 있는 담도(쓸개물이 내려오는 길)가 모두 늘어나 있었다. 쓸개물 내려오는 길 어딘가가 막혀 있을 것이었다. 빨리 CT를 찍어봐야 한다. 간암이나 담도암일 수 있기 때문이다. CT 비용은 보험적용이 돼서 12만원 정도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냥 약이나 달라고 하신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처지에 그것도 힘들다고 하시며 그냥 약이나 달라고 하신다. 그는 00시청에서 청소일을 하는 일당직 노동자이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꽤 건강해 보이는 60대 할머니가 간장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 오셨다. 그녀는 간암을 앓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간동맥색전술이라는 간암치료를 두 번 정도 받았는데, 한번 시술받을 때마다 100만 원 이상 드는 돈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약만 타러 오신 것이다. 나는 그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다 포기했다며 약만 달라 하신다. 그 뒤로 나는 그녀를 다시 뵙지 못했다. 자식도, 주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돈이 없어 병이 커지거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환자들을 나는 심심치 않게 본다.
이런 의료의 현실에 정부는 의료서비스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망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한다. 즉, 이윤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고, 병원을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병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시장에서 자본(주식)의 투입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자본증식을 실현해줄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고, 또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해 건강보험당연지정제를 폐기하려는 것이 ‘의료민영화’의 실체라고 필자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영리병원은 투자 자본에 대한
수익금 배당의무가 있어 이윤추구 행동이 보다 뚜렷해질 것이고, 이는 전체적인 의료비 폭등으로 이어져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지금도 현대, 삼성과 같은 국내최대재벌이 병원산업에 진출하면서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병원을 대형화, 고급화하면서 의료서비스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데, 영리병원의 도입과 함께 재벌이 주도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연계되면 이러한 독과점은 더욱 심화되고, 엄청난 이윤창출과 함께 의료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설사 ‘무상의료실현’이라는 의료의 불평등성을 해소할 정책이 실현된다 하여도, 국민 전체가 부담해야 할 의료비는 폭등할 것이고, 결국 그 재원인 세금은 일부 소수 병원자본에게로 돌아가면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민영화’에 맞서는 진보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현재 재벌병원이 독과점하고 있는 병원산업의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합리적 경쟁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급성병상 신증설을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게 되어 국민의료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재벌병원이 주도하고 있는 무분별한 ‘병원의 몸집 키우기’가 불공정한 경쟁이고 국민의료비를 폭등시킬 개연성이 크므로 이러한 구조를 바꿀 정책수단을 제시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면서 필자는 보다 중요한 과제는 재벌병원들과 합리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재벌 병원들 이외의 지역별, 규모별 병원들에 재정적 지원을 하여 의료인프라를 재벌병원들처럼 상향평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인프라의 상향평준화(질적 개선)를 위한 재정적 지원의 목적은 개별병원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틀 안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지원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정부예산을 통해 조성되고, 공적으로 관리됨을 일관되게 원칙으로 지켜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정부예산이 부족하다면 일정한 수익률을 정부가 보장한 조건에서 국민연금이나 민간자본유치를 통해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성된 기금의 지원대상은 공공병원의 비율이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에만 한정돼서는 전국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비영리 민간병원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윤추구성향이 분명히 존재하는 민간병원이지만 건강보험의 틀 내에서 진료하는 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전체의료기관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병의원들과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피하면서 민간의 공익적 역할을 보다 공고히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금의 지원은 병원시설 신증축, 시설구조변경이나 개보수, 그리고 일정액 이상의 고가장비 뿐만 아니라, 병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간호사나 의사의 인력확충에도 지원하여 국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적 개선도 이루어지고, 재벌병원들과의 합리적 경쟁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 글에서 거대재벌이 벌이는 불공정 경쟁구조가 당장엔 의료서비스를 고급화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의료비를 폭등시켜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는 암적 구조로 발전할 것이므로 합리적 경쟁구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들의 상향평준화에 국가가 재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진보적 대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건강보험체계를 지속시켜나갈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민들이 어느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든지 질적으로 보다 향상된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진보적 대안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과연 이것이 노동자민중이 지향해야 할 진보적 대안인지 나는 필자의 의견에 동의를 못하겠다. 필자가 제시한 의료민영화에 대응하는 대안은 다른 세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건강보험체계의 보존’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공공의료, 평등의료를 확장하려고 하는 그 어떤 시도나 대안제시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의료의 공공성, 평등성’ 지향조차도 포기한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건강보험의 틀 내에서 현대아산이나 삼성의료원 같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조건도 없이 개인병원에 국고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보의 가치인가?
‘교육’이나 ‘주거’의 문제처럼 의료의 문제 역시 평등성, 공공성을 지향한다면, 이윤추구욕이 명확한 사적 의료가 90%인 현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하고, 재벌병원 등장 이후 자본축적, 자본증식을 위한 투자처로 의료서비스가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낼 대응방향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윤추구성향이 강한 또 다른 병원에 국민의 혈세를 공짜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재벌병원, 대형병원들이 어떻게 건강 불평등에 기여하고 있는지, 가난한 이들의 접근성을 어떻게 떨어뜨리고 있는지,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상업화하고, 불필요하고 값비싼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이들 병원에 의료의 공공성, 평등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대안들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병원들은 이미 ‘모든 고객이 왕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병상총량제’는 ‘대형병원들 간에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나눠먹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공공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급히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또한 그 양과 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의료의 확장을 얘기하지 않고, 사적 의료의 공익적 성격(전국민건강보험체계내에서 비영리의료기관으로 존속)의 유지에만 안주하는 정책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이 과연 노동자민중이 지향해야 할 진보적 대안이란 말인가? 사적 의료기관의 이윤추구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단지 건강보험제도 틀 안에 있다고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표현 아닌가? 공공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사적 의료기관에 기금지원을 하는 것은 사적의료를 강화시키고, 사적 의료가 지배적인 현실을 고착화시키는 꼴은 아닌가?

나는 공공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말 시급히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의료 기관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영리 공공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민간의료기관도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베네수엘라의 경우처럼 그것을 ‘사회적 기업’이라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공적 재원이 공공기관 소유의 의료기관을 신증설하거나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하는 민간의료기관의 설립에 지원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건강보험환자를 진료한다고 이유 하나만으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시설을 지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재정적 지원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근거들, 즉 ‘사회적 민간의료기관’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조건들은 현재와는 다른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수준’에서 결정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유와 분배, 그리고 경영의 문제이다. 즉, 사회적 소유와 수익의 사회적 분배, 그리고 민주적 경영의 원칙들이 확인되어져야 ‘사회적 민간의료기관’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적 재정의 지원을 받은 의료기관에 대해 주기적인 평가가 필요하고, 그 평가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보다 공세적으로 이야기하자. ‘의료민영화’의 반대로만 그치지 말자. 모든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진정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공공의료시스템의 확립을 목표로 그 대안을 만들자. 그리고 현재의 공공의료서비스가 양적 ․ 질적으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켜낼지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보건의료의 상은 앞선 2가지 사례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병든 환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보건의료시스템이라야 한다. 그/그녀가 반드시 제공받아야 하는 의료서비스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적 부담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사회전체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일터]

6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