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05월ㅣ연구소리포트] 법원 속기사의 노동 환경 및 건강 실태

일터기사



법원 속기사의 노동 환경 및 건강 실태

노동건강연대 이서치경


I. 들어가며

2009년 1월 노동건강연대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우리는 법원 속기사이다. 건강문제와 자료에 대해 요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직업을 만나게 되며 그늘에 가려져있는 직종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있다. 그러나 법원 속기사라는 노동자를 만나는 순간, 작업장 울타리 안에 숨겨진 여성들의 존재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법원 속기사들이 여성으로 구성된 것에 주목하였다. 또한 이들이 용역직→비정규직→정규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용역직은 2000년에 폐지됨). 그렇다면 이들은 노동과 건강의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을 것이다. 법원과 공무원이라는 화려한 포장 뒤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실태조사를 계획하면서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속기분과)와 노동건강연대 외에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도 조사 작업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한림대 언어청각학부 김진숙 교수 연구팀은 소음측정에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조사 작업은 4가지의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1) 설문조사 : 전국의 속기사(612명)대상
2) 심층인터뷰 : 총 6회(10명)
3) 작업환경측정(인간공학측면)
4) 소음측정 : 시뮬레이션을 통한 이어폰 소음측정


2. 조사개요

설문조사는 2009년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시행되었다. 전국 법원에 근무하고 있는 속기사에게 이메일로 설문지를 발송하고, 각자 출력하여 설문에 응답한 후 우편으로 회수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속기사 612명 전원에게 설문지를 발송하였으며, 429명으로부터 설문지가 수거되어 70.1%의 응답률을 보였다.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인간공학적 평가를 실시하였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가정법원, 고등법원, 서울북부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청주지방법원을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인간공학적 평가는 법원종류별(형사, 민사, 가정, 행정)과 유형별(단독, 합의), 법정의 형태별(구형법정, 신형법정,리모델링법정, 전자법정)로 진행되었다. 법원의 사무 공간 27개, 법정 21개 등 총 48개 공간에 대해 책상과 의자, 환경(소음, 조도), 발 받침여부에 대한 측정이 이루어졌다.

속기사들의 청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 노출음의 크기를 파악하기 위해 한림대 언어청각학부 김진숙 교수팀에 의해 녹취 화일의 소음 측정도 병행되었다. 속기사가 실제 사용하고 있던 이어폰과 녹취 화일, 동일한 조건의 프로그램 볼륨을 이용하여 속기사의 작업환경을 재현, 이어폰에서 귀로 전달되는 소음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한편, 속기사들의 노동환경 및 관련된 건강문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심층 면접을 실시하였다. 지역별로 선정된 대상 10명에 대해 6회에 걸쳐 개별 혹은 집단으로 면접하였다. 면접 내용은 녹취한 후 녹취록을 작성하여 분석하였다.


3. 설문 조사 결과-주요문항 중심으로

❍ 설문 응답자의 신상명세
설문응답자중 유효 응답자 429명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인원은 표1과 같다.
법원 속기사의 설문자 응답자는 총 429명으로 남성이 1명(0.2%), 여성이 407명(94.9%)로 나타났다. 속기 업무의 특성상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 법원 속기사의 노동일반

❍ 노동 강도가 높다.
법원 속기사가 경험하는 노동 강도의 분포를 보면, 보통인 5점에서 힘든 7.5점까지 41.9%, 매우 힘든 정도인 7.5점 이상인 사람이 40.2%나 되어, 속기사들이 느끼는 업무의 강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조사를 실시한 시점이 법원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48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는 사람이 20% 가까이 되었다. 직무요구도가 높고, 최근 3년간 업무량, 업무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현재 법원 속기 업무는 1인 1조 체계로 시행되고 있다. 국회 등의 속기업무가 2인 1조 체계로 운영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체계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재판 동안 휴식시간 없이 고도로 집중하고 일함으로써 시간당 업무밀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노동 강도를 높이게 된다. 이런 높은 노동 강도는 곧바로 법원 속기사의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 근골격계 장애의 위험성이 높은 업무이다.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학교에서 근골격계 장애의 위험 정도를 분석한 결과, 근골격계 장애의 위험이 ‘높음’으로 평가된 경우가 전체 48개 평가대상 중 45개(93.8%)로 나타났으며, 근골격계 부위의 부담이 비교적 높지는 않으나, 불편한 자세를 강제하는 해당 작업 환경에 대한 개선 없이 장기간 노출될 경우 근골격계 질환의 유발 가능성이 있는 ‘보통’으로 평가된 경우가 전체 평가 대상 중 2개(4.1%)로 나타났다. 특히, 근골격계질환의 부담이 낮은 것으로 파악되는 ‘낮음’의 경우는 해당하는 인원이 1개(2.1%) 작업인 것으로 나타나 속기사의 작업환경이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위험 정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강도 또한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법원 속기사처럼 1인 1조 체계로 일정한 시간 안에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일을 휴식없이 하게 되면, 시간당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동일한 시간에 근골격계에 더 많은 부담을 주게 되므로 근골격계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또 근골격계의 긴장을 적절하게 풀어줄 수 있는 휴식시간이 보장이 되지 않는 것도 근골격계 질환 유발을 가중시키는 셈이다.

❍ 계약직이 더욱 불리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
법원 속기사 전체 612명 중 36.3% 가량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 계약직 속기사는 정규직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자주 야근을 하고, 초과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적고, 건강 관련 제도에 대한 적용률이 낮고, 직무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있었다. 특히 계약직이라는 고용 형태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듯, 직무불안정과 부적절한 보상 영역에서 직무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긴 노동 시간, 낮은 임금, 부적절한 건강 관련 제도, 높은 직무스트레스 등은 건강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 직무스트레스 요인이 높은 직종이다.

법원 속기사는 직무스트레가 상당히 높은 상위 25%군에 속했다. 직무스트레스 하부 영역 중 관계갈등,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직장문화 영역의 직무스트레스가 매우 높았다. 정규직과 계약직, 두 군 모두 직무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상위 25%군에 속했으나, 계약직은 60.2점, 정규직은 57.7점으로 계약직이 정규직에 비해 스트레스 요인 점수가 유의하게 높았다. 특히 직무불안정과 부적절한 보상에 대해서는 계약직의 스트레스 요인 점수가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조사되어, 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와 그로 인한 낮은 임금 체계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체내 불균형을 일으켜 다양한 질병을 야기하며, 특히 심혈관계, 근골격계 증상 및 일부 피부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2) 속기사의 건강 실태

❍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다.
법원 속기사들의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상태는 매우 불량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건강군은 단지 두 명에 불과했고, 잠재적 스트레스군이 56.9%, 고위험군이 42.6%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위에서 기술했듯이 직무스트레스 요인의 수준이 높은 것과 유의한 관련이 있었다.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대한 즉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며, 잠재적 스트레스군을 비롯한 법원 속기사 전원의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요망된다.

❍ 신체부위별 통증호소율
각 신체부위별 통증 호소율을 조사한 결과, 어깨부위가 403명(93.9%)이 통증을 호소해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다음으로 목 부위가 357명(83.2%), 손목/손가락 부위가 336명(78.3%), 허리 부위가 319명(74.4%), 팔/팔꿈치 부위가 217명(50.6%), 무릎 부위가 130명(30.3%), 마지막으로 발/발목 부위가 97명(22.6%)순으로 나타났다.

❍ 근골격계 통증호소율이 1위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한 설문조사의 분석결과, 법원 속기사회의 작업자 중 97.4%가 적어도 한 부위 이상의 신체부위에서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한 자각증상과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NIOSH의 기준에 따라 작업내용과 증상에 대한 관리대상자(기준1)으로 분류되는 작업자가 전체의 91.6%로 나타났으며,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의 기준(기준2)에 따라 보다 체계적이고 신속한 작업환경의 개선, 추가적인 의학적 조치가 요구 되는 유소견자(기준2)의 비율은 전체 작업자의 76.0%에 해당되었다. 법원 속기 작업자들의 근골격계질환 관련 설문조사에 기반한 통증호소율, 특히 유소견자(기준2)의 비율은 국내 산업계의 평균인 40%~50%에 비하여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자세한 기준별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Data는 표를 참고하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공학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성이 높은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 노동강도가 높고 적절한 휴식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점, 근무긴장도가 높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청력 손실의 가능성이 있다.
속기사의 무려 60.5%가 자신의 청력이 손실된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손실 정도는 타인에 비해 작은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 하는 정도 또는 일상 대화가 불편한 정도도 경도 또는 중등도의 청력 손실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청각장애 설문에서도 경도 이상의 장애 의심이 34.6%가량으로 조사되었고, 현재 이명 유병률이 25.8%였다. 속기사들의 이어폰 음원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소음 수준이 그리 높지 않게 측정되었지만, 개인용 음향기기의 누적 사용기간이 13시간·년 이상인 경우 소음성 난청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감안할 때, 속기사에게서 소음성 난청의 발병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4. 건강을 위한 대책

1) 업무체계를 개선하여 노동강도를 낮추고, 휴식시간이 적절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노동강도의 문제는 질환 발생 및 악화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법원 속기사들에게 적용하여 실시되고 있는 1인 1조 체계의 속기 업무는 장시간 고밀도의 노동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건강 문제, 특히 근골격계 질환과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법원 당국은 현재와 같은 위험한 업무 체계를 국회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1인 1조 체계로 시급히 변경시켜야 할 것이다. 업무 체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고강도 노동 중간에 휴식시간이 보장될 수 있다. 이는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이다. 이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서는 정부의 운영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2) 계약직도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보장하여 직무불안정성을 해소하고 병가, 유급휴가, 육아휴직 등의 사용이 보장되어야 한다.
계약직 법원 속기사의 직무불안정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높은 직무불안정성은 직무긴장도를 높여 근골격계질환 등 각종 질환의 발생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적절한 때에 치료받지 못 하는 상황은 질병이 만성화되고 향후 치료효과를 저하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직무안정 및 병가 사용의 보장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중요 과제라 할 수 있다. 우선, 수차례에 걸쳐 재계약을 하고 있는 장기근속자부터 정규직 채용으로 전환을 시작하여야 하며, 병가 및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체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계약직 속기사들에게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3) 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질병 발생에 직접적인 한 원인을 제공하는 유해한 작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법원 속기사에게 엄청난 유병률을 보인 근골격계 질환은 인간공학적으로 부적절한 작업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청력 감소의 문제는 장기간 이어폰을 사용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어폰의 볼륨을 높여야 하는 작업 환경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제까지 법원 속기사들의 작업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개선해야 할 사항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선방안들은 조리노동자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우선순위를 정하여 단계적으로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4) 체계적인 건강관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본 연구를 통해 법원 속기사의 근골격계 질환,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청력 감소의 문제가 밝혀지고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문제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유해인자를 관리하고 그로 인한 장애를 감시하도록 정해져 있는 질환들이다. 그러나 그간 속기사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나 건강진단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법원 속기사들의 작업환경과 건강 문제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대책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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