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06월ㅣ일터다시보기] 건강하다는것은???

일터기사

건강하다는것은???

한노보연 집행위원 김정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와 한노보연 부산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노동안전보건학교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강의 주제는 “건강권”이었다. 직업이 의사인지라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이나 뇌심혈관계질환과 같은 질병에 관한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강의 능력이 변변치 않아 교육 요청을 받을 때마다 늘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교육은 질병에 관한 몇 가지 의학 지식, 실태와 원인에 대한 진단, 대응의 원칙과 방향 등으로 내용을 구성하면 큰 어려움 없이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번처럼 원론적이고 포괄적인 주제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으면 부담 백배다. 뭐부터 얘길해야 하나?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마침 한노보연 수원사무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 노동건강권 쟁취 실천학교에서 비슷한 강의가 진행된 적이 있는 것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으로 교안과 교육자료를 참고하기로 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온전히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몸(육체)만이 아니라 마음(정신)도 행복해야 하고, 나 혼자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것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듯하다. 몸이 행복한 것, 육체가 건강한 것은 대충 감이 온다. 그런데 마음이 행복하다는 것,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문득 하이텍 노동자들이 생각난다.

2005년 8월 하이텍 노동자들의 근로복지공단 앞 농성투쟁이 한창이던 당시, 앞서 내가 참고했던 교안과 교육자료를 만들었던 콩아줌마가 “일터”에 썼던 글이 있어서 다시 읽어보았다.(일터 2005년8월호 노동자건강상식 “적응장애, 그까이꺼 투쟁이 곧 투병이다!” 참고)

마음에 생기는 병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이텍 노동자들은 “우울증을 수반한 적응장애”라는 병 때문에 힘들어했다. 이 병은 “신경증”이라는 큰 틀에 속하는데, 신경증은 “마음 속의 갈등이나 바깥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 주원인”이다. 그렇다면 “마음 속의 갈등이나 바깥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마음이 행복한 상태, 정신이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나? 근데 그런 상태가 가능하긴 한 걸까?

문득 의과대학에서 암에 관한 수업을 할 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 몸에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암세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 발암물질에 전혀 노출되지 않아도 우리 몸에서는 실수(?)로 암세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발암물질에 노출되면 이런 암세포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거나 더 빨리 자라서 암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만들어진 암세포들이 전부 암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 몸에는 실수건 발암물질에 노출이 돼서 건 만들어진 암세포를 죽이는 세포들을 있다. 일종의 면역기능인 셈이다. 쉽게 생각하면 한쪽에서는 계속 암세포를 만들어내는데 한쪽에서는 만들어진 암세포를 계속 죽이면 암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건강한 상태인 것이다. 이 얘기를 마음에 적용시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마음 속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다. 이 마음 속의 갈등은 정신 말짱한 사람이 아무런 외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갈등이 사람이 태어나서 1살까지, 길게 잡아 5살까지 그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마음 혹은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95%가량이 이 시기에 만들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가고,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거~~) 이런 갈등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엄마(혹은 양육자)와의 정서적 교감이란다. 이런 교감이 부족하면 좀 더 심각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시기에 생겨난 갈등은 대부분 1살 혹은 5살짜리 꼬마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무의식”속으로 숨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마음속에 어떤 갈등이 있는지, 아니 그런 갈등이 있는 건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신체 건강한 사람들의 몸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암세포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평소에는 무의식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던 이런 갈등들이 바깥에서 몰려드는 스트레스를 만나면 훨씬 커져서 불안이라고 하는 증상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갈등들이 전부 불안한 증상을 유발시키지는 않는다. 정신의 면역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방어기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앞에 소개한 일터 기사 참고~~) 쉽게 생각하면 한쪽에서는 계속 갈등이 생겨나는데 한쪽에서는 방어기제를 통해 이런 갈등을 해소시키기 때문에 불안한 증상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갈등의 생성과 해소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마음이 행복한 상태, 정신이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긴 하였으나 강의 능력이 변변치 않아 이런 생각들을 노동안전보건학교에 참가한 부산지역 노동자들과 충분히 나누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질문들이 있다. 마음 속의 갈등을 확인하거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마음 속의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방어기제 중에 으뜸이 억압이라는데 억압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정말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억압은 또 다른 갈등의 소지를 남기는 건 아닐까? 궁금하다.

글을 마치며…

비록 대법원에서조차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이텍 노동자들의 마음이 행복하지 못했던 것,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이텍 자본의 노조탄압과 감시, 차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갈등의 크기와 종류는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이텍 노동자들이라고 남들에 비해 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런 하이텍 노동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병에 걸렸다. 하이텍 자본의 노조탄압과 감시, 차별이라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스트레스가 하이텍 노동자들 무의식 속의 갈등을 수십 수백 배로 증폭시켜 마음의 병을 만들어냈음이 분명하다. 비록 산재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하이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에게 소중한 것이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에 남을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