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8월 |새세상열기_복지] 4. 산재보험 개편방향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

일터기사

산재보험 개편방향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

한노보연 집행위원 김 형 렬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산재보험은 사회보장 중에 가장 먼저 도입된 제도이다. 사실 산재보험의 긴 역사는 그 만큼의 논란을 해결하는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서 상대적으로 산재보험은 다른 사회보장에 비해 논란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도 이제 사회보장의 역사가 5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짧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의 핵심에 있는,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의 실제적인 건강을 보호하고 소득보장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산재보험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그 많은 학자들의 대안은 무엇이고, 노동 사회단체들은 뚜렷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확실한 것은 다치지 않고 일하고 싶고, 다치더라도 충분히 치료 받고, 재활 받고, 건강하게 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은 노동자들의 바람이다.
산재보험 개편의 큰 방향만 합의될 수 있다면, 그 과정을 위한 노력과 투쟁은 즐거움일 수 있다. 여전히 큰 방향의 합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 동안 한노보연에서는 산재 승인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짚어 왔고, 요양 내용의 질 향상을 위한 방안, 재활 복귀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왜 산재를 입은 노동자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 받지 못하며, 요양기간 내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야 하고, 재활 복귀 프로그램 없이 바로 이전의 업무를 똑같이 하다가 다시 재발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지…
크게는 3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요양승인의 과정, 요양의 내용과 질, 그리고 재활 복귀의 과정이다. 각각의 과정에 대해 거칠더라도 구체적인 상상과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그래야 좀 나아갈 것 같다.

요양기간이 길다고? 짧아도 좋으니 제대로 치료만 해다오.

우리나라 산재환자, 특히 근골격계 환자의 요양기간이 길다는 것은 우리 나름의 몇 가지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나라 산재환자들의 중증도가 높고, 승인의 과정이 복잡하고 길고, 제대로 된 요양이 이루어지지 않아 요양기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래도 요양기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길다. 그것도 상당히 길다. 요양기간이 길면 좋을 수 있다. 제대로 완벽하게 내 몸 추스려서 복귀하겠다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왜 틀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제대로 치료 받거나 제대로 몸을 추스릴 수 없는 현재 요양의 질과 내용에 있다. 우선 임상의사는 산재환자가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관심이 없다. 입원할 때 한번, 퇴원할 때 한번 보는 게 의사다. 물리치료는 왜 받는지, 약은 왜 먹는지 모르고 먹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은 그렇게 하면 몸이 나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낫지도 않는데 몸이 더 좋아지지도 않는데 오랜 기간 병원 신세 지는걸 좋아하는 노동자가 있을까? 제발 요양기간이 짧아도 좋으니 제대로 치료만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근골격계질환은 100% 직업병 인정!
근골격계 질환은 거의 대부분 직업성질환이다. 이를 부정할 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업무관련성이 상당한 수준(50%이상)이라고 인정되는 것만 직업병으로 인정해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량화는 과학적 근거도 표준화도 되어 있지 않은 매우 자의적인 해석이다. 그냥 근골격계 질환은 모두 직업병으로 인정하면 된다. 산재보험의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냐고? 지금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재원을 줄인다면 어렵지 않다. 물론 반드시 다음의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의 질을 확보할 것”, “요양신청 절차 없이 무조건 인정, 산재신청은 병원이 알아서 할 것”. 이러한 전제만 충족된다면 요양기간을 줄이면 된다.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요양기간을 7-10일 정도로 제한할 수 있다(북유럽, 일본, 독일 등의 요추부 염좌 평균요양기간이 7-10일 정도이다). 그 대신 재발이 되거나 복귀가 어렵다는 의사 소견이 있다면 요양기간은 언제든지 연장될 수 있다(필요 사유와 효과적인 치료계획을 제시). 다시 말하지만, 관건은 제대로 요양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그래야 산재 노동자가 동의할 수 있다.

재발되기 쉬운 질병, 재요양도 쉽게!!!
현재 요추부 염좌로 3개월 산재요양을 받는다 해도 요양기간 동안 완치되는 노동자는 없다. 작업환경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3개월의 요양 동안 의사 한번 제대로 못 만나고, 물리치료, 주사, 약물치료만 하며 오히려 체력 약화를 가져오고 통증은 계속되고, 복귀하고 나면 산재 요양 전이랑 큰 차이가 없거나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다시 요양을 하려고 하면 특별히 이전 상태보다 나빠졌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아파서 일하기 힘든데도 요양승인이 나지 않는다. 산재환자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치료를 받아 7-10일이면 호전될 수 있다면, 3개월이라는 기간을 다시 아플 때를 대비해서 몇 번에 나누어 요양을 간다면 어떨까?” 불가능할 게 별로 없다. 3개월의 요양기간을 필요한 때에 언제든지 7-10일씩 10번에 나누어 요양을 하면 된다. 따로 신청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행정비용도 추가로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요양기간 동안 제대로 운동치료, 심리치료, 재활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프면 바로 치료 받고, 산재로 할지 건강보험으로 할지는 병원에서 결정해라.
질병이 발생하고 나서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 사고성질환은 빨리 치료가 되겠지만, 직업성질환은 불인정의 두려움 때문에 질병발생 후 2-3달을 넘겨 치료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치는 것은 치료의 장기화를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아프면바로 치료 받을 수 있는 제도, 그리고 이러한 제도를 어렵게 하는 장해요인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선보상 후평가 방식이란 이름으로 노동사회단체,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에 부딪히면서 현실성의 문제를 낳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되어야 해결되는 산재보험의 문제들
앞서 말한대로 산재 인정이 불투명한 경우, 산재신청을 꺼리게 된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승인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건강보험에서 산재보험과 동일한 보장을 해준다면 인정받지 못할까봐 두려워 산재신청을 꺼리고, 이로 인해 치료기회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은 경우, 산재 승인을 둘러싼 갈등이 그리 크지 않다. 건강보험에서 휴업급여를 주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에서 휴업급여를 줄 수 있다면 노동자들은 승인되지 않을까 두려워 산재신청을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은 나라에서도 굳이 산재보험으로 신청하는 이유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예방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지, 우리나라처럼 산재인정이 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져야 되는 상황은 아니다.

건강보험에서 휴업급여 지급이 가능할까?
그 많은 상병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보험료를 더 내야 할까? 상당한 수준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 국민들이 내고 있는 수많은 민간보험 금액을 생각하면, 그 금액들을 공적 보험 영역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건강보험료 상승에 대한 저항은 높으면서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료의 몇 배에 달하는 민간 의료보험을 모두 가입하고 있는 모순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가입하고 있는 실손보험, 암보험 등을 모두 공적 보험에 포함한다면,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민간보험은 경쟁의 심화로 인해 관리비용의 상승을 가져와 실제 국민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공공보험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다.

기타 산재보험의 남겨진 과제들
여전히 산재보험에서 해결해야 할 제도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최근에 일부 가닥이 잡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문제도 개인 부담을 적용하고, 강제적용대상임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실제적인 적용확대에 장해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출퇴근 재해 인정 문제, 정신건강을 포함한 인정 범위 질병의 확대 문제, 단계적 작업복귀에 따른 부분 휴업급여 적용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최근 삼성반도체 백혈병 투쟁은 동일한 작업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드문 질환을 비슷한 시기에 발병함으로써 충분한 인과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해 제도내에서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의 사회보장이 잘되어 있는 나라라면 어떨까?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동일한 치료를 무료로 받았을 것이고, 치료를 위해 일을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산재보험에서 지급되는 것과 동일하게 건강보험에서 휴업급여를 지급했을 것이다. 적어도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고, 간병을 위해 가족이 직장을 쉬어야 하는 일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 원인을 밝혀 더 이상 피해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의 의미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나가며
사회보장이란 질병, 실업, 고령 등으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들 문제가 발생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에서는 노동자가 질병에 걸리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지 못하며, 치료를 위해 의료비의 절반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며,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보존해 주지 못한다. 웬만한 질병에 걸리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기 힘들다. 사회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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