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9월 |특집] 질판위대응 서면인터뷰

일터기사

산재보상법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한편에서는 산재보상법이 그 취지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아우성이고, 이 틈을 노려 산재보상 제도를 민영화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산재보상법의 운영의 주체가 개별자본인가 아니면 국가인가는 지금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재해 노동자에게 있어 누가 운영의 주체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산재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지할 것인가’이다.
산재보험 운영에 있어 수입-지출의 효율만을 최고의 기준으로 둔다면 누가 운영을 하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국가운영이 개별 자본의 운영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민영화해야한다는 논리는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격이 될 것이다. 적어도 현재(!) 정서상 국가가 드러내놓고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산재보험을 운영하며 재해 노동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 복귀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노동자 건강권을 놓쳐버릴 위험은 점점 커질 것이다.

산재 보상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산재보험, 불신의 시작은 우습게도 ‘산재 인정’의 문제다. 높디 높은 인정의 문턱은 그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산재로 인정되지 않으면 재해노동자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질병의 치료 뿐 아니라, 직장복귀와 유지 그리고 나머지 삶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현재 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의 중심에, 개정 도입된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가 있다. 바로 산재보험에 있어 첫 번째 관문에 사천왕과 같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이후 끝임 없는 불만은 이 제도가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이에 향후 노동계의 대응에 보탬이 되고자 [일터]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청취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개정법의 취지인 ‘전문성과 공정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이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에 질문의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애초에 계획은 좀 더 많은 이의 의견을 청취하려 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현장 활동가, 관련 전문가, 우리 단체의 집행책임자 3인 만의 의견을 싣게 되었다. 내용은 사뭇 진지하기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라 확신한다.

정리 : 선전위원회

공 통 질 문

1. 업무상 질병판정위회(이하 질판위)의 설립취지를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은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간의 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 대한 불만과 잡음을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 취지를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고 생각되시는지요?(공정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2. 건강보험 체계와 달리 산재보험은 의료행위의 적절성에 대한 심사와 더불어 사전에 산업재해 성립 여부를 심사하고 있습니다. 심사에 있어 공정성과 전문성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정성과 전문성을 재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편 산재보험 성격상 신속성 역시 중요한데 이것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요?

3. 현 산재보상보험법 틀 내에서는 사전 심사의 기능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 속에서 재해노동자와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심사내용이나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는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개입을 한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만일 개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신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4. 제도 자체가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심사와 보상을 동시에 시행하는 근로복지공단 체계 보다는 심사 기능자체를 근로복지공단에서 분리하여 심사기구를 완전히 독립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5. 현재 제도의 틀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산재보험제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심사 및 보상을 중심으로)

6. 첨부할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면인터뷰 : GM대우자동차 창원지회 백 한 주
산업의학전문의 김 형 렬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이 훈 구

————————————————————————–

1. 업무상 질병판정위회(이하 질판위)의 설립취지를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은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간의 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 대한 불만과 잡음을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 취지를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고 생각되시는지요?(공정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GM대우자동차 창원지회 백 한 주(이하 백한주) : 산재보상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또는 전문적이냐의 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의 입장에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근본적인 문제로, 산재 보상 자체를 누군가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산재보상에서 탈락을 하는 문제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현실적인 문제인데, 산재 보상에서 누구를 어떻게 탈락을 시킬 것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전자의 경우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라보는 산재보상의 문제를 대안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자의 문제 즉, 산재 보상에서 누구를 어떻게 탈락을 시킬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데 이때 공정하냐, 전문적이냐의 문제가 산재 보상의 문제에서 항상 대두되는 것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법을 개악하면서 조사 방법과 지침 그리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통해서 각 지사별로 같은 상병 및 작업방법을 두고 승인/불승인의 결과가 다른 현실을 바꾸겠다는 취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전문가의 개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인노무사, 변호사, 의사 등 소위 말하는 학식과 그 분야의 권위자로 구성한 판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법 기준에 정한 나름대로의 형식적 전문성은 있겠지만 그들이 노동재해에 대하여 가지는 객관성 전문성에 대한 평가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판정위원들의 전문성은 나름대로 가지는 형식적 전문성에 불과한 측면이 많으며, 기본적으로 노동재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노동재해에 대한 상식만을 기반으로 의학적 전문성을 결합하고, 이러한 조건하에서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재해노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문성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재해와 관련하여 현장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는 매우 소수에 불과한 현실이며, 더구나 판정위원들은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하는 직업병 관련 자료와 통계, 기준 등으로 실태를 파악하고, 판정절차에 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산재 보상의 목적과 재해노동자에 대한 이해 등이 전혀 없어 사실상 산재 보상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판정이 이루어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판정위원들에게 제공되는 조사보고서는 사실상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의 의견을 청취한 후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므로 근로복지공단의 의견이 그대로 전달되고,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판정위원들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므로 공정성을 기대할만한 토대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재해 조사 과정에 대한 전반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무한으로 확대된 오늘날 재해노동자는 너무나 약한 입장에 놓여 있고, 노동현장에 대한 정보, 자료 등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사업주의 강한 권능과 근로복지공단의 친사업주적 관점 그리고 질판위의 노동재해에 대한 부족한 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조사 과정과 결정 과정 역시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 업무상 질병의 산재 승인율과 신청률 자체가 급속하게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의학전문의 김 형 렬 (이하 김형렬) : 공정성과 전문성 모두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악화되었습니다. 공정성은 위원회의 구성이 전문성이 결여된 위원과 사회보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산재에 대한 보수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이들에 의해 다수결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공정성 확보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공정성 이전에 사회보장에 대한 이해, 업무관련성 평가의 이해가 부족한 구성과 운영입니다.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이 훈 구 (이하 이훈구) : 현실에서는 업무상질병판정위만이 아니라 지사 자문의사제도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불균등한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실제 자문의사제도와 업무상질병판정위가 병존하고 있는 바, 지사에서는 자문의사회의와 동시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통해 업무상 질병에 대한 승인여부를 판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 스스로도 인정과 보상 중심의 대응을 해온 것도 현실입니다만, 지사의 자문의사회의를 통한 접근-인정-치료재활-복귀-현장개선 등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횡포는 피재노동자는 물론이고 노안활동가들의 직접적인 저항에 직면해왔습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집단적 저항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은 개기고 우기는 수준이었습니다. 자문의사회의라는 전문가의 판단에 숨어서 말입니다.
노동부나 공단이 산재법 개악을 통해 업무상질병판정위를 만들게 된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필요는 분명하지 싶습니다. 첫째 임의적으로 자문의사회의를 구성하고 운영하였던 것을 법적으로 공식화한다. 둘째, 승인 관련하여 쟁점이 형성될 만한 것은 지사대응이 아니라 본부대응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산시킨다. 셋째, 피재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필요보다는 소요비용을 중심으로 계랑적 기준을 공식화하여 실제 아픈 이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상의 필요를 숨기기 위해 악용한 것이 공정성과 전문성 확보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실제 아픈 이들의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전문성이 갖는 한계를 숨기고, 공정성을 전문가 내부의 입장차의 문제로 축소시켜서 현장노동자들의 역동성과 주체성을 법적 틀 거리 안으로 제한시키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실제 현실 운영과정에서도 공정성과 전문성이 관철되거나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고 판단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승인율과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여 비용절감에 기여하고, 노동자들에게 부정적 경험을 누적시켜 더욱 참고 견디게 하거나 개인보상에 더욱 메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업무연관성에 대한 주체와 현장의 구체적인 필요와 경험이 오히려 더 대상화 분절화 되었고, 접근-승인 과정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에 의해 불승인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현실입니다. 특히 요추와 경추 관련 질환에 대해서는 불승인은 물론이고 축소 및 변경 승인 등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즉, 노동부와 공단이 필요로 했던 공정성과 전문성 확보는 나름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 실제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는 침해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굳이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 한다면, 지금까지 업무상 질병 판정 관련하여 구체적인 근거와 판정 사례에 대한 추적이나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던 것을 일정하게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여깁니다. 이마저도 필요주체인 노동자들의 참여와 권한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판단합니다.

2. 건강보험 체계와 달리 산재보험은 의료행위의 적절성에 대한 심사와 더불어 사전에 산업재해 성립 여부를 심사하고 있습니다. 심사에 있어 공정성과 전문성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정성과 전문성을 재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편 산재보험 성격상 신속성 역시 중요한데 이것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요?

김형렬 :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와 연동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재의 산재보험 제도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상황에서는 항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정부나 기업에서 주장하는 반대 측면에서 공정성, 즉 도덕적 해이에 대한 공격은 사회보장의 틀을 위협할 만큼의 제도 개선을 막고 있고, 오히려 사회보장의 측면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장기적 과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며,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변화는 근골격계질환은 주치의 소견만으로 산재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요양의 내용을 관리하여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게 하고, 작업 복귀 프로그램을 통해 재발을 방지한다면, 오히려 요양기간은 줄어들고 재발률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속성의 문제가 해결되고 이 역시 요양기간의 단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왜곡된 요양장기화는 산재환자가 불러온 문제가 아니라 산재승인이 까다로워서 신속한 치료가 안 되고 제대로 된 치료가 안 되고 재활치료가 부재한 제도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를 산재환자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붙여 직업병 승인을 제한하려는 것은 산재환자에게나 기업에게나 정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훈구 : 무엇보다 우선 산재보험역시 건강보험과 같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치료 후판정 제도의 도입과 피재자 입증책임의 폐지 등은 전체적인 법제도 개혁이전에라도 꼭 실현시켜야 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현재의 법제도 상 필수적인 공정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고 신속한 치유와 보상을 위해서는 먼저 심사와 관련한 위원구성, 각급 자료, 사전점검 등 준비활동, 평가 과정에 노동자의 참여보장과 권한확대가 필요합니다. 둘째 업무관련성을 판단하기 위해 현장 유해 위험요인 분석을 일상화하여, 추적조사가 가능하도록 하여 심사 없이 승인할 수 있는 근거마련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심사근거와 결과와 관련하여 심사기구 활동(회의록 일체-내용을 중심으로)에 대한 실시간 공개가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넷째, 노동재해 인정 관련하여 심사기구 내에 판단근거가 없거나 모호하여 쟁점이 있을 경우, 우선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공정성과 전문성의 기준은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피재노동자의 필요가 가장 우선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 현 산재보상보험법 틀 내에서는 사전 심사의 기능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 속에서 재해노동자와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심사내용이나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는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개입을 한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만일 개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신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김형렬 : 산재노동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공식화하는 것이 일정한 개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 제도개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사전 심사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장이라도 노동자가 자기 의견 개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이해하지만, 현재의 위원 구성으로 볼 때 별로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번 회의할 때 30건씩 2시간에 해결하는 구조에서 노동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건강보험처럼 사후 심사 형태로 가야 합니다. 그게 더 중요합니다.
이훈구 : 재해노동자와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현실적 개입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참여자체에 제한 될 경우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게 되고 사실상 들러리 역할에 제한되면서 치료받을 권리조차 선두에서 침해하고 있는 사전심사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해서 2항의 답변에서 이야기 했듯이, 실제 심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노동자의 건강권에 조응케 하기 위한 다양한 개선 방안들이 동시에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혹여 개선된 방안에 기초하여 참여하더라도 참여한 이들만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그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때문에 총체적인 방안개선과 함께 일하고 있는 이들 다수, 특히 재해노동자들과의 일상에서 실시간 소통 공유할 시스템을 꾸리는 것 역시 병행해야 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4. 제도 자체가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심사와 보상을 동시에 시행하는 근로복지공단 체계 보다는 심사 기능자체를 근로복지공단에서 분리하여 심사기구를 완전히 독립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백한주 : 2번과 3번, 4번의 질문은 사실상 동일하다고 판단됩니다. 한꺼번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현재의 제도 속에서 재해노동자나 노동계의 참여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방식은 참여시킴으로서 지배하고, 배제함으로서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형식적 참여의 문을 열어 놓았지만 사실상 그 참여는 산재 보상 탈락자를 정하자는데 합류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여 방식 자체도 노동자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판정위에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아무리 진보적이고 노동자적인 전문가라고 하더라고 과학적 입증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는 현재 진보적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판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그 한계를 뚜렷하게 느끼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한계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노동계가 추천하는 전문가 역시 현재의 구조에서는 참여를 하더라도 들러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해자의 현장 조사권을 필수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위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비정규직 노동자 등 재해노동자가 약자인 현실에서 사업주들의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재해 조사 역시 재해자에게 불합리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 재해 조사 시 재해당사자를 참여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업주는 현장을 치우거나 은폐하거나 주위 동료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해 업무력이 없다는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조사 자체가 재해 노동자에게는 매우 불합리합니다. 따라서 재해자가 현장 조사권을 가져 자유로운 현장 출입과 서류 열람 및 복사 그리고 재해자가 추천하는 전문가 및 단체 등이 참여하여 현장 조사를 하게 만들고 사업주에게는 그에 대한 진술권을 부여하고 7일 이내에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주의 진술권에 대한 재 반론권을 재해자에게 주고 근로복지공단은 그 두 개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의견서를 내지 않고 서류 전체를 판정위에게 넘겨주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해 조사 과정에서 소요되는 기간은 사실상 없으며 판정위에서 내용에 대한 판단만 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1차적으로 재해 조사 과정에서 불공정성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재해조사권이 없고, 재해노동자가 현장조사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판정위원들이 공정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재해 조사 자체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불공정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속성의 문제와 재해 조사 과정에서의 공정성 문제는 없어질 것입니다. 핵심은 재해자의 현장 조사권입니다. 만약 재해자의 현장 조사권 발동에 대해서 사업주가 조력하지 않고 방해한다면 그에 따른 법적 처벌과 산재 인정 여부에 있어서 불이익을 줘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해자의 현장 조사권이 보장되더라도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때 비용이 발생되는데 이러한 제반 비용은 근로복지공단이 책임을 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판정위원회를 근로복지공단 부설위원회로 설치할 것이 아니라 제3기관으로 두어 공정성을 갖고, 재해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를 토대로 전문적으로 노동재해와 관련하여 지식을 갖춘 판정위원이 판단할 때에 그 공정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형렬 : 심사기구 독립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기구는 사후 심사를 해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의 운영과 지원 업무에 한정해야 합니다.

이훈구 : 현재와 같이 공단이 보상과 심사 두 역할을 함께 갖고 있는 것보다는 별도의 기구로 독립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정운용의 필요가 치료받을 필요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심사기구를 독립하여 구성 운영한다고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여겨지지 않습니다. 노동재해를 둘러싼 사회 인프라 정도, 주체들의 인식과 경험 그리고 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심사기구의 독립자체도 여의치 않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사기구의 독립성은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은 노동자들의 필요를 가장 우선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기초하여 실현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기초하여 2항과 3항에서 제시한 것 같이 방안개선과 참여확대 그리고 소통과 공유 확대에 기초한 일하는 이들의 직접행동의 개연성을 높여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현재 산재보험-건강보험-자동차보험 심사일원화와 관련된 논의와도 일정하게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논의는 심사 기구와 과정의 통합운영에 초점이 맞춰져서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바, 이 역시 심사의 목적과 필요, 주체참여 등을 재정운영보다 우위에 두어나갈 수 있도록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행동을 예비하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민영화의 초석을 삼으려는 것에 맞설 태세를 벼려야 하지 싶습니다.

5. 현재 제도의 틀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산재보험제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심사 및 보상을 중심으로)

백한주 : 결국 재해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의 문제입니다. 이는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IMF 위기 그리고 수많은 경제 위기 속에서 결국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소위 말하는 국가유공자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수많은 유공자들이 있지만 노동현장에서 다치고 병들고 죽은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나 사회의 대우는 매우 열악합니다. 보상금 몇 푼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재해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올릴 수 있는 대안을 조직해야 합니다. 단순히 심사 및 보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해노동자가 이 사회에서 받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기본적 개념 속에서 심사 및 보상의 문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방관하고 심사 및 보상의 문제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재래형 재해는 줄어든다고 합니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재래형 재해보다는 새로운 직업병이 우리 노동자들을 고통속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자본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 산재 보험을 이런 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현재의 제도 틀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산재 보험제도는 4대 보험 통합을 통해서 심사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가 병들거나 다치면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심사는 산재 발생의 원인을 묻는 사업주의 책임에 맞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재해노동자의 안정된 생활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 될 수 있고 사업주의 안전보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형렬 : 첫째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둘째는 특히 근골격계질환에 있어서 주치의 소견에 따라 산재 바로 인정, 요양 중 사후 심사, 셋째 요양기관 치료 질 관리를 통한 요양기간 단축, 넷째 단축된 요양기간만큼 단계적 작업복귀를 비롯한 재활 치료 강화입니다.

이훈구 : 산재보험의 원리라 할 수 있는 사회공공보험, 무과실책임주의, 정률보상주의, 현실주의 등을 산재노동자들이 현실에서 가시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제도로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인의 경우 전수 건강보험과 같이 자유롭게 불이익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노동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힘과 지혜를 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싶습니다.
심사와 관련해서는 우선 제도 주체들인 일하는 이들의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인식과 참여 진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조직노동자는 물론이고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들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여 교육을 하는 것과 함께 예비노동자 필수교육 혹은 기본교육 내용으로 채택하여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겠습니다. 둘째 심사기구의 독립을 지향하면서 다양한 운영방안의 개선을 통해 선치료 후판정제도의 도입과 산재노동자 입증책임 폐기 등을 시급히 제도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인정중심의 심사관행을 예방으로까지 확대 심화시켜 나가야 하지 싶습니다. 보상과 관련해서는 현행보상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현재 보상수준으로는 실제 저임금상태에서 오히려 노동자들 스스로 견디고 참게 하여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 손실을 더욱 더 조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0% 보전의 실현, 치료와 요양과정에서 실비 보장, 육체적 손상 뿐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치유까지 포괄하여 노동 뿐 아니라 온전한 사회복귀 보장, 심사와 마찬가지로 보상역시 예방 혹은 재발방지를 위한 현장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6. 첨부할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백한주 : 개악 산재법은 단순히 치료를 줄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놓은 자본과 정권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한 개악 산재법으로 인해 노안활동가들의 역할과 활동력을 매우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은 강화된 노동강도 때문에 발병한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조나 활동가들 역시 직업병의 근본적인 발생 원인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산재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쟁점이 협소하게 형성되어 현장 투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이 노린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더 이상 산재 보험의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며,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책임을 면하기 위한 자본의 노력의 산물인 것입니다.

김형렬 : 지금의 질병판정위원회는 꼭 없어져야 합니다. 전혀 전문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고, 신속성을 오히려 해치고 있는 구조입니다. 질판위가 운영되고 나서 노동자들에게 좋아진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전의 자문의 제도로 돌아가는 것 역시 정답은 아닙니다. 주치의 소견에 따른 산재 판정과 독립된 심사기관에 의한 사후 심사 도입을 통한 승인 및 요양내용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건강보험의 보장성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훈구 : 잘 아시겠지만 산재보험제도는 법제도적 측면에서도 뜯어고쳐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실제 현실에서 있으나마나 했던 권리조차 개악된 산재법에 의해 매우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산재신청을 회피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나 자본이 치료받을 권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비용절감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핵심적으로 관철코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고 여깁니다. 그 첫째가 치료받을 권리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노동자 스스로 건강권에 대한 필요를 개인-승인-치료보상 등의 틀거리에 가둬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부와 자본의 책임을 완화시키고 안보이게 왜곡하여 노동자간의 다름을 악용하여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현장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노동과정 및 삶 과정 전반에 대한 권리주체로 서는 것을 왜곡하여, 현장개선과 노동강도 완화는커녕 강도 높은 노동과 왜곡된 법제도에 순응토록 하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과 정부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어떻게 맞서서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 일하고 살아갈 것인지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의 몫으로 받아 안아 행동에 옮기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