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9월 |칼럼] 신종플루의 사회학

일터기사

신종플루의 사회학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박 상 표

21세기는 그야말로 전염병의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위험이 세계화되다보니 에이즈(AIDS/HIV), 광우병(BSE), 조류독감(AI), 돼지독감(SI) 등과 같은 신종 전염병뿐만 아니라 말라리아, 결핵, 콜레라, 흑사병 같은 오래된 전염병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유령의 이름은 ‘신종플루’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낯선 이름 때문에 이 유령은 자신의 본질적 실체를 감출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종플루라는 유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돼지독감이 신종플루로 이름을 바뀐 까닭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지난 4월 15일 돼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H1N1) 환자를 공식 확인했다. CDC는 바이러스 명칭을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라고 불렀으며, 언론들은 이를 줄여서 돼지독감(Swine Flu)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미국 축산업계와 농무부 등이 돼지값 폭락으로 양돈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 세계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산업계와 미 농무부 등의 이해를 대변한 국제수역사무국(OIE)도 4월 28일 “A형(고병원성) H1N1 혈청형 돼지독감의 인간발병에 대해 식품을 통한 바이러스의 전염 사례가 없으며, 동물로부터 바이러스의 검출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할 때 돼지 인플루엔자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OIE의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은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도 미군 병사들의 발병원인으로 돼지 농장이 지목되자 양돈업자들이 OIE 성명서 내용과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한국정부 내에서도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Swine Influenza(SI)라 명명했고, 농식품부는 Mexico Flu(MI)라고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미국 정부, OIE, 세계식량기구(FAO) 등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WHO는 4월 30일 Swine Influenza라는 명칭을 Influenza A(H1N1)로 바꿨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신종 플루’라고 명칭을 바꾸고 혼선을 빚었던 정부 부처 간 이견을 해소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WHO가 정치적 결정을 통해 명칭을 바꾼 바로 그 즈음에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돼지 독감(Swine influenza)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조롱하며 유명한 과학 잡지 《사이언스》의 블로그에 “돼지독감의 명명법이 돼지독감 그 자체보다도 더 빨리 진화했다”고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신종플루의 원인은 돼지독감 바이러스로 밝혀져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영국의 국립의학연구소(NIMR) 등은 이번에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DNA를 분석한 결과, 8개의 유전자 조각 가운데 6개는 북미지역에서 발생했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유래한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북미지역에서 유래한 6개의 유전적 조각은 1998년 이후 북미지역에서 분리된 H1N2형과 H3N2형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1998년에 분리된 Swine H3N2는 조류와 돼지와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3중 조합으로 확인되었다.

1998년 당시 전문가들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가 언젠가는 다시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3중 조합 돼지 인플루엔자 A (H1N1) 바이러스는 1998년 이후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에게 가끔씩 드물게 전염을 일으켰는데, 감염자들은 모두 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전염 사례가 처음 보고된 것은 2005년이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도축장에서 17세 청소년이 돼지에게 노출된 후 돼지독감에 전염되었다. 그는 두통, 설사, 허리 통증, 기침 등의 증상을 보였으나 열은 높지 않았다. 이후 2005년~2009년 동안 3중 조합 돼지 인플루엔자 A (H1N1)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11건이었으며, 이 환자들은 모두 돼지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역학적 관점에서 이번 ‘신종플루’는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전염이 이루어졌으며, 그 진원지는 미국의 돼지농장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돼지들에서 병원성이 약하거나 불현성 감염이 일어나는 등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까지 양돈업계는 돼지독감 바이러스의 감시 및 방역활동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 사이 돼지 독감 바이러스는 공장형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농장주, 수의사, 돼지 도축장 노동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인체에 전염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으며, 그 가족들과 친지들을 통해 지역사회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령을 잡기 위해선 도시화, 빈부격차, 기아, 에이즈, 결핵에 눈 돌려야

2008년 기준으로 68억에 이르는 세계인구의 약 50% 가량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의 도시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국의 경우 향후 10년 내에 인구의 절반 이상인 8억 5천만 명이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게 되면 슬럼지역이 형성되며 심각한 건강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전 세계 인구의 80%는 제3세계 122개국에게 거주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0)에 따르면, 2009년 전 세계 기아인구는 10억 2000만 명이나 된다. 2003년~2005년 8억 4800만 명 수준이던 기아인구가 2008년에 9억 230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2009년에는 처음으로 10억 명을 넘어섰다. 최근 기아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식량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며,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재앙에 의해 식량가격은 폭등했으며,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 결과 2008년만 하더라도 식량폭동이 발생한 나라가 30개국이 넘었다.

기아인구 10억 명 중 무려 9억 1500만 명이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억 4200만 명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며, 2억 6500만 명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 살고 있으며, 5300만 명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삶의 터전이 있으며, 4200만 명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주민이다. 2003년~2005년 기아인구의 65%가 인도, 중국, 콩고,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등 단 7개국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일 25,000명이 굶거나 기아와 관련된 원인 때문에 죽는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는 굶주림이나 그와 관련된 원인 때문에 6초 마다 1명씩 죽어가고 있다.

2008년 에이즈(HIV/AIDS) 감염 환자 중에서 180만 명~230만 명(평균 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체 사망자의 75%에 해당하는 150만 명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망했으며, 약 27만 명의 어린이들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말라리아로 사망한 사람이 61만 명~121만 2천 명(평균 88만 1천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사망자의 91%에 해당하는 80만 1천 명이 아프리카 지역 주민이며, 사망자의 85%는 5세 이하의 어린이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결핵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2007년 AIDS에 감염되지 않은 132만 명의 사람들이 결핵으로 사망하였으며, AIDS 감염자 중에서 45만 6천 명이 추가로 결핵에 걸려 사망했다.

해마다 계절성 독감에 300만~500만 명이 감염되어 고열, 인후통, 폐렴 등의 심한 임상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매년 25만~50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신종플루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3천 명이 약간 넘었을 뿐이다. 9월 14일 현재까지 국내에서 신종플루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은 6명인 반면, 해마다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4천 명이 넘는다.

21세기 ‘황금 독감 시대’에 막대한 이윤을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남아시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북한, 남미 등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은 대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들로부터 항바이러스제 및 돼지독감 백신을 구입하여 비축할 여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2009 돼지독감 대유행으로 로슈,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노바티스 등의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이윤을 누리고 있다.

로슈는 2009년 돼지독감 유행으로 상반기에만 9억 3800만$ 어치의 타미플루를 판매했으며, 정부와 기업에 비축용으로 판매한 타미플루 판매액이 6억 1250만 $에 이르렀다. 로슈의 타미플루 판매는 2008년에 비해 2009년 상반기에 203% 성장했다. 타미플루의 엄청난 판매에 힘입어 로슈그룹 전체 판매액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무려 9.0% 성장을 기록했다. 돼지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됨에 따라 하반기에는 타미플루의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므로 그 판매액도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슈는 2010년까지 매년 현재 생산량의 약 4배 수준인 4억 팩을 생산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는 얼마 전 연간 1억 9천만 팩까지 리렌자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증설을 발표했다. 2004년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제2위의 제약회사인 GSK는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리렌자(자나미미르)를 독점 생산하고 있으며, 인플루엔자 백신도 생산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은 2007년부터 연평균 8.2%의 성장률 기록했다. 세계 7개 주요시장에서 계절성 독감 백신을 포함한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은 2006년에 약 22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7년 백신시장 매출액은 45억 달러를 기록 했는데 2014년에는 98억 5천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노바티스 같은 제약회사는 제 3세계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독감백신을 기부해달라는 WHO의 요구를 거부하여 빈축을 사고 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노바티스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의료가 상업화될 경우 어떠한 폐해가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다. 노바티스는 한국 정부와 희귀의약품 글리벡의 약값을 협상하면서 자신들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글리벡 판매를 중단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압박함으로써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지나친 이윤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치료약, 예방백신 부족보다 빈부격차에 의한 대재앙 가능성 더 높아

2009 돼지 독감 대유행을 이용하여 몇몇 다국적 거대 제약기업. 소수 강대국과 국제기구 등이 ‘황금 독감시대’를 향유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2009 독감 대유행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것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져야 과학적 위험평가에 기초하여 적절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대중들에게 위험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불확실성에 기인한 대중들의 공포를 완화시킬 수 있으며, 우선순위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할 수 있다.

지난 8월 21일자로 발표된 유럽연합질병관리본부(ECDC)의 잠정적 위험평가 보고에 따르면, 2009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제기한 것은 병원의 건강관리체계였다. 현실적으로 격리병상, 음압환기시설, 산소호흡기 등을 제대로 갖추고 폐렴 등 중증으로 진행되는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하는 것이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WHO나 각국 정부의 인플루엔자 대유행 위험예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강제실시’를 통한 치료제와 백신 확보를 WHO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 의약품의 접근성 증진을 위해 개별 국가들이 강제실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WTO 각료회의 특별선언문에서도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권리를 가지며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사유를 결정할 자유가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WHO는 소수 다국적 거대제약회사의 경제적 이윤이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기준으로 치료제와 백신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면 위험예측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면 기아, HIV/AIDS, 말라리아, 결핵 등의 더 긴급한 사안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인류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전염병의 원인체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은 인류보다도 더 오랜 진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미생물은 오랜 기간 동안 상호적응을 하면서 환경 속에서 공존해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기술 발달에 의해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고, 비행기와 고속열차 등을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전염병의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가뭄․폭염․홍수․지진 등의 자연재해, 초국적 거대기업 중심의 공장식 축산업, 전쟁과 내란 등 사회적 혼란,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이윤 추구로 인한 경제위기,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결합되어 발생한 가난과 기아 등으로 인해 전염병 방어체계가 붕괴되어 새로운 전염병들이 계속 창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량생산량의 부족 때문에 기아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듯이 2009 돼지독감 대재앙도 과학기술의 미발달이나 치료약 및 예방약의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전염병 대재앙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재앙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가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전 지구적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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