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12월ㅣ칼럼] 2009년 비정규직의 해고

일터기사

2009년 비정규직의 해고

동희오토 사내하청 해고자 이 백 윤

내 동료가 또 한명의 해고자가 된 오늘

작년 9월,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날 한 손에는 명절선물로 비누세트를 들고 한 손에는 해고통지서를 들고 공장을 나왔다. 그 이후, 3년 동안 매일 출퇴근하던 내 일터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경비들과 원청 관리자들에게 사지가 들리거나 멱살 잡혀 끌려나와 정문 밖에 버려졌다. 공장 주변에는 나와 동료 해고자들을 막기 위해 못 박힌 철조망과 펜스가 둘러쳐지고 곳곳에 CCTV와 심지어 교도소에서나 볼 법한 대형 핀 조명이 설치되었다. 내 임금보다 훨씬 더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회사는 나와 동료 해고자들, 그리고 민주노조를 부정했다.
동희오토 민주노조 건설투쟁 5년 동안, 4차례의 사내하청업체 위장폐업, 10여 차례의 계약해지와 징계해고로 100여명이 해고되었다. 동희오토 같은 비정규직 하청구조에서는 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1년 365일 해고와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만만치 않은 해고자들에게 가장 큰 아픔은 내가 아닌 동료에게서 찾아온다. 해고자들이 가장 힘들 때는 어제까지 출근했던 내 동료가 또 한 명의 해고자가 된 오늘이다. 원청관리자들과 경비들이 우릴 막기 위해 늘어서있는 정문 앞에서, 늘 자신이 타고 다녔던 통근버스가 옆을 지나쳐가고 이제 내가 공장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에 신참해고자의 표정에는 분노, 두려움, 당혹감, 무력감이 피어오른다.
내가 느꼈던 그 말도 안 되는 기분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을 그 동료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투쟁조끼가 잘 어울린다는 둥, 해고생활이 체질인 것 같다는 둥, 경비들, 원청관리자들과 몸싸움 한판 벌이고 나면 아침 밥맛이 좋다는 둥…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다. 자본가들에게 해고의 자유로움이라는 칼을 쥐어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구조는 그래서 비인간적이다.

비정규직의 우선해고

77일의 영웅적인 공장점거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흔히 아는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2008년 연말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한 무급순환휴직,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공장을 나왔고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숫자는 정규직 정리해고 대상자의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이미 오백명을 넘어섰고 쌍차 비정규직지회는 작년 겨울부터 공장 앞에서 해고를 중단하고 함께 살자고 외쳤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강제 희망퇴직과 업체 폐업으로 올 한해 1차 하청노동자들만 600명이 넘게 해고되었으며, 정확한 숫자는 파악도 안 된 채, 공장 안에서는 지금도 ‘나가라’는 한마디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묵묵히 짐을 싸고 있다.
경영위기를 이유로 한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는,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물살을 탄 작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몇 백 명씩 잘려나가는데 아무런 제동 장치도 없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일간지에 한 줄도 실리지 않는 이 현실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물 건너 타국에 왔으니 고생 좀 해도 된다.’고 합리화되는 것처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먼저 혹은 대신해서 잘려나가도 ‘누군가는 잘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정규직이…’라는, 자본이 심어놓은 사회적인 인식이 차별과 대량학살을 방조하고 묵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노동자 단결을 통한 고용위기 극복?

GM대우 부평공장. 4월 8일, 9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한 무급휴직’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정리해고 되었다. 사물함의 짐들을 검은 쓰레기봉투에 털어 넣어 등에 지고 고개를 떨군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지막 퇴근을 했다. 다음 날 그들이 일하던 자리에는 물량이 없어 일손을 놓고 있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환배치되었다. 비정규직의 작업공정에 정규직을 전환배치하고 비정규직을 해고하는데 GM대우차 지부는 사측과 도장을 찍었다. ‘노동자는 하나이니 함께 투쟁하면 일자리를 지켜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는, 정규직노조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현실 앞에 무너지고, ‘남을 자르고 나를 살리는데 합의한 노조는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를 자를 수도 있다’는 정규직 노동자의 계산 앞에 무너진다.
내 옆의 동료가 해고되어 쫓겨날 때 자신도 쉽게 해고될까봐 나서지 못해서 노동조합 혹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동료를 지켜줄 수 없고, 결국 해고는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 누구도 함께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가 되면,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결하지 않고 있어도 언젠가 해고될 것이고, 단결투쟁하자고 외쳐도 그 순간 해고된다. 한 명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함께 해고될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모두에게 해고의 칼날은 다시 겨누어진다.
상하이자본이 크게 훑고 지나가 움푹 패인 자리를 노동자의 피와 살로 매웠던 쌍용차 구조조정은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 외국 투기자본의 치고 빠지기에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이 통째로 바람 앞에 등불이 되어간다. 외국 투기자본의 증가는 일상적 고용위기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노동자들에게도 전이되고 있음을 뜻한다. 단물빼먹고 제 나라 가버리면 그만인 외국 투기자본의 횡포 앞에 해당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만으로는 사실상 승리의 전망을 찾기 힘들다. 유실되어가는 단결과 연대의 기풍이 다시금 강조된다.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자본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면서 6명이 돌아가셨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렇다 해고는 살인이다. 투쟁하다 차디찬 주검이 된 분들과, 그 분들을 가슴에 묻고 해고로 자본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전국의 무수한 사업장에 해고자들이 있다. 자본이 ‘노동자를 선택하지 않는 방식, 해고’라는 이름으로 우릴 탄압한다면, 우리 역시 자본이 의도한 ‘해고당하면 체념하고 적당히 다른 살 길을 찾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서 저항하고 다시 태어난다. 투쟁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12시간을 다음 날 일하기 위해 쉬어야했던 그 삶을 평생 반복하고 살았던 노동자들이 정작 해고당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하게 된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사람, 스스로를 사회에서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낄 때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회사 다니기 싫증나서 그만두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서 무위도식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 현실이 되어 당당히 사표를 던질 수 있다 하더라도, 몸이 부서져라 헌신했던 내 일터에서 일회용 종이컵처럼, 담뱃재 털듯 내버려지는 신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하나뿐인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2010년, 해고자는 인생의 낙오자가 아니라 더 열심히 투쟁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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