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12월|현장의목소리]대구지하철 해복투,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반드시 원직복직을 쟁취한다!

일터기사

대구지하철 해복투,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반드시 원직복직을 쟁취한다!

대구지하철 해고자 원직복직투쟁위원회 정성기

“아! 서장완 동지, 복직의 염원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지난 3월 9일 대구지하철해고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여덟살 박이 아들을 홀로 키우던 41살의 젊은 노동자, 서장완 동지는 끝내 원직복직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원통한 죽음을 맞았다. ‘일터로 돌아가 좋은 아버지로 아들 하나만은 정말 잘 키우고 싶다’던 소박한 꿈마저 처절하게 외면당하고 만 것이다.

“입 다물라는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 2년 동안 외친 시민안전
– 그 결과는 13명의 해고자”
대구지하철해고자는 모두 13명이다. 아니, 이제 한 명을 떠나보냈으니 12명이다. 해고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2004년 총파업투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이다.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2004년 총파업투쟁은 88일간의 전면총파업과 연이은 4차례의 부분파업은 30년만의 불볕더위에서 시작해 해가 바뀌어서야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이 총파업투쟁은 아직도 공기업 사상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길고도 폭발적인 파업투쟁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 대량징계와 해고가 잇달아 이어진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초유의 화재참사로 돌아가야 한다. 참사 직후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현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참사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은폐, 축소를 시도하였는데, 이 때 노동조합이 지하철 노동자로서의 양심으로 대 시민 사과를 하고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밝혀나갔다. 노동조합은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은폐, 축소에 맞선 싸움을 시작하였고, 6월 24일 총파업투쟁을 전개, 결국 ‘시민안전을 위한 특별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대구시와 공사는 이 특별단체협약을 ‘굴욕’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이미 체결된 특단협조차 이행하지 않았다.
2004년 파업투쟁의 장기화는 이처럼 ‘굴욕’을 맛본 대구시와 공사의 몽니로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파업투쟁 시작과 동시에 보름동안의 교섭 회피, 악랄한 언론 통제, 노동위원회와 검찰조차 전방위적으로 탄압에 나선 것이다. 소위 대구지하철노동조합에 대한 공안탄압 국면이 이어졌다. 대구시가 내세운 슬로건인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가 사상 초유의 노사분규, 그것도 산하 지방공기업에서 공기업 최장기 파업을 – 더구나 시민안전 확보방안 마련을 요구했으니 반드시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만들어진 것이다. 급기야 대구시와 공사는 무차별적 고소와 고발, 직위해제를 거쳐 ‘징계최소화’라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13명을 해고하였다. 이처럼 대구지하철 해고자들은 전방위적이고 조직적인 탄압에 의한 희생자들이다.

“7년이 지나도 여전한 노동탄압, 연대와 우애로 만들어가는 해고자복직투쟁”
2004년 총파업 투쟁 이후 대구시와 공사는 노동 통제와 노동조합 탄압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된다. 노사합의 직후 전격적인 위원장의 구속과 노사합의 불이행, 긴 투쟁의 피로감속에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현장 통제가 뒤따랐다. 급기야 공사의 보이지 않는 조력 속에서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제 2노조가 생겼다. 지금은 현장 조합원들이 사측 간부들의 압력으로 노조를 탈퇴하는 등 최악의 위기국면을 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7년 동안 꾸준히 진행된 탄압은 아직도 저강도로 계속되고 있다.
7년의 시간 동안 대구지하철해고자들은 ‘대구지하철원직복직투쟁위원회’(대구지하철해복투)를 만들어 꾸준히 현장 활동과 복직투쟁을 전개해왔다. 해고 당시 사측은 해고자의 사업장 출입도 방해하였고, 단체교섭에서는 ‘해고자복직은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교섭을 파행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해고자들의 투쟁에 의해 현재는 해고자 복직이 노사 현안문제의 제 1순위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지역의 노동현안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물론 인천, 서울, 부산의 궤도해고자들은 모두 복직하였거나 복직이 예정되어 있다. 대구만 유일하게 궤도해고자가 복직되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그렇다고 대구지하철 해고자와 노동조합의 투쟁이 부족해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현재 대구지하철노조는 복수노조를 시작으로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대구시와 공사를 상대로 또 다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길고도 지리한 노동탄압에 맞선 싸움이 2003년의 총파업투쟁 이후 지금까지도 현재형인 것이다.
대구시와 공사의 탄압에 따라 우리 해고자들의 상황은 더욱 힘들어졌다. 복수노조로 인한 조합원의 감소는 조합비의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생계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해고자들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일원으로, 지역노조운동의 일꾼으로, 진보정치운동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도 복직투쟁의 지속적 전개와 지역노조운동의 일꾼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은 모두 궤도노동자와 지역노동자들의 동지애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 해고자의 생계가 어려움에 처하자, 전국의 궤도노동자들이 CMS모금을 통해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대구 돕기 일일주점을 열어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동지애를 보여주었다. 이것뿐인가? 대구의 지역동지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희망식당을 열어 우리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을 지역에 알리고, 실질적인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전국의 궤도노동자와 지역노동자들이 실천으로 보여주는 애정과 공감을 바탕으로 2013년은 반드시 대구지하철 해고자 원직복직의 원년으로 만들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2013년 복직이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결단코 여러 동지들의 우애와 연대의 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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